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한울의 그림으로 읽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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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작가를 알게 된 계기는 굉장한 우연이었습니다. 90년대 중반쯤,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다니며 Nirvana에 전율하고,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낙서에 자족하며, 기묘한 하루키에 열광하고, 알 수 없는 말들로 빼곡히 들어 찬 일본 만화에 심취하던 시절『Hot Music』이라는 잡지를 읽다 눈에 띈 구절이 있었으니 'Nirvana 마지막 앨범 In Utero의 Scentless Apprentice란 곡은 커트 코베인이 파트리크 쥐스킨스의 『향수』란 소설을 읽고 감동받아 만든 곡' 이란 문구.
'향수를 읽고' ,'향수를 읽고', '향수를 읽고' .... 잡지를 덮은 그 순간부터 제 머리 속엔 '나도 『향수』를 읽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뭐 그런 기사 한 줄 따위를 읽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요? 라고 묻는다면 굉장히 난처하겠지만, 그 당시 도리야마 아키라나 츠카사 호조 같은 만화가들이 저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동기와 계기를 마련해 줬다면, Nirvana의 음악은 '살아있다'는 게 어떤 건지 느끼게 해줬고, 커트 코베인이란 인물은 저의 우상이었으며, 하나의 아이콘 그리고 꿈을 밀고 나가는 힘은 이성이 아니라 희망이며, 두뇌가 아니라 심장이라는 것을 알 게 해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쨌든 며칠 뒤 서점으로 뛰어가선 안내원에게 '혹시 『향수』란 소설이 있나요?'하고 물으며 두근두근 했던 느낌이 어제의 기억처럼 생생합니다. 책을 손에 들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는 '어떤 소설일까?'라는 궁금증에 먹구름이 낀 하늘처럼 머리 속이 답답하면서도, 마음 속 한편으론 ‘헤세나 헤밍웨이, 톨스토이, 빅토르 위고, 괴테 등등 고전문학 같은 느낌의 책이 아닐까?’라며 단정 지어 버리기도 했습니다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착각이었죠.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읽기 시작해 다음날 학교에서 그리고 다시 집에 돌아와서는 전부 읽어버렸습니다. 흡사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 이런 느낌을 받을까요? 굉장한 속도감과 흡입력, 한 챕터 한 챕터 넘어갈 때마다 느껴지는 긴장감, 견고하고 세련되며 강직한 문체, 기묘한 상상력 등등 도저히 한 번 읽기 시작해서는 손을 놓을 수 없는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앞에 나열한 문학인들을 상상하고 있었던 저로선 쇠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뒤론 쥐스킨트 증후군에 시달려 『좀머 씨 이야기』, 『비둘기』, 『깊이에의 강요』 등등 그의 모든 책들을 전부 독파하며, 한동안 다른 작가들의 책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기묘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쥐스킨트를 아직 접해보지 않으신 분들껜 정말 자비를 털어서라도 선물하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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