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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30년 후, <그녀가 모르는 그녀에 관한 소문>
그 와중에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던 이 영화를 수입했던 '도덕주의자' 수입업자께서 (자막으로) 로빈슨 부인과 일레인의 관계를 '모녀지간'에서 살짝 '친척지간'으로 바꾸어 놓은 것.
<졸업> 30년후
한국의 드라마는 따지고 보면 ‘오이디푸스’도 울고갈 만한 괴상한 가족 관계들로 넘쳐난다. 거의 모든 드라마에는 대개 ‘출생의 비밀’이 들어 있어서 알고 보면 (등장 인물들은 모르지만 시청자들은 알고 있는) ‘이복형제들’ 또는 ‘형제가 될 뻔 했던 사람들’이 결혼을 하거나 연인이 되고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서 따로 자란 형제들이 질투를 하고 같이 자란 형제들이 한 남자를 사랑해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제 우리나라의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은 ‘클리쉐’ 정도가 아니라 ‘필요악’ 수준이다.
그토록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거의 매일 방영되는 우리나라지만 물론 금기도 있다. 그건 해당자가 그런 불륜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즉 '불륜의 주체'는 자신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야 한다. (물론 최근에는 자기 딸을 며느리 삼는 ‘확신범’ 어머니가 등장하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기는 했다.)
(기억이 맞다면) 90년대 초반 재개봉 되었던 <졸업 The Graduate, 1967>은 그런 '금기'를 넘어선 경우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 벤(더스틴 호프만)은 어머니뻘인 로빈슨 부인(앤 밴크로프트)의 유혹에 넘어가 불륜 관계를 맺은 후 로빈슨 부인의 딸인 일레인(캐더린 로스)을 진지하게 사랑하게 된다. 즉 벤은 일레인과 그녀의 어머니와 기묘한 삼각 관계에 빠져들게 된다. 그 와중에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던 이 영화를 수입했던 '도덕주의자' 수입업자께서 (자막으로) 로빈슨 부인과 일레인의 관계를 '모녀지간'에서 살짝 '친척지간'으로 바꾸어 놓은 것.
물론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 영화 속의 오묘한(?) 관계를 자막 변경으로 가려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플롯만 보면 단순한 ‘섹스 코미디’로 보일 수 있겠지만 <졸업>은 영화 외적으로는 풍족했던 아메리칸 드림의 이상의 균열을 담아낸 당대의 문제작이었다. 이 영화 속의 주인공 벤은 부유한 상류층의 자제로 명문대를 졸업한 재원이지만, 엉뚱하게도 불륜에 허우적거리고 '플라스틱'(벤에게 제안되는 업종)으로 대변되는 껍데기같은 중산층의 허위 의식에 고통받는다. 저 유명한 <졸업>의 결말부에서 벤은 일레인의 결혼식장을 습격해 도망치며 중산층의 삶을 거부한다. 하지만 <졸업>의 결말의 탁월함은 신나는 결혼식 탈출 장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막상 결혼식장을 도망나와 버스에 올라탄 벤과 일레인의 불안한 표정에 있었다.
<졸업>은 잠시나마 미국 영화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은 영화였다. 플롯 분 아니라 <졸업>을 두드러지게 했던 것은 당시의 할리우드 관습을 거스르는 영화적 스타일에 있었다. <졸업>은 '누벨 바그'의 기법이었던 점프 컷, 핸드헬드 카메라의 롱 테이크,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이는 '영화의 인위성(영화가 창작자에 의해 촬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춰 관객의 감정 이입을 유도하는 기존 할리우드의 스타일과는 달리 <졸업>을 기억하게 하는 한 요소가 되었다. 물론 <졸업>을 장식했던 사이먼 앤 가펑클의 'Scarboro Fair', 'Sound of Silence', 'Mrs.Robinson'같은 불후의 명곡의 존재 역시 도저히 이 영화를 잊을 수 없게 하는 요소다.
시트콤 <프렌즈>의 레이첼로 명성을 얻은 제니퍼 애니스톤을 전면에 내세운 <그녀가 모르는 그녀에 관한 소문 Rumor has It, 2005>(이하 <그녀가...>)은 그런 <졸업>의 비공식적 속편 또는 후일담에 해당하는 영화다. 처음부터 주인공 사라(제니퍼 애니스톤)의 나레이션으로 자신의 가족과 소설(!) <졸업>의 관련성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의 생기(生氣)는 대부분 <졸업>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에서 나온다. 가령 사라의 할머니인 캐서린(셜리 맥클레인)이 원작의 로빈슨 부인처럼, 연신 줄담배를 피우며 등장하거나 가족의 비밀을 깨달은 사라가 패닉 상태에서 자동차를 몰고갈 때, 배경 음악으로 ‘Mrs. Robinson'이 들려온다던가 하는 장면들이 그렇다.
