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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고, 적은 것이 오히려 많다

- 생태 사상가 E. F. 슈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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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마허는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한 세대 전에 씌어진 글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혜안이 돋보이는데 슈마허의 예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 F. 슈마허(1911∼1977)는 경제 이론과 실물 경제에 모두 능통했던 경제학자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경제학자보다는 생태 사상가로서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슈마허는 세계 환경운동사상 최초로 전일적인 시각을 갖춘 사상가로 평가 받는다. 지난 1년 사이에 문예출판사를 통해 두 권의 슈마허 책이 출간된 것은 그런 평판과 무관하지 않다.

 『내가 믿는 세상』(문예출판사, 2003년)이 번역됨으로써 그간 소문만 무성했던 슈마허의 유작 가운데 한 권이 드디어 한글판을 얻었다. 이 책은 슈마허가 영국의 환경잡지 『리서전스』에 기고한 글을 엮은 것이다. 1998년 『녹색평론』을 통해 슈마허의 부인이 쓴 서문이 먼저 소개된 바 있다. 이 책에서 슈마허는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한 세대 전에 씌어진 글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혜안이 돋보이는데 슈마허의 예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들은 단순 논리에 따라 빠른 교통과 즉시 연결되는 통신이 자유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고 믿지만(별 의미가 없는 일부 측면에서는 실제로 그렇다), 이 업적이 동시에 자유를 파괴하는 경향 또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의식적인 정책이 개발되고 의식적인 행동이 취해져서 이 기술 발달의 파괴적 효과를 완화시키지 않는다면(이 조건에 주의하라), 이 업적은 모든 것을 극단적으로, 또 매우 불안정하게 만든다."

서울의 승용차 등록대수가 200만 대를 넘어서고, 전국적으로는 자가용 승용차가 1천만 대를 헤아리지만 사람들은 그다지 자유로운 것 같지 않다. 승용차를 훨씬 웃도는 보급률을 보이는 휴대 전화 역시 부자유를 촉진하는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도 정보 통신 업무를 관장하는 정부의 주무 부서는 휴대 전화의 파괴적 효과를 완화하는 정책을 개발?시행하기는커녕 통신사업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입안?실행해 기술 발달의 파괴적 효과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슈마허의 부동산 투기 억제책을 읽을 수 있다. 「토지 투기, 어떻게 근절할 것인가」에서 슈마허는 토지의 국유화로는 부동산 투기를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우선, 국가가 땅을 살 돈이 없을 뿐더러 설령 그럴 돈이 있더라도 토지의 국유화는 불가피한 행정의 관료화로 인해 국민들의 의욕을 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치솟는 집값과 땅값을 붙잡기 위해 우리 당국이 내놓은 처방-신도시 건설, 토지 거래 허가제, 분양권 전매 금지-은 토지의 국유화보다 더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슈마허는 토지 투기의 근절책으로 '등록 가치'에 의한 거래제를 제안한다.

"토지 투기를 중단시키기 위해서 할 일은 오로지 어떤 토지 소유자도 그 토지의 '등록된 가치' 이상을 가질 수 없다는 규칙을 확정하는 것뿐이다."

이 '등록된 가치'에 따른 토지 거래제의 세부 내용은 290∼293페이지 사이에 설명돼 있다. 이 제도의 골자는 제도를 시행할 경우, "현 소유자도 차후의 어떤 구매자도 토지 소유를 통해서 횡재할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하겠느냐?'고 따질지도 모를 비판자들을 상정하고, 슈마허는 그들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그래, 당신이 이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더 나은 틀을 제안해 보시겠소?"

