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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애들은 레고 가지고 놀지 않나요?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우리가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처럼 노골적으로 성역할을 강요하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남자 아이의 경우는 그렇죠. 남자 아이가 바비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은 그 자체가 엄청난 반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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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다가 물로켓을 들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여자아이를 봤습니다. 저도 좀 관심이 있는 장난감이라 멈춰 서 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이러더군요. “그거, 사내애들이 가지고 노는 거 아냐?”

글쎄요. 그건 소위 ‘과학완구’라는 것이었으니 서클 활동이나 학교 교재였을 수도 있을 겁니다. 전 그 애가 그 장난감을 자기가 원해서 산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랬을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죠. 그리고 그 애의 의기양양한 표정을 보아하니 그 장난감에 굉장히 만족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물로켓을 한 번 쏘아보신 분들은 그 기분을 아실 거예요. 그게 기성품을 조립한 것이건, 패트병으로 직접 만든 것이건요. 여자애들이라고 그 기분을 느끼지 못할 리가 있겠어요?

하여간 전 그 애를 지나쳐 습관적으로 근처 할인점에 갔습니다. 안을 거닐다가 완구 코너에 들어섰죠. 그 때 느낀 것. 어쩜 이 세계에서는 남녀 구별이 이리 뚜렷하단 말입니까. 애당초부터 구분이 여아용, 남아용으로 딱 나뉘어져 있어요. 중간은 없습니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레고가 ‘남아용’입니까? 여자애들은 레고 가지고 놀지 않나요?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우리가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처럼 노골적으로 성역할을 강요하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남자 아이의 경우는 그렇죠. 남자 아이가 바비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은 그 자체가 엄청난 반항입니다. 당연히 처벌 받지요. 공포에 질린 부모들이 먼저 제지할 것이고 주변 친구들 역시 그 애가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놀려댈 겁니다. 여자애들이라고 특별히 더 자유롭지도 않습니다. 딸아이가 로봇 장난감을 사달라고 할 때 그 말을 그대로 들어주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요.   

뭐,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은 강요하지 않아도 로봇 장난감 쪽에 손을 뻗을 것이고 여자 아이들은 바비 인형을 선호할 겁니다. 하지만 (1) 모두 그런 건 아닐 겁니다. (2) 그게 옳은 일인가는 또 다른 문제고요.

이 주제를 다룰 때는 여러 가지 접근법을 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 그냥 제 경험 이야기를 하겠어요. 전 요새 꽤 많은 장난감들을 사들이고 있고 그런 취미를 가진 성인들을 꽤 많이 알고 있는데, 어른들의 경우 어린이 완구 코너가 노골적으로 그어놓은 성역할의 경계선이 예상외로 흐릿합니다. 전 건담 장난감에 열광하는 여자들도 알고 있고 블라이스 수집가인 남자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어렸을 때 자기 취향인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지 못해 얼마나 갑갑했을까요? 그들에게 그런 자유가 주어진 건 순전히 경제적으로 독립에 성공한 뒤였습니다. 그 때까지는 시스템에 적응하는 척하는 동성애자들처럼 자신의 취향을 억누르고 있었던 거죠. 물론 그게 정말 동성애 경향의 흔적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바비 팬인 남자들이 다 게이는 아니란 말이에요.

극단적으로 반사회적인 경향이 아니라면, 취향을 누르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은 모든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뽑아내야 마땅한 시기죠. 시작부터 성구별을 딱 부러지게 해 놓은 완구 코너가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볼 때가 된 것 같지 않습니까?

시장의 논리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여아용과 남아용으로 구분해 놓은 완구 매장도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게 해놓은 거죠. 하지만 중간 지대를 늘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에게 수동적으로 세상을 따르게 만드는 대신 자신이 살고 싶은 세상과 되고 싶은 자신을 창조할 수 있게 도와주는 보다 유연한 장난감들이 필요합니다. 레고도 그런 것들 중 하나죠... 아뇨. 하나였습니다. 전 심지어 레고마저도 남자애 장난감과 여자애 장난감으로 분리되는 완구 세계의 최근 경향이 굉장히 불만입니다. 레고한테도 분명히 더 나은 해결책이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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