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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슨 포드의 현재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영화, <파이어월>

최신작 스릴러 〈파이어월〉은 그런 해리슨 포드의 현재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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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은 액션 영웅

 

어린 관객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겠지만 해리슨 포드는 단연 8,90년대의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타다. 그는 고고학자인지 유물 전문 도둑인지 영 구분이 안 가는 ‘인디아나 존스’와 스페이스 오페라 〈스타워즈 3부작〉의 가장 세속적인 영웅 캐릭터 ‘한 솔로’, 그리고 두 편의 ‘잭 라이언’ 시리즈(톰 클랜시의 스릴러 소설의 영화판인 〈패트리어트 게임〉, 〈긴급명령〉)로 자신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구축할 수 있었다. 실베스타 스탤론이나 아놀드 슈워제네거 같은 근육질 스타들이 박스 오피스를 장악하던 시절, 해리슨 포드는 사람 좋은 미소와 넉넉한 유머를 지닌 로맨틱한 모험담의 히어로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위트니스〉, 〈도망자〉, 〈에어포스 원〉까지 반복적으로 보이는 해리슨 포드의 페르소나는 적당히 세속적이고 적당히 비열하지만 끝내는 선(善)의 편에 서는 실용주의적이며 낙관적인 미국 영웅이다. 하지만, 포드의 성공은 2000년대 들어 지속되지 못했다. 문제는 포드가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로맨틱 가이’로서의 자신의 페르소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로맨틱한 섹스 심벌로서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식스 데이 세븐 나잇〉(1998)와 〈랜덤 하트〉(1999)의 실패와 연기 변신을 꾀한 미스터리 호러물 〈왓 라이즈 비니스〉(2000)의 성공은 포드에게 연기 변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역설하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대 들어 포드의 영화는 더욱 부진했다. 대작 잠수함 영화 〈K-19 위도우 메이커〉(2002)는 완성도는 꽤 높았지만 미국의 관객들은 구소련의 영웅으로 분한 해리슨 포드와 리암 니슨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조쉬 하트넷과 출연한 〈할리우드 호미사이드〉(2003(는 김빠진 맥주 같은 액션 코미디였다. 포드의 전성기는 돌아오지 못하는 것인가?

 최신작 스릴러 〈파이어월〉은 그런 해리슨 포드의 현재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영화다.


 

  

 일단 〈파이어월〉의 초반부는 꽤 흥미롭다. 은행의 컴퓨터 보안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하는 보안 담당 이사 잭 스탠필드(해리슨 포드)의 가정은 부유하지만 왠지 불안해 보인다. 스탠필드는 아이들의 방학이라는 소식을 시큰둥하게 받아들이는 워커홀릭 타입의 가장이다. 그건 아버지의 출근에 뚱한 표정을 짓는 맏딸 사라의 표정에서도 드러난다. 번잡스런 이 가정의 아침 표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그다지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한 보통 가정의 모습이다. 간신히 이 가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충실한 아내이자 훌륭한 어머니인 동시에 건축가이기도 한 ‘슈퍼 마더’ 베스(버지니아 매드선)의 존재다. 사실 스탠필드가 집에서 할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 가정에 갑작스럽게 강도/테러리스트들이 침입하여 모든 것므 바꿔버린다. 〈파이어월〉에서 진정 흥미로운 점은 이들 강도/테러리스트들의 행동 패턴과 모습이다. 큰딸 사라가 “왜 우리를 미워하죠?”라고 묻자 강도는 “미워하지 않아. 죽든 말든 관심이 없는 거지!”라고 말한다. 〈파이어월〉의 강도/테러리스트들의 모습에는 여러 면에서 9/11 이후 미국의 중산층이 느끼는 ‘테러’에 대한 공포가 반영되어 있다. 미국인들에게 9/11이 준 충격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20세기 들어 미국은 늘 전쟁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이었다. 미국인에 대한 테러는 늘 있었지만 미국에 대한 테러는 없었고, 미국이 참전한 전쟁은 무수했지만 미국에서 전쟁이 벌어진 것은 2차 세계대전 때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진 하와이, 진주만 습격이 유일했다. 하지만, 9/11은 미국의 문화적인 수도라고 할 수 있는 뉴욕에서 벌어졌다. 이제 미국인들에게 ‘테러’는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나라에서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말 그대로 ‘테러’는 더 이상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가 된 것이다. 〈파이어월〉에서 ‘테러’는 가장 안전한 안식처인 ‘가정’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다.

