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6일 CBS를 통해 파일럿이 방영된 〈CSI〉는 목격자, 증인, 용의자, 혐의자를 위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전통적인 범죄 수사 드라마의 구도를 완전히 뒤엎는 혁신을 시도했습니다. 최첨단의 화려한 과학 수사 기법을 선보이면서 범죄 수사 드라마의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이 드라마는 현재까지도 최고의 시청률과 최상의 대중적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는 미국 TV 드라마 역사의 한 부분입니다. 〈CSI〉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더 자세하게 얘기를 풀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요거, 바로 요 멘트를 꼭 한 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여하튼 〈CSI〉가 몇몇 가지를 꼭 집어서 짧게 이야기하기에는 쉽지 않을 만큼 잘 만들어진 드라마이면서, 국내에서도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가장 왕성하면서도 꾸준한 팬층을 거느린 드라마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 〈CSI〉의 인기에 힘입어 복제 재생산을 시도하는 스핀오프 제작 또한 활발히 진행되었는데, 〈CSI〉의 스핀오프로 가지 쳐 나온 두 드라마인 〈CSI 마이애미〉와 〈CSI 뉴욕〉은 스핀오프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 주면서 구관이 명관이라는 속담의 의미를 제대로 깨우쳐 주기도 했습니다.
〈CSI〉의 스핀오프이기도 하거니와, 뉴욕이 배경이라면 팔랑귀가 더더욱 팔랑거리며 넙죽넙죽 홀려 넘어가는 습관을 순이 남편을 결정타로 하여 여태껏 떨쳐내지 못한 바, 보기 시작한 것이 〈CSI 뉴욕〉입니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에 출근했던 아내를 잃은 맥 테일러(게리 시니즈 분)가 반장으로서 뉴욕의 과학수사대를 이끕니다. 시리즈가 시작된 것이 9/11 테러가 일어난 지 딱 3년 만인 2004년임을 감안할 때, 한 드라마의 주인공을 피해자로 내세운 것은 너무 이르고, 또 과한 선택이었을까요?
큰 비극에서 아직 침착함을 채 찾지 못한 도시의 모습처럼, 드라마는 아물지 않은 상처를 그대로 벌겋게 드러낸 채 매우 암울하게 시작됩니다. 냉철함과 통찰력을 무기로 삼아야 할 수사물에서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비극을 겪고 밤잠을 이루지 못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드러낸 초반부의 설정은 이 드라마 최초의 실책이었습니다. 거리와 연구실 세트는 어둡고, 차갑고, 창백합니다. 이곳은 뉴욕이라는 자의식에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동안, 무엇보다도 과학을 통해 넋을 잃도록 매혹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 힘이 좀 빠져 있는 감이 있습니다.
〈CSI 뉴욕〉은 〈CSI〉의 스핀오프 시리즈입니다. 〈CSI 마이애미〉도 마찬가지지만, 이 드라마도 두어 개의 사건을 놓고 과학과 법의학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구성을 그대로 채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핀오프 혹은 속편의 오리지널리티란 무엇일까요? 이 경우에 구성을 같게 하고 비슷비슷한 사건을 다룬다는 것이 오리지널리티를 떨어뜨리는 요인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 〈CSI 뉴욕〉의 사건 해결방식이 과학(실제 과학지식으로 보아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에 상관없이 그럴 듯하게 과학적으로 보이는 것)에 기대어 갈피를 잡아간다기보다는 추측이나 언뜻 보기에 설득력이 별로 크지 않은 듯한 실마리로 진행된다는 것이 힘을 떨어뜨리지 않나 싶습니다.