하지만 <그녀가...>는 원작 소설을 뛰어 넘는 영화에 젖줄을 대기보다는 좀 더 소설의 아이디어에 관심을 쏟는다. 본래 찰스 웹의 소설 속에 묘사되었던 벤은 더스틴 호프만과는 상당히 다른 캐릭터였다. 소설 속의 벤은 금발 머리, 180cm 정도의 신장을 지닌 건장한 미남자였고 <그녀가...> 역시 본래 소설의 묘사에 따라 영화와 소설의 벤에 해당하는 뷰 역으로 로맨틱한 백인 남자 캐릭터를 자주 연기했던 케빈 코스트너를 캐스팅한 것. 이런 캐스팅에서 보듯 애초부터 <그녀가...>는 <졸업>이 담고 있는 있는 시대성과는 중산층에 대한 거부감과는 어느 정도 결별을 한다. 초반부 사라의 나레이션을 통해 전해지는 영화의 전사(前史)는 1963년에 진행되고 이는 1967년판 영화와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자 하는 설정으로 보인다. (그건 역사적으로 미국 사회가 60년대 후반기로 다다를 수록 히피즘과 페미니즘, 반전 운동 그리고 흑인 인권 운동 등의 ‘반문화(Counter Culture)’의 격동기로 접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 <졸업>은 67년에 공개되었다.) 이는 영화 속에서 제프(마크 러팔로)가 사라의 부모님들이 약간의 속도위반이 있었다며 '60년대'라 가능했다는 듯이 말하자 사라는 오히려 '60년대 초반'이었다구 말하는 장면에서 입증된다.
결국 <그녀가...>가 <졸업>과 연관성을 애써 맺으려고 하는 부분은 아슬아슬할 정도로 위험한 가족의 애정사로 국한된다. <졸업>의 설정처럼 사라의 죽은 어머니는 (사라의 아버지와의) 결혼식 며칠 전에 뷰와 밀애(密愛)를 즐긴 사이고, 그녀의 할머니는 뷰와의 성적인 관계를 깨끗이 인정한다. 당연하게도 이런 ‘콩가루 가족사’를 알게 된 사라는 자신의 출생을 의심하고 (아버지로 의심되는) 뷰를 만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인 사라가 ‘부고 및 결혼’ 전문 담당 기자라는 점은 재미있는 설정이다. 타인의 죽음과 결혼을 보도하는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비상식적인 가족사에 대해 불안해하는 아이러니에 빠진다. '결혼'과 '장례'라는 가족사를 보도하는 그녀가 자신의 가족사 때문에 허우적거리는 것이 다소 뻔하면서도 즐거운 이 영화의 포인트인 것. 영화의 첫 장면에서 사라는 비행 중인 여객기의 화장실에서의 섹스를 제프에게 요구한다. 하지만 그녀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애정 행위의 시도는 좁아터진 화장실이라는 공간적 현실 속에서 실패하고 만다. 사라는 (남과 다른) 영화적인 현실과 실제의 현실이 혼돈스럽게 뒤섞이는 것에 대한 공포를 지닌 인물인 동시에 화장실 장면에서 드러나듯, 영화적 환타지와 현실과의 경계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끊임없이 갈등하는 캐릭터다. 그건 그녀가 사실을 보도하는 기자인 동시에 결혼이라는 '가족 최고의 환타지'를 다룬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사라의 이중의 공포(현실의 결혼과 괴상한 로맨스)는 제프와 뷰라는 남성의 존재로 구체화된다. 특히 <졸업>의 '벤'처럼 B라는 이니셜을 같이 사용하는 뷰는 사라의 로맨스 환타지가 완벽하게 투영된 인물로 등장하는데, 그는 내적으로는 성숙하며 사려 깊고 로맨틱하며 막대한 부와 매너를 지닌 '완벽한 남자'로 등장한다. 초반부 캐서린에 의해 '공공의 적'으로 등장하는 뷰는 결과적으로 사라의 가문의 3대의 여성들과 성적인 관계를 맺게 되지만, 그의 이런 완벽함은 뷰 자신 뿐 아니라 그와 불륜 관계를 맺게 되는 3대의 여성들 - 외할머니 캐서린, 죽은 사라의 어머니, 사라 -을 영화의 내적 논리상 '면죄부'를 부여하게 된다.
