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배두나가 출간한 책, 『두나's 런던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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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두나의 이름을 단 사진 에세이집이 피사체 배두나를 얼마나 외면할 수 있을까요?
『두나's 런던놀이』의 페이지를 펼쳤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건 그거였습니다.
물론 아마추어 사진작가 배두나는 자기 자신을 피사체 목록에서 제외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거야 그 사람 블로그나 싸이에 가 봐도 알 수 있는 거죠. 그 사람이 찍은 사진들 중 상당수는 소위 '셀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사진들이 없다면 방문객들은 무척 서운해 하겠죠. 우린 배두나라는 사람을 이미지로 바라보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보지는 않으니까요. 물론 그 사람이 엄청난 사진작가로 대성해서 그런 단계까지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배두나 팬들에겐 배우 배두나가 아마추어 사진작가 배두나보다 훨씬 중요해요. 사진 역시 배우 배두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통로여서 중요한 것이지 사진 자체의 가치 때문은 아닙니다. 역시 아직까지는요. 배우들이 여기서 벗어나기는 어려워요. 훌륭한 배우이면서 자기 사진이 거의 없는 수많은 사진집을 낸 로디 맥도웰과 같은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사람은 비교적 덜 유명했고 그의 모델들은 그보다 훨씬 유명한 그의 할리우드 친구들이었으니 배두나와 직접 비교는 어렵습니다.
『두나's 런던놀이』는 지금까지 그 사람이 싸이나 블로그에 올렸던 사진들을 조금 더 확장한 책입니다. 기본적으로 배두나는 이 책에 사진작가로서의 자의식을 필요 이상으로 담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단지 프로젝트가 조금 더 압축되었고 조직적이 되었으며 커졌어요. <괴물> 촬영 이후 떠난 런던 여행 때 보다 조직적으로 사진들을 찍어서 모은 거죠.
여기서 가장 재미있는 건 배두나가 셀카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입니다. 이 정도 스케일의 계획에서는 셀카만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충분히 담을 수는 없죠. '런던놀이'를 하는 자신을 보다 자유롭게 찍을 또 다른 카메라가 필요한 겁니다. 이 책에서는 사진작가 윤석무가 배두나의 사진들을 찍어주고 있죠. 마치 자서전을 대필해주는 전기작가처럼요. 몇몇 사진들은 연결되어 있기도 해요. 133페이지를 예로 들 수 있겠군요. 배두나는 갤러리 앞에 앉아 있는 까만 고양이를 사진으로 찍고 그걸 찍는 배두나를 다시 윤석무가 찍는 식이죠. 이 책에서는 아마추어 사진작가 배두나가 전문 연기자 겸 모델인 배두나로 전환되는 애매한 부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상관없어요. 이 책에선 둘 다 모두 배두나이고 그 경계선에 선 사람도 배두나죠.
그 때문에 전 윤석무가 전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이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아니, 너무 전면으로 드러난 부분도 좀 별로예요. 윤석무가 찍은 배두나의 호텔 사진들로 구성된 5장인 '두나의 하루'는 좋은 사진들이지만 조금은 심심합니다. 사진작가와 모델의 역학 관계가 너무나도 전형적으로 구축되어 있죠. 배두나가 수동적인 모델이었다는 말도 아니고 윤석무가 그 상황을 모두 통제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심심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그 경계선이 깨어지는 부분에 있거든요.
어차피 우리가 배두나에게서 제2의 다이안 아버스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면, 이 두 사람의 역학 관계를 전면으로 드러내는 것이 어떨까요? 제2 사진작가를 여벌 카메라로 두는 대신 또 다른 피사체 겸 드러난 여행 동료로 잡고 보다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겁니다. 그럼 상당히 재미있는 사적 드라마가 펼쳐질 것 같지 않습니까? 혼자 놀기도 좋지만 이 경우엔 작정하고 둘이 놀면 더 좋을 겁니다. 그렇다고 중간에 스타일을 바꿀 필요도 없고요. 배두나의 사진에서 가장 좋았던 건 모델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이었으니 말이죠.
배두나가 이 책으로 만족할지, 아니면 『두나's 파리놀이』나 『두나's 도쿄놀이』가 이어질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계속 이어진다면 제 아이디어를 한 번 실험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