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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팔방미인 윌리엄 모리스

윌리엄 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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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의 생태 사상은 오늘 우리가 취해야 할 바에 긴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1996년 세계 각지에서는 모리스 타계 1백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졌다.

외신이 전하는 멕시코만 연안과 카슈미르 지역의 자연재해로 인한 희생자 숫자는 좀처럼 실감이 안 난다. 지난해 동남아시아 대 해일의 엄청난 피해 규모에 ‘면역’이 된 탓일까. 아니면, 자연재해라서 사람의 힘으론 어쩔 수 없다는 ‘체념’ 때문일까. 사람을 감염시키는 조류 독감이 불러올 어마어마한 희생자 추정치가 일순 충격을 주기는 했으나, 이 또한 실감이 덜 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이런 생각은 든다. 지금이 21세기가 맞나? 이러다 세상이 어떻게 되는 건 아닌가?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의 종말이라는 것에 대해 너무 큰 기대는 걸지 말 일이다.”라는 스타니슬라프 J. 레크라는 사람의 말은 옳다. 하지만 인류의 생존은 장담을 못한다. 더구나 갈수록 스스로 몰락을 재촉하고 있음에랴.

자연재해가 오로지 하늘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환경친화’만으로는 경각에 다다른 인류의 생존 문제를 풀기 어려워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첫손 꼽히는 자전거 도시의 ‘친환경’이 콘서트장에 서로 먼저 들어가려다 빚어진 압사 사고를 막지 못하고,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 ‘새물맞이’ 행사가 애꿎게 시민 한 분을 제물로 삼는 까닭이다.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의 생태 사상은 오늘 우리가 취해야 할 바에 긴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1996년 세계 각지에서는 모리스 타계 1백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런데 범세계적으로 펼쳐진 이 행사는 우리나라를 비켜 갔다. 모리스에 대한 한국어 개설서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2년 만에 비로소 나왔다.

필자가 보기에 모리스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는 그의 전인적 기질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개마고원, 1998)에서 박홍규 교수가 거명한 그의 직함은 양 손가락으로 꼽아도 모자란다. “19세기 후반 영국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 수필가, 번역가, 건축사상가, 공예가, 디자이너, 정치가, 사회주의자, 사회개혁가, 낭만주의자, 생태주의자, 환경보호운동가, 문화유산 보존운동가, 아나키스트, 유토피아주의자, 정치평론가, 교육사상가 등.”

좁은 전공 분야의 테두리에 갇혀 있는 우리 학계와 지식계의 풍토에서는 이렇듯 다양한 분야에 족적을 남긴 모리스를 몰라보는 게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모리스를 “현대 사상의 선구자로 인정”하는 서구 지식 사회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박홍규 교수의 지적이다. 1934년 모리스 탄생 1백주년 맞은 영국에서 그는 “무해한 성자로서 기념되었”고, 혁명가로서의 모리스에 대해선 아무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리스의 진면목을 간과하는 왜곡된 전통은 여전하다.

“그러나 모리스의 그 어떤 예술 작품이나 뛰어난 사상도 혁명적 사회주의자 모리스를 무시하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즉,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노동자계급의 승리를 위하여 싸운 사회주의자로서의 그를 외면한다면 그가 만든 작은 들꽃 무늬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박홍규 교수는 윌리엄 모리스를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진정으로 인간답게 살려는 유토피아의 변증법적 발전 과정에서 궁극적인 종합을 형성한 사람”으로 본다. 또한 “그는 개인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민중 전체의 영원한 희망과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필사적으로 유토피아를 모색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가 생각했던 유토피아 사회의 기초는 자유로운 노동과 예술적인 삶”에 있다. 박홍규 교수가 파악한 “모리스의 노동관은 대단히 단순하고 명확하다.” 모리스는 “노동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창조적인 행위이지 결코 고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모리스에게 예술이란 노동을 무용하게 만드는 산업화에 저항하여 노동자가 자신의 참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저항의 원리이다. 즉, 예술이란 궁극적으로 노동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생활의 포괄적인 이론으로서 모리스만의 독창적인 사회주의 사상과 연결된다.”

따라서, 박홍규 교수는 모리스가 “치밀한 이론을 만들어 내기보다 오직 스스로 삶을 통하여 노동과 예술을 조화롭게 통합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로 평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또한 낡모리스가 추구한 새로운 사회주의의 바탕”은 “노동의 예술화와 자연화, 생활의 예술화와 자연화, 그리고 사회의 예술화와 자연화”로 요약된다.

모리스의 다양한 면모 가운데 중요한 것 몇을 살펴보면, 그는 뛰어난 문학가였다. 시적 재능이 뛰어나 알프레드 테니슨이 죽고 나서 계관시인으로 추대 받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시학 교수로 천거되기도 했으나 모두 거절했다. 소설가와 산문 작가, 그리고 번역가로도 문명(文名)을 떨쳤다.

한편, 모리스는 현대 디자인의 시조로 통하는 아트디렉터다. 공예 작품은 혁신적이고 급진적인 스타일이라는 평판이 있고, 현대 기능주의 건축에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치적으로는 19세기 후반 사회주의 운동의 지도자로 활약했다. 그런데 박홍규 교수는 모리스의 정치 활동보다는 사상가로서의 모리스에게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한마디로 모리스 정치 사상의 핵심은 중앙집권적인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지배가 배제된 분권화된 자치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유로운 인간, 자유로운 교육, 자유로운 사랑, 자유로운 노동에 근거하며, 생태와의 조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자유?자치?자연이라고 하는 삼위일체의 철학이었다.”

