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인지, 어디에서인지 확실히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만, 러시아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실제로 본 이야기가 나와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생긴 물건이 우주공간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 싶게 그렇게 조악할 수가 없더랍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스푸트니크를 봤다는 게 아니고요. 워싱턴 스미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에 갔을 때였습니다. 박물관에 입장하여 첫 우주선을 보았을 때부터 아연실색의 연속이었습니다. 스푸트니크야 인공위성이기라도 했지만, 사람을 태우는 유인 우주선의 위용이 너무나 보잘것없었던 것입니다. 하단부에는 웬 금박지 같은 게 둘러쳐져 있고, 동체도 강철만큼도 단단해 보이지 않는 게, 허술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 아폴로 우주선의 달착륙선. 워싱턴 D.C. 미국국립항공우주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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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에는 그래도, 강철하고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단단하고 내구성 있는 소재일지도 모르지만, 저로서는 그런 것은 알 도리가 없었지요. SF 영화의 반짝반짝 강인하게 빛나는 우주선만 보아오다가, 실물을 접하고 나니 거의 황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영화는 영화지, 철부지 같은 생각은 접어두자고 해도, 속으로는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를 연신 외쳐댈 수밖에 없었답니다. 사실은 대단한 재질로 만들어졌을 테니 겉모양 때문에 비롯된 것은 아니겠지만, 달착륙 조작설도 불거져 나오고 말입니다. 사실이 어쨌거나, 우주여행과 개발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열기는 줄어든 게 분명합니다. 1972년 12월 아폴로 17호를 끝으로, 유인 우주선이 달에 간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습니다.
우주여행, 특히 지구에서 가장 가깝고 크게 보이는 별인 달에 가겠다는 것이 인류의 오랜 갈망이었음도 있지만, 미국이 그 가차 없던 냉전의 시기에 소련을 이기자고 들면 못할 짓이 없었을 때 태어난 프로젝트가 달 착륙이었고, 인기를 얻기 위한 케네디의 “수작”이었다는 이야기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1969년 7월에 인간의 발이 달에 처음 닿았을 때는 정치적인 이유야 어쨌건 간에 그것만으로도 전세계를 열광시킬 만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사정이 점점 더 달라집니다. 수백 억 달러를 들여 달에 가는데도 눈에 띄는 성과는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는 야도만 하고 오는 수준이었으니 본전 생각이 슬슬 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게다가 그 위험한 프로젝트에 목숨을 건 우주비행사들의 영웅담도 빛이 바래기 시작합니다. 아폴로 13처럼 한쪽 모듈에서 폭발이 일어나 무사히 지구에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위험천만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급기야는 뉴스거리도 못 될 지경에 이릅니다.
| 그들이 달에 간 이유, 〈지구에서 달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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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들은 선거 캠페인에서 혈세를 낭비한다는 원망을 품은 민심에 달의 ㄷ자만 꺼내도 낙선을 자초하는 꼴이 되므로, 달 유인 우주선 계획은 아폴로 17호에서 종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인간이 지구 아닌 다른 별에 발을 내딛었다는 꿈이 이루어진 것에 하나의 명분이 사라졌고, 그것으로 미국의 로켓 기술, 더 나아가 미사일 공격 능력이 더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했으니 또 하나의 명분이 사라져버립니다. 그러고 나서도 나사NASA에 돈을 퍼부어주려면 또 다른 명분과 실적이 필요한데, 2000년대인 오늘날에도 1960년대 SF 같은 것에서 그렸던 2000년대의 과학과 기술력에서는 한참 동떨어져 있는 형국입니다. 오늘날에도 우주탐사는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지만, 1960년대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던 순간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꿈꾸고 욕심내던 수준만큼은 아니겠지요. 나사는 한 푼의 재원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화성탐사선과 로봇이 찍어온 사진으로 이슈를 만들어내느라 여념이 없고요.
〈아폴로 13〉에 출연했던 톰 행크스에게는 그토록 안타까운 상황이 없었던 듯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1998년에는 HBO를 통해
〈지구에서 달까지〉라는 상당한 스케일의 12부작 미니시리즈를 내놓게 됩니다.
