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극들
제가 진짜로 거북한 건 이 작품들이 대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멜로드라마들이라는 것입니다. 전 단순한 사람이라 이런 작품들이 대중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고 그를 위한 몇 가지 고정된 방식이 있다고 믿습니다. 권선징악도 그것들 중 하나죠.
제 방은 여름을 견디기엔 그렇게 좋은 곳이 아닙니다. 엉뚱하게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에어컨 바람에 질리고 신선한 공기가 마시고 싶다면 전 어쩔 수 없이 마루로 나와야 하는데, 거기서 있는 텔레비전이 방영하는 건 연속극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밤에만 나왔던 것이 케이블에 공중파 재방송 채널이 생긴 뒤로는 하루 웬 종일 나와요. 심지어 마루에 박혀 있으려면 <굳세어라 금순이>는 하루에 세 번을 봐야 합니다. 어떻게든 일에 집중하려고 해도 대사들이 들리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그래도 여름 초기엔 견딜 만 했습니다. <김삼순>이니 <부활>이니, <신입사원>이니, <변호사들>이니 하는 미니 시리즈들이 집안사람들에게 인기일 때는 전 별다른 고통을 겪지는 않았어요. 그 프로그램들이 좋은 작품인지, 아닌지는 전 모릅니다. 집중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가끔 귀에 들어오는 대사들은 견딜만 했고 캐릭터들도 특별히 거슬리지는 않았어요. 사실 그 때는 <굳세어라 금순이>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신장 이식 에피소드는 엄청나게 인공적인 설정이었고 그만큼 과장되어 있었지만 그 갈등은 그럴 듯 했습니다. 금순 할매와 금순 엄마의 고부 갈등도 꽤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위에서 제목을 언급한 미니 시리즈들이 종영된 뒤로 텔레비전 세계는 점점 불쾌해졌습니다. 특히 빈 시간을 때우기 위해 전엔 다들 안 보던 <어여쁜 당신>을 보기 시작한 뒤로는 말이죠. 그나마 견딜만 했던 <굳세어라, 금순아>의 고부갈등도 점점 역해졌고요. 여기에 <장미빛 인생>이 끼어들자 제 머리는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네, 이제 알겠습니다. 제가 지옥에 간다면 아마 <시계장치 오렌지>에 나오는 세뇌 기계에 온 몸이 묶인 채 <어여쁜 당신>만 보게 될 거예요. 그것도 박원숙 캐릭터가 나오는 장면만 골라서요.
겪다보니 (‘보다 보니’라고는 차마 말을 못하겠습니다) 제가 혐오감을 느꼈던 부분들의 교집합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모두 굉장히 혐오스럽고 불쾌하며 어리석은 연장자들이 가족 내에서 같잖은 권력을 휘두르며 생기 없는 젊은이들을 고문하는 내용이더군요. 금순이를 생기 없는 젊은이 집합 안에 넣는 걸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전 요새 금순이에게서 별다른 생기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사실적이지 않는가? 아뇨. 전 그렇다고 말 못합니다. 반대라면 반대죠. 전 <어여쁜 당신>의 박원숙 뺨 칠만큼 유치하고 저질인 사람들을 압니다. 자신의 옹졸함과 어리석음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부당하게 학대하면서도 종교 하나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확신하는 사람들요. 아마 그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드라마화 된다면 비평가들은 <루루 공주> 뺨치는 졸작이라고 욕을 퍼부을 겁니다. 이들은 악하다기보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지만 세상을 진짜로 망치는 건 악이 아니라 어리석음과 우둔함입니다.
제가 진짜로 거북한 건 이 작품들이 대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멜로드라마들이라는 것입니다. 전 단순한 사람이라 이런 작품들이 대중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고 그를 위한 몇 가지 고정된 방식이 있다고 믿습니다. 권선징악도 그것들 중 하나죠. 그와 같은 논리에 따라, 전 박원숙 캐릭터가 자신의 존재로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다면 지금쯤 마땅히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믿습니다. 물론 머리 나쁘고 사악한 게 그 사람 잘못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거야 네로 황제에서부터 화성 연쇄 살인마까지 다 먹히는 핑계입니다.
그런데 이 장르에 익숙한 주변 사람들에 의하면 그런 결말은 오지 않을 거랍니다. 부자유친과 핏줄과 경로사상을 내세우며 대충 세대간의 화해로 끝날 거라고 확신들을 하더군요. 전 모릅니다.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자 공중파만 있던 먼 옛날에 본 <아들과 딸> 연속극의 결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작품에서 어리석고 이기적인 어머니는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했습니다. 꼭 말년을 고통 받으며 죽을 필요는 없어도 자기 잘못과 어리석음을 뉘우칠 정도의 깨달음은 있어야 했죠. 하지만 그 작품의 결말은 결코 그 방향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회의 클라이맥스는 어머니의 말도 안 되는 자기변명이었고 자식들은 그게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죠. 욕지거리가 나왔습니다. 저런 결말을 텔레비전에서까지 봐야 하나? 왜 저 사람들은 저걸 당연하게 생각했을까? 그 정도로 상식이 없을 수는 없을텐데.
올바른 화해는 양측이 자발적으로 그런 협정을 맺을만한 현명함과 상식,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을 때 가능합니다. 금순 할매와 금순 엄마 정도의 캐릭터만 되어도 전 그들의 화해를 믿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 박원숙 캐릭터가 의미있는 화해가 가능할만한 지력과 이해력을 갖추었다고 믿지 못합니다. 요샌 금순이네 시댁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렇다면 그런 화해는 무의미합니다. 그건 굴복이거나 무시이기 때문이죠.
이게 극단적으로 차가운 리얼리즘을 추구한 작품이라면 전 그 정당성을 인정할 겁니다. 하지만 이들은 멜로드라마이기 때문에, 전 점점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만약 이들이 경로나 핏줄을 내세우면 어떤 종류의 엉성한 화해에 도달하고 시청자들이나 작가들이 거기에 정서적으로 만족한다면 전 도대체 얼마나 비뚤어진 세상에 살고 있는 거죠? 모르겠습니다. 평범한 연속극처럼 보였던 게 일종의 병리적 질환처럼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아마 이들이 제대로 된 결말을 찾지 못한다면 이런 악순환들은 끝없이 반복될 겁니다. 너무나 노골적인 증오를 품고 쓴 글이 제대로 된 배출구를 찾지 못한다면 작가의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을 거고요.
끝이 좋으면 모두 좋다고 했습니다. 전 이들이 어떤 결말을 낼지 모릅니다. 생각 외로 괜찮은 결말이 나올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아니라면? 상관없습니다. 곧 가을이 다가옵니다. 다시 말해 더 이상 그 끔찍한 프로그램들을 안 봐도 된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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