모리스의 생애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아이슬란드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여행이 눈길을 끄는 건, “가난하지만 계급 차이가 없이 평등하게 사는 사회를 경험”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적극 수용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 모리스는 아내의 간통으로 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한때, 모리스는 아내와 그녀의 정부, 이렇게 셋이서 기묘한 동거를 하기도 했다.

단일 조세론과 토지국유화를 주장한 헨리 조지에게 큰 영향을 받았고,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푸리에의 ‘이상 사회’에 공명한 모리스는 폭력 혁명이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의 투쟁을 주창했다. 모리스는 그가 구상한 ‘친밀한 상식’의 사회주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가 사회주의라고 하는 것은 부자도 빈민도 없고, 주인도 노예도 없고, 실업도 과잉 노동도 없고, 정신착란의 두뇌노동자도 상심한 육체노동자도 없는 사회, 요컨대 모든 사람이 평등한 조건 속에서 살 수 있고, 낭비 없이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해가 되면 모두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 결국 공동선(commomwealth)의 실현을 뜻한다.”

공동선을 구현하고 있는 사회의 모습은 윌리엄 모리스의 장편소설 『에코토피아 뉴스』(박홍규 옮김, 필맥, 2004)에 잘 그려져 있다. 자본주의를 넘어선 이후 삶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 것이, 마르크스 혹은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로 지적돼 왔다. 이 소설은 그러한 사회주의 기획의 아쉬움을 말끔히 해소한다.

상업주의 시대와 마지막 문명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도래한 ‘평안의 시대’는 정말이지 꿈만 같다. 합목적의 절제된 생산만 보더라도. “순수한 사용을 위한 물건 외에는 어떤 것도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질 나쁜 물건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나아가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만들지를 않습니다.”

옛 국회의사당을 거름창고로 쓰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에서 사유재산제는 폐지되었고, “사유재산이 만들었던 법률이나 법률에 의한 범죄도 모두 사라졌”다. ‘훔쳐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금기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긍정의 강조 형태로 바뀌었다. 누군가는 이 소설의 내용이 한낱 몽상에 불과하다며 낮춰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Dream come true.’

이광주 교수의 『윌리엄 모리스, 세상의 모든 것을 디자인하다』(한길아트, 2004)는 ‘아트디렉터’로서 모리스의 면모를 한눈에 보여준다. 모리스 부부의 신혼 살림집으로 지은 ‘레드 하우스’와 모리스가 디자인한 벽지, 타일, 가구 따위가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모리스가 만든 책의 화려한 삽화와 우아한 장정이다.

모리스는 이상적인 책이 갖춰? 할 조건 세 가지로 종이와 활자의 모양, 그리고 판면의 레이아웃을 꼽았다. 모리스는 1473년경 베네치아와 볼로냐에서 생산된 것을 가장 좋은 종이로 쳤고, 고딕체를 가장 바람직한 활자체로 여겼다. 그는 “또한 글자와 행의 균형 잡힌 간격 그리고 인쇄 판면 위치와 여백에도 크게 신경 썼다.”

이 책에 실린 사진 100여 장 가운데 “윌리엄 모리스와 동지들의 첫 공동작업 장소인 옥스퍼드 대학교 학생회관 2층”이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이 제일 인상적이다. 학생회관에 벽화가 그려진 것은 그렇다 해도, 무슨 책이 그리 많은지. 학생회관의 장서 규모가 우리 나라의 웬만한 단과대학 도서관과 비슷하다. 학생회관의 기능이 나라마다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로망스를 창작하고 ‘북구 신화’를 번역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모리스가 J.R.R. 톨킨 환상문학의 젖줄이었다는 사실은 좀 의외다. 톨킨 연구가 더글러스 A. 앤더슨이 엮은 『톨킨의 환상 서가』(김정미 옮김, 황금가지, 2005)는 톨킨과 『반지의 제왕』을 만든 이야기 22편을 싣고 있는데 윌리엄 모리스의 「마운틴 도어 사람들」은 그 중 하나다.

이 이야기는 ‘호스트 로드(Host-Lord)’ 왕가의 조상신 혹은 시조신이 용맹하고 현명한 왕의 첫 아이 작명을 축하하는 연회장에 나타나 왕손의 태어남을 반기고, 안녕을 기원하며, 고난을 경계하는 내용이다. 「마운틴 도어 사람들」의 첫 장에는 이런 설명이 있다.

“윌리엄 모리스는 톨킨이 환상 문학을 추구하게 만든 작가로, 톨킨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모리스는 「베어울프」와 아이슬란드 사가를 번역한 시인이었고, 중세풍의 분위기와 문체를 지닌 전기 소설 작가이기도 했다. 톨킨은 소년 시절에 처음으로 모리스의 번역서를 접했고, 모리스가 다녔던 옥스퍼드의 엑세터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그에게 더욱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후에 『잃어버린 이야기들(The Book of Lost Tales)』로 출판되었던 중간 세계에 대한 톨킨의 초기 작품들에서 모리스에게서 영향을 받은 고문체와 양식을 엿볼 수 있다.”

권말의 저자 소개에서는 윌리엄 모리스가 말년에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모험 소설을 7편 썼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톨킨의 환상 서가』의 한국어판 대표 저자로 윌리엄 모리스를 올린 것은, 톨킨과의 연관성이나 모리스의 로망스 작품 때문이라기보다는, 이젠 그가 우리 독자들에 제법 알려져서다. 이 책에 작품이 수록된 작가 22명 가운데 그나마 윌리엄 모리스의 이름이 제일 낯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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