<그녀가...>에서 사라는 영화의 1/3쯤 되는 지점에서 뷰를 만나 그와의 로맨스를 벌이게 되는데, 그에 대한 이 영화의 논리는 근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남자라는 식인 것이다. 그런 설정을 위해서 영화는 다소 무리한 설정을 부여하는데, 사라를 중심으로 뷰의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는 제프의 역할을 별볼일 없는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뉴욕의 잘 나가는 변호사라는 설정에도 제프는 <아메리칸 파이>의 10대 남자 아이들처럼 미성숙해 보인다. 사라의 집에 도착한 제프는 각방을 쓰는 것에 항의하고 투정을 부린다. 그는 사라를 사랑하는 듯 하지만 정작 사라와 그의 가족들로부터 그에게 돌아오는 반응은 주로 시큰둥한 종류의 것들이다. 예를 들어 그는 미래의 장인이 떨릴 때는 '아내가 안아주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장인을 안아주고 ‘쿨한’ 사라의 외할머니에게 ‘할머니처럼 안보이십니다’라는 뻔한 인사말을 해서 면박을 받는 '구박덩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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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는 초반부의 <졸업>을 활용한 패러디풍의 개그들이 사라지고 중반부의 사라와 뷰의 일탈에 가까운 로맨스가 펼쳐지면서 영화의 균형이 무너지는 아쉬움을 낳는다. 중반부부터 영화의 결말은 너무나 쉽게 예측된다. 뷰는 완벽하지만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성적인 무능력자'다. 그는 막대한 재산과 인간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혈통적으로) 온전한 가정을 가질 수 없다. 이는 그와 사랑에 빠지는 그녀들(사라, 사라의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일탈에 어느 정도의 도덕적인 면죄부가 될 수 있겠지만, 너무나도 명확한 결말(그녀들은 가정으로 귀환한다)의 비전 또한 제시하기 때문에 영화적인 긴장감을 무너뜨리게 된다. 결말부에 사라가 제프와 뷰 사이에 누구를 선택할지는 명확해 보이고 오히려 <졸업>의 로빈슨 부인과 벤과 같은 사이인, 캐서린과 뷰의 만남에 더욱 긴장감이 형성된다.(이 때 엔니오 모리코네의 <석양의 무법자>의 음악이 배경 음악으로 깔린다.) 더구나 그를 성적 무능력자로 만든 것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사라의 친부인 얼(리처드 젠킨스)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결말은 더욱 확실해 보인다.
<그녀가...>는 60년대의 ‘반문화’를 부정하고 할리우드가 추구하는 중산층의 가치로 회귀한다. 사라는 영화 내내 ‘로맨틱한 사랑’을 대변하는 뷰와의 ‘비상식적인 관계와 미성숙해 보이는 제프와의 ‘상식적인 관계’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그 갈등의 깊이는 그리 깊어보이지 않는다. 사라는 ’결혼‘에 대한 공포를 지니고 있고 그것은 사라의 동생 애니(미나 수바리)의 고통에서 드러나지만, 사라의 공포는 가정(=가부장제)으로의 귀환으로 극복되는 것처럼 '봉합'된다. 영화 속에서 별다른 존재감이 없어 보이던 아버지(리처드 젠킨스)가 떠났던 사라의 어머니를 기다려 사라를 낳았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모든 갈등은 해소되고 '콩가루 가족'의 위기는 완벽한 중산층 가정의 재건과 결혼으로 마무리된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스탠 바이 미>를 만들었던 로브 라이너가 연출한 이 영화는, 로브 라이너에 대한 의심(즉 뛰어난 각본의 힘이 그의 영화를 살렸다는 의심)을 다시 한번 재확인한다. <그녀가...>는 <졸업>이 지녔던 비전을 뒤쫓지도 재해석하지도 못하고 겉돈다. 균형이 무너진 삼각관계 속의 유머 속에는 별다른 새로움이 없고 안전한 가정으로의 귀환을 예감케하는 영화의 진행 역시 김이 빠진다. 사실 라이너의 영화의 힘은 각본의 힘 외에도 탁월한 캐릭터의 힘이 컸다. 샐리가 식당에서 오르가즘 흉내를 내거나(<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체를 찾아 나선 소년들이 모닥불에서 자신의 고통들을 이야기할 때(<스탠 바이 미>) 미저리가 작가의 발목을 부러뜨릴 때(<미저리>) 관객들은 강렬한 그 캐릭터들을 기억해 냈다. 하지만 <그녀가...>의 캐릭터들은 <졸업>의 로빈슨 부인이 좀 더 냉소적이고 현대적으로 변한 캐서린(셜리 맥클레인의 탁월한 해석)을 제외하면 지나치게 단순하다. 물론 많은 관객들에게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결말을 맞는 <그녀가...>의 결말이 더욱 행복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
메뉴 화면
<그녀가...>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캘리포니아라는 배경에서 보듯 기본적으로 밝고 화사한 영상을 제공한다. 하지만 스타급 배우들이 줄줄이 출연했음에도 기대보다는 못한 흥행 스코어를 기록한 영화라 그런지 그다지 두드러진 영상을 선보이지는 못한다. 인물들의 윤곽선은 살짝 무너지는 느낌이고 실내 장면의 표현력 역시 평범한 수준이다. 물론 신작인 만큼 기본은 하지만, '칼 같은'같은 형용사를 쓰기에는 조금 모자란 화질. ★★★☆
영어 돌비 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역시 평범한 수준이다. 영화 자체가 강한 소리를 담고 있는 영화가 아니므로 예상한 수준이다. 물론 사라가 자동차를 몰고 질주하는 장면에서 들려오는 음향 효과와 배경 음악은 흥겹게 표현되지만, 액션 영화 수준의 강한 임팩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영화의 분위기에 맞춰 충분히 즐거운 수준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
극장용 예고편
이 DVD의 가장 아쉬운 점은, 서플먼트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니퍼 애니스톤, 마크 러팔로, 케빈 코스트너, 셜리 맥클레인, 미나 수바리 등 상당한 스타급 배우들이 출연함에도 인터뷰 클립 하나 없다는 점은 아쉽다. 극장용 예고편만이 서플먼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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