 

 

 

 외견상 〈파이어월〉의 강도들은 그냥 ‘범죄자’다. 단순히 가정에 침입하는 살인자나 범죄자의 모습은 그리 새로운 것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윌리엄 와일러의 <광란의 시간>을 비롯해 할리우드의 스릴러 영화 속에 끊임없이 나타난다. 하지만, 〈파이어월〉의 강도들을 단순히 범죄자로 보기에는 (돈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에도) 무리가 있다. 일단 이들은 철저히 타자화(他者化) 되어있다. 유난히 유럽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영국 배우 폴 베타니를 강도들의 리더인 빌 콕스로 캐스팅한 것에서 보듯, 이 영화 속의 강도/테러리스트 멤버는 주류 미국 사회의 바깥, 더 나아가서는 (비록 백인이기는 하지만) 외국인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영화 안에서 소개되지 않을 뿐 아니라 의도적으로 삭제되어 있다. 실제로 강도/테러리스트 멤버 중 하나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가족들에게 동정적인 모습으로 변화하지만 떿화는 그에 대해 동정적인 시선도 주지 않는다.


 〈파이어월〉에서 그들에게 주어지는 설명이란 단지 ‘돈을 위해 스탠필드의 가정을 위협한다’ 정도다. 그건 심지어 스탠필드와 같이 영화를 양분하고 있는 강도/테러리스트들의 리더이자 주인공인 빌 콕스(폴 베타니)조차도 그렇다. 영화 속에서 그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다. 영화 안에서 그는 오직 범죄를 성공하기 위해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에게 치명적인 과자를 먹이고 스탠필드를 위협하기 위해 동료마저 살해하는 냉혈함만이 부각되어 있다. 이렇듯 〈파이어월〉의 범죄자들은 철저히 잭 스탠필드(미국 중산층)라는 필터를 거쳐 바라보는 제3자일 뿐이다.


 

 


 이토록 철저히 타자화된 강도/테러리스트들은 각종 도청 장치와 감시 카메라 등의 현대 과학 기술로 중무장한 채 ‘가정’을 위협한다. 적어도 〈다이 하드〉 시리즈에서 ‘테러’는 가정 밖에서 일어났다. ‘테러’는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의 가정에는 커다란 위협이 될지 몰라도 관객은 편안히 구경하면 될 일이었다. 그건 ‘테러’가 가정 ‘밖’, 즉 빌딩이나 공항 같은 곳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이어월〉에서 ‘테러’의 위험은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현실’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파이어월〉이 현대의 정보 통신 기술을 구체적인 위협의 형태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침입자를 감시하기 위한 감시 카메라는 역으로 강도들이 가족을 감시하는 도구로, 휴대전화는 도청과 위치 확인의 장치로 역이용된다. 더구나, 스탠필드가 위협받게 되는 것은 그가 앞서 말한 감시와 보안 장치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안전을 위한 장치가 오히려 가족의 평화를 깬다는 역설. 그것이 〈파이어월〉이 선보이는 나름의 설득력이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파이어월〉은 소재가 지닌 전복적인 성격을 썩 훌륭하게 담아내지 못한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제시된 균열된 가족의 모습은 ‘테러’와 ‘납치’라는 위기의 과정을 거치며 너무나 쉽게 봉합된다. 대부분의 할리우드의 범작 액션 스릴러들이 그렇듯이, 〈파이어월〉에서 위협은 영웅의 능력으로 충분히 극복 가능한 것으로 묘사되며 ‘가족주의’는 끝끝내 지켜지는 가치다. 하지만 ‘테러’라는 상흔(傷痕)을 거친 가정이 온전한 모습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은 막연한 믿음에 불과하다. 이미 마틴 스콜세지의 〈케이프 피어〉에서 드러나듯, 영화의 내러티브적인 완결성과 상관없이 ‘폭력’의 과정을 거치면서 가정은 어떤 형태로든 후유증을 앓게 된다. 한마디로 〈엑스맨〉〈스파이더맨〉이 돌연변이의 설움과 성장의 고통을 앓는 시대에 〈파이어월〉은 지나치게 고답적인 태도를 보인다.


 

 

