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여자애들은 레고 가지고 놀지 않나요?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우리가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처럼 노골적으로 성역할을 강요하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남자 아이의 경우는 그렇죠. 남자 아이가 바비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은 그 자체가 엄청난 반항입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다가 물로켓을 들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여자아이를 봤습니다. 저도 좀 관심이 있는 장난감이라 멈춰 서 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이러더군요. “그거, 사내애들이 가지고 노는 거 아냐?”

글쎄요. 그건 소위 ‘과학완구’라는 것이었으니 서클 활동이나 학교 교재였을 수도 있을 겁니다. 전 그 애가 그 장난감을 자기가 원해서 산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랬을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죠. 그리고 그 애의 의기양양한 표정을 보아하니 그 장난감에 굉장히 만족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물로켓을 한 번 쏘아보신 분들은 그 기분을 아실 거예요. 그게 기성품을 조립한 것이건, 패트병으로 직접 만든 것이건요. 여자애들이라고 그 기분을 느끼지 못할 리가 있겠어요?

하여간 전 그 애를 지나쳐 습관적으로 근처 할인점에 갔습니다. 안을 거닐다가 완구 코너에 들어섰죠. 그 때 느낀 것. 어쩜 이 세계에서는 남녀 구별이 이리 뚜렷하단 말입니까. 애당초부터 구분이 여아용, 남아용으로 딱 나뉘어져 있어요. 중간은 없습니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레고가 ‘남아용’입니까? 여자애들은 레고 가지고 놀지 않나요?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우리가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처럼 노골적으로 성역할을 강요하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남자 아이의 경우는 그렇죠. 남자 아이가 바비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은 그 자체가 엄청난 반항입니다. 당연히 처벌 받지요. 공포에 질린 부모들이 먼저 제지할 것이고 주변 친구들 역시 그 애가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놀려댈 겁니다. 여자애들이라고 특별히 더 자유롭지도 않습니다. 딸아이가 로봇 장난감을 사달라고 할 때 그 말을 그대로 들어주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요.   

뭐,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은 강요하지 않아도 로봇 장난감 쪽에 손을 뻗을 것이고 여자 아이들은 바비 인형을 선호할 겁니다. 하지만 (1) 모두 그런 건 아닐 겁니다. (2) 그게 옳은 일인가는 또 다른 문제고요.

이 주제를 다룰 때는 여러 가지 접근법을 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 그냥 제 경험 이야기를 하겠어요. 전 요새 꽤 많은 장난감들을 사들이고 있고 그런 취미를 가진 성인들을 꽤 많이 알고 있는데, 어른들의 경우 어린이 완구 코너가 노골적으로 그어놓은 성역할의 경계선이 예상외로 흐릿합니다. 전 건담 장난감에 열광하는 여자들도 알고 있고 블라이스 수집가인 남자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어렸을 때 자기 취향인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지 못해 얼마나 갑갑했을까요? 그들에게 그런 자유가 주어진 건 순전히 경제적으로 독립에 성공한 뒤였습니다. 그 때까지는 시스템에 적응하는 척하는 동성애자들처럼 자신의 취향을 억누르고 있었던 거죠. 물론 그게 정말 동성애 경향의 흔적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바비 팬인 남자들이 다 게이는 아니란 말이에요.

극단적으로 반사회적인 경향이 아니라면, 취향을 누르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은 모든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뽑아내야 마땅한 시기죠. 시작부터 성구별을 딱 부러지게 해 놓은 완구 코너가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볼 때가 된 것 같지 않습니까?

시장의 논리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여아용과 남아용으로 구분해 놓은 완구 매장도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게 해놓은 거죠. 하지만 중간 지대를 늘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에게 수동적으로 세상을 따르게 만드는 대신 자신이 살고 싶은 세상과 되고 싶은 자신을 창조할 수 있게 도와주는 보다 유연한 장난감들이 필요합니다. 레고도 그런 것들 중 하나죠... 아뇨. 하나였습니다. 전 심지어 레고마저도 남자애 장난감과 여자애 장난감으로 분리되는 완구 세계의 최근 경향이 굉장히 불만입니다. 레고한테도 분명히 더 나은 해결책이 있을 거예요.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3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오늘의 책

트럼프의 귀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