슈마허는 폭력의 뿌리를 파헤치기도 한다. 슈마허는 전쟁 억제책의 일환으로 국제 경찰 조직의 창설과 국제적 법치의 도입을 수긍하면서도 그러한 방법은 세계 평화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가슴을 비하하는 문명, 과학 만능주의, 실증주의, 합리주의의 형태로 객관성을 우상화하는 문명, 의사 결정은 감정의 개입을 배제한 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교육의 기초가 되어 있는 문명은 불가피하게 폭력의 무제한적인 위협에 스스로를 노출시"키기에 지혜의 원천이 되는 가슴을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내가 믿는 세상』의 압권은 가난에 대한 성찰이다. 「의식적인 가난의 문화」에서 슈마허는 '부자여야 행복하다'는 현대의 신화를 인류의 보편적 전통과 모순되는 조잡한 물질주의 철학의 산물로 본다. 또 그는 우리의 물질적 욕심에 끝이 없을지라도 사람의 물질적 필요는 제한돼 있고, 아주 적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게다가 "우리는 빵만으로 살 수 없으며, 우리 욕심의 증대는 우리에게 '좋은 삶'을 가져다줄 수 없다." 또한, 슈마허는 가난과 궁핍을 구별한다. 

"내 말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일상적인 어떤 종류의 문화에든 완전히 해로울 수 있을 정도의 가난은 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두자. 그것은 본질적으로 '가난'과는 다르며 별도의 이름이 있어야 마땅하다. 여기서 제시되는 용어는 궁핍이다. 사람이 육신과 영혼을 함께 유지하기에 충분한 만큼을 소유하지만 저축할 정도는 아닌 경우를 '가난'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에, '궁핍' 상태에서는 육신과 영혼 모두를 유지할 수 없고 정신마저도 박탈당한다."

진정한 진보는 덧없는 재화를 향한 욕망을 떨쳐버린, 검소한 삶을 강조하는 생활 양식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슈마허는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덜 풍요로운 삶이 주는 행복"을 일깨우는 글귀를 모은 책인『자발적 가난』(그물코, 2003년)의 한글판에 슈마허가 대표 저자로 등재된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더구나 슈마허의 글은 서문 역할도 하고 있다. 서문에서 슈마허가 시구처럼 표현한 뒤집힘의 논리가 재미있다.

"평화주의자는 투사가 되고,
자유의 투사는 독재자가 된다.
축복은 저주가 되고,
노동 절약형 기계는 견딜 수 없는 짐이 된다.
도움은 방해가 되고,
더 많은 것이 더 적게 된다."

전복의 논리를 담은 시구의 끝 줄은『자발적 가난』의 원래 제목과 일맥상통한다. 이 책의 원제는 '적은 것이 오히려 많다Less is More'이다. '적은 것이 많다'는 논리는 슈마허의 전매특허랄 수 있는 슬로건을 떠올리게 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이것은 본래 슈마허의 대표 저서의 제목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는 이 제목을 딴 잡지가 있고, 칼럼 제목으로도 곧잘 쓰이곤 한다. 『아웃사이더』 제12호에도 그런 글이 실려 있다. 충북 음성 꽃동네 사태를 비판적으로 다룬 글을, 노혜경 시인은 이렇게 마무리한다. "작아지는 것이 아름답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슈마허는 인간 중심의 경제학을 추구한다. 그는 현대인이 지닌 중대한 오류를 지적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고 이제는 최고의 생활 수준을 누리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은 커다란 착각이라는 것이다. 슈마허는 "공업문명은 재생할 수 없는 자본을 태평스레 소득이라고 착각하여 그것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슈마허는 인류가 경제생활에서 영속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다시 말해, 현대적 의미의 번영의 확대를 통해서는 평화의 기초를 마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번영의 달성은 탐욕이나 질투심 따위의 충동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런 충동은 지성, 행복, 평정심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불교와 경제』라는 제목으로 나온 것까지 합쳐『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한글 텍스트는 다섯 종이나 된다. 그런데 환경?생태 서적을 선호하는 독자들 사이에서 이 책의 번역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높다. 2002년 출간된 최신 번역판마저 독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오래 전에 절판됐지만 한글판을 얻은 슈마허의 또 다른 책으로는 『인간회복의 길』(한벗, 1981년)이 있다. 이 책은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A Guide for the Perplexed'을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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