또 하나, 수사관들의 멋진 해결방식을 빛나게 해주고, 그들의 응징을 더욱 통쾌하게 만들어줄 지능적인 범죄, 바로 오리지널 〈CSI〉를 빛나게 해준 요소가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에피소드마다 한니발 렉터를 만들어내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만, 공연히 한니발 얘기를 할 필요도 없는 것이겠지요. 화려한 배경 이면의 차가운 도시, 그리고 그 도시의 분위기를 애써 연기하는 배역들의 제스처, 일단은 여기까지가 〈CSI 뉴욕〉의 첫 번째 시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CSI〉와 그 스핀오프 시리즈 여럿을 방영하는 CBS의 사장이 좀 덜 차갑게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주문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CBS 사장과 더불어, 시청자들과 제작진 자체의 피드백에 힘입었음인지, 2005년 가을에 시작된 두 번째 시즌은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게다가 같은 범죄 수사 드라마이면서 같은 도시를 배경으로 10년 이상 장수에 회춘을 거듭하는 경쟁 방송사 NBC의
〈로 앤 오더〉와 매주 격전을 펼쳐야 한다는 현실 역시 변화를 이끌어 내는 동력이 되기에는 충분했을 듯합니다. 확실히 〈CSI 뉴욕〉은 아직 환골탈태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드라마의 힘을 약화시켰던 병폐를 하나하나 찾아 최선을 다해 개선하며 착실하게 재미를 되찾아가고 있는 과정입니다. 처음부터 괴력의 완성미를 발휘하며 눈길을 확 사로잡는 드라마도 있지만, 시간이 흘러가며 전보다 점점 더 좋아지고, 자꾸 정이 드는 드라마도 있으니까요.
〈CSI 뉴욕〉의 역투는 시즌 2 중반부에 〈CSI 마이애미〉와 크로스오버를 이례적으로 재차 시도하면서 절정에 이릅니다. 〈CSI〉의 스핀오프 시리즈는 처음에 시작할 때, 오리지널 쇼와 그 다음 스핀오프 시리즈의 시즌 마지막에 캐스트들이 등장하며 탄생을 알리는 것이 일종의 관례가 되었습니다. 말이 좀 어렵나요? 그러니까 〈CSI〉의 첫 스핀오프인 〈CSI 마이애미〉는 〈CSI〉 시즌 2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공조수사를 하는 식으로 캐스트들이 등장하여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고, 〈CSI 뉴욕〉은 〈CSI 마이애미〉 시즌 2의 마지막 에피소드에 캐스트들이 등장하여 시작을 알리는 식이었습니다.
일종의 바통 이어받기 식인데, 트랙을 열심히 돌아온 주자가 바통을 건네주며 다음 주자의 역주를 기원하는 방식입니다. 결과는 온전히 바통을 건네받은 주자에 달렸습니다. 자기 몫을 달리고 바통을 건네주는 선에서 예전 주자의 역할을 마쳐야 하는 것이지만, 규칙을 깨고 이번에는 시즌 중간에 두 쇼의 수사관들이 합쳐서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지요.
모름지기 〈CSI 뉴욕〉도 힘 있게 살아남아 다음 도시의 과학수사대에 무사히 또 하나의 바통을 물려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만, 라스베이거스의 반장님 길 그리섬을 연기하는 윌리엄 피터슨이 더 이상의 스핀오프가 제작되면 드라마를 떠나겠다는 풍문이 있어서 어찌될지는 추후를 지켜보아야 할 일인 듯합니다. 순진한 바램으로는 그리섬 반장도 만고장수하고, 더불어 억측하건대, 〈CSI LA〉정도로 바통 이어주기도 성공하는 윈윈을 꿈꿔볼 수도 있겠지만, 쇼 비즈니스가 그리 만만하지는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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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죽음 : CSI 과학수사대, 뉴욕 #1』
스투어트 카민스키 저/이수현 역/한길로 감수 | 찬우물 | 2005년 12월
20층 고급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서 발견된 프리랜서 류트니코프의 시체에선 매부착과 화약감입이 발견되지 않아 자살의도의 접사나 근접사는 아닌 것으로 판명된다. 연구소에서 시체를 부검한 쉘던 호크스는 피 묻은 종잇조각을 발견하고 탄도측정봉을 이용하여 총알이 류트니코프를 때리기 전에 종이를 뚫고 지나갔음을 알아낸다. 한편 앤서니 마르코의 정부였던 알베르타 스파뇨는 마르코의 악행을 증언해줄 증인으로 2명의 경찰 보호를 받고 있던 호텔에서 살해당하는데 열린 욕실 창문이 범인의 침입통로로 주목받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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