〈지구에서 달까지〉는 케네디가 1960년대가 가기 전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고 공언한 이래, 1961년부터 시작된 달 착륙 계획과 1972년 마지막 유인 우주선 아폴로 17호의 이야기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관계 등 정치적인 문제는 거의 배제하고, 프로젝트에 실제로 참여했던 수만 명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피땀을 그리는 데 주력하고 있지요. 닐 암스트롱도 여기서는 세계 최초로 달을 밟은 영웅이 아니라, 그 수만 명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형식은 드라마도 아니고 다큐멘터리도 아닌 것이, 거의 재연 드라마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 아폴로 14호의 우주인 앨런 셰퍼드가 달에서 골프를 치는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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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를 빙자하여 정치적 음모 등을 선정적으로 그리자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고, 눈물나는 휴먼 드라마로 시청자들을 끌어 모을 수도 있었겠지만, 제작자가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최대한 자기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그려낼 수 있는 것이 HBO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연대기적인 기술이 아니라, 에피소드마다 달착륙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서로 다른 집단이 하나씩 중심이 되어 이끄는 이야기를 보게 됩니다. 아폴로 17호까지 거의 늘 바뀌었던 비행사 팀의 이야기는 물론이거니와, 본부에서 그들을 지휘하는 사람들 편, 우주선을 제작하는 회사 편, 〈브로트캐스트 뉴스〉 풍의 언론인 편, 나날을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며 굳건해야 한다는 자기 독촉 속에서 지내야 했던 우주비행사들의 부인 편에서 인물들은 각자의 관점으로 극을 이끌어가지요.
달 착륙 성공을 바라보는 휴스턴 본부에서의 박수 소리도 요란하지 않습니다. 앤드류 차이킨의 『A Man on the Moon』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이 드라마는 격앙된 감정과 정치적 술수보다는, “그들”의 노고를 심상하게 그려냅니다. 인류의 꿈을 감상 안에 묶어두지도 않지만, 정치 놀음판에서 한때 스쳐 지나가는 욕심으로 전락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이 드라마 곳곳에서 보여서 은근하게 설득력을 발휘하지요. 우주여행은 오늘날 과학계에서 총아의 자리를 내준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달에 왜 갔느냐는 질문에, 사진을 찍어오기 위해 갔다는 한 인물의 말처럼 인류의 우주에 대한 동경과 꿈은 오늘, 내일 사라져버릴 것이 아닙니다.
달 착륙이나 우주선 폭발 등의 극적인 장면마저도 비교적 담담하게 그려내는 자제력이 전반에 깔려 있을지언정, 누가 뭐래도 미지의 세계에 다다르려는 열망, 인간 근저에서 꿈틀거리는 그 열정을 이 드라마는 건드려줍니다. 우주 공간에서 보면 그토록이나 아름답다는 푸른 지구의 모습과 각고의 노력으로 저 바깥으로 나간 우주선은 아무리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해도 볼 때마다 여전히 뭉클하고요. 이제는 닐 암스트롱과 아폴로 11의 이름으로만 희미하게 남은 인간의 달 여행 역사와 달 여행에 대한 인간들의 집요한 노력을 이 드라마에서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워낙 많은 인물들이 나오다 보니 눈에 익은 배우들도 곧잘 등장하는데요. 특히 〈NCIS〉 팬들은 더 젊고 말끔한 꽃미남 시절의 깁스 반장(마크 하몬)의 모습을 확인하는 즐거움을 누리실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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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지구에서 달까지 디지팩 박스 (5disc)
톰 행크스 감독/마이클 그로스맨 감독/조 앤더슨 주연 | 워너브라더스 | 2006년 07월
인간의 우주 개척의 역사를 이끌었던 아폴로 시대를 다루고 있는 <지구에서 달까지>의 첫번째 에피소드는 우주로 안전하게 보내 질 우주비행사를 양성하는 단계로 시작한다. 1957년 러시아가 스푸트니크 호를 최초로 우주에 쏘아 보내자 미국은 곧바로 우주 비행사를 양성한 머큐리 프로젝트에 착수하고, 60년대 중반에는 미국의 2인승 우주선 발사계획인 제미니(Gemini) 프로젝트를 세운다. 총 12회에 걸친 제미니 호의 발사 경험은 이후 1967년부터 진행되는 아폴로 프로젝트의 소중한 디딤돌이 된다. 제미니 프로젝트 중 4호에 탐승했던 E.H.화이트 비행사는 23분간 미국 최초의 우주유영에 성공하였고, 7호는 지구를 13일 18시간 35분 날아 장시간의 우주비행 기록을 수립하였다. (총 12 에피소드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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