 더구나 가족 대 강도/테러리스트, 스탠필드 대 콕스로 짜여진 이 영화의 균형은 지나치게 잭 스탠필드(해리슨 포드)라는 영웅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고 그 반대편에 대해서는 매우 애매한 설명만이 부가되면서 영화적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한다. 후반부에 이르러 영화의 과제가 ‘스탠필드가 자신이 구축한 보안 체계를 어떻게 깨뜨릴 것인가의 문제’에서 ‘스탠필드가 가족을 어떻게 구해낼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되면서 영화의 구도는 지극히 단순해진다. 영화의 상당한 분량에 출연하면서도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는 콕스는 반인륜적인 범죄자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하게 되면서 영화는 지극히 단순한 액션 스릴러 영화로 전환되며 해리슨 포드는 서두에 말했던 자신의 영웅 페르소나로 귀환한다. 이제 해답은 명쾌해진다. 도덕적 우위를 지니고 있는데다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살해의 대상으로 금기시된) 충실한 조강지처와 아이들과 개로 구성된 스탠필드의 가족이 ‘영웅 해리슨 포드’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문제는 해리슨 포드가 자신의 ‘영웅 이미지’를 육체적으로 구현하기에는 나이가 좀 많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액션 시퀀스를 직접 연출할 정도로 열의를 쏟아 부은 그이지만 〈파이어월〉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주름살 가득한 해리슨 포드의 얼굴과 둔해 보이는 그의 몸놀림이었다. 만약 해리슨 포드가 여전히 자신의 ‘액션 스타 이미지’를 구현하려고 한다면 뭔가 확실한 ‘마술’이 필요할 듯하다. 늙은 배우가 액션 영화를 찍지 못할 이유는 없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사선에서〉에서 자기 반영적인 패러디를 통해 영화의 긴장감과 유머를 모두 담아낸 바 있으며, 기꺼이 독립영화에 출연할 줄 아는 브루스 윌리스는 자신의 〈다이 하드〉 페르소나를 여러 형태로 변주하며 배우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해 간다. 그 둘은 해리슨 포드에게 좋은 본보기다. ★★


                                         메뉴 화면


  〈파이어월〉 DVD는 적당한 흥행 규모에 걸맞게 적당한 영상 표현력을 구현한다. 일단 잡티는 찾아보기 어렵다. 최신작 할리우드 영화가 대개 그렇듯 선명하고 또렷하지만 눈에 띄는 두드러짐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밤 장면이 비교적 많은 편이지만 적당한 콘트라스트로 평균적인 영상을 선보이는 정도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베일 것 같은 날카로움을 선사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근거한 판단이지 전체적인 수준으로 보자면 최신작 기준으로 평균을 약간 웃도는 정도의 영상. 당연히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에서는 조금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일반 TV에서는 별 불만이 없을 정도의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다.
★★★

 영어 돌비 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아무래도 액션 스릴러 영화다 보니 임팩트가 더 잘 살아 있는 편이다. 특히 우퍼부의 활용이 두드러지는 편인데, 액션 영화치고는 총격신이나 자동차 추격신 등이 별로 없는 편이기는 하지만 자동차 운행 장면이나 물리적인 충돌이 벌어지는 장면에서는 스피커의 존재감이 잘 살아있는 편이다. 블록버스터급 타이틀에 비해 조금씩 부족한 느낌이지만 음향의 입체감이라는 면에서는 적절한 표현력을 전해준다. ★★★

 

            Firewall Decoded : 해리슨 포드와 리처드 론크레인의 대화 (15:26)

할리우드산 DVD에서 보기 어려운 꽤 솔직한 대화가 담긴 서플먼트. 주연 배우인 해리슨 포드와 갑작스런 연출자의 변경으로 연출을 맡게 된 감독 리처드 론크레인의 대화가 담겨 있다. 두 사람은 비교적 영화의 흥행 결과가 괜찮았다며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듯하지만,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의 불만도 토로한다. 특히 기획 단계부터 영화 제작에 깊숙이 관여한 해리슨 포드의 불만이 꽤 많이 표현되는데, 그의 표현을 축약하자면 ‘좋지도 못한 각본이 촬영 전날에나 나오는 상황에서 영화를 찍기 위해 악전고투했다’ 정도일 것이다. <윔블던>과 <리처드 3세>를 연출한 영국인 감독 리처드 론크레인은 웃음을 띠며 말을 아끼는 데 비해, 해리슨 포드는 영화의 여러 가지 아쉬운 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메뉴를 통해 해리슨 포드가 영화의 후반부에 펼쳐지는 액션 시퀀스의 연출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기도 하다.

 

                              Firewall : writing a thriller (03:16)   

이 영화가 ‘영화화된’ 첫 번째 각본이라는 각본가 존 포르테의 간단한 인터뷰 클립이다. 글이 잘 안 풀릴 때면 그림을 그린다는 그의 집 주차장 작업장의 모습이 눈에 띈다. 〈파이어월〉 DVD의 서플먼트는 매우 간략한 수준으로 극장용 예고편 정도가 더 제공되는 수준.  ★★

『파이어월』

 

    감독 : 리처드 론크레인

    주연 : 해리슨 포드, 폴 베타니, 버지니아 매드선

 

    ■ Spec

    화면 Anamorphic Widescreen 2.35:1
    음향 Dolby Digital 5.1

    더빙 영어, 태국어
    자막 한국어, 영어, 중국어, 태국어, 인도네시아어

                                         상영시간 104분 43초
                                         지역코드 Dual Layer / Region 3
                                         제작년도 2006년
                                         출시일자 2006-05-23

Special Feature
- Firewall : 해리슨 포드와 리처드 론크레인의 대화
- Firewall : writing a thriller
-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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