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봉석의 만화이야기
바다 깊은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직까지 인간이 가보지 못한 심해의 깊은 곳에는….
바다에 매혹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시다 이라의 소설 『푸른 비상구』에서는, 장애인이 되었다가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소년의 이야기가 있다. 지상에서는 모든 것이 불만투성이고, 자신을 제어할 수 없었던 소년은, 물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바다는, 물은, 소년의 새로운 자궁인 동시에, 인류의 어머니인 것이다. 뭔가 울적한 기분이 들 때, 세상사에 지칠 때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역시 그런 이유일 것이다. 바다는, 우리의 근원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바다는 항상 우리의 곁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미지의 존재로 남아 있다.
<그랑부르>의 감독 뤽 베송은 젊은 시절 잠수부였다고 한다. 잠수의 후유증으로 더 이상 잠수를 할 수 없게 된 뤽 베송은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그랑부르>를 만들었다. <그랑부르>의 남자는 운명적으로 바다와 하나였다. 그 남자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행복이었다. 바다만 곁에 있다면 어떤 욕망도, 어떤 물질도 필요 없었다. 그를 사랑하는 여자마저 그것을 알고, 그를 놓아준다. <그랑부르>는 뤽 베송이 바다에게 바치는 헌사였다. 뤽 베송만큼 바다, 심해에 매혹된 감독이 제임스 카메론이다. <어비스>는 제임스 카메론이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한 심해의 신비다. 심해에는 인간이 알지 못하는, 인간보다 오래된 존재가 있었고, 지구를 파괴하는 인간을 벌하려 한다. 이후 <타이타닉>을 만들었던 제임스 카메론은 다시 심해를 촬영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뤽 베송과 제임스 카메론에게, 심해는 원초적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군계』의 다나카 아키오가 『글로코스』를 그리게 된 계기는, 프리다이빙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그랑부르>에서 보았던 ‘목숨을 건 싸움’이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을 알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다나카 아키오의 말처럼, 프리다이빙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대회는 두 가지 종목으로 치러진다. ‘스태틱’은 물에 조용히 떠 있으면서 숨을 참는 타임을 겨루는 종목이다. 더 많은 시간을 참았다고 해도, 얼굴을 든 선수가 OK 사인을 하고 1분간 이상이 없어야 통과할 수 있다. 블랙아웃이나 산소 부족으로 몸이 떨리거나 하면 실격된다. ‘콘스탄트’는 로프를 타고 수직으로 잠수하는 경기다. 미리 자신이 도전할 깊이를 신고하고, 그 곳에 걸린 택을 가져오면 된다. 깊이 들어갈수록 수압이 심해지고, 무사히 목표지점까지 들어갔더라도 올라오면서 블랙아웃이 될 위험성도 존재한다. 『글로코스』의 마스터 클로드의 말에 따르면 콘스탄트는 단지 깊이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호흡할 수 있는 수면까지 돌아오는 동안 자기 목숨을 억누르는 공포를 견딜 수 있는지’가 본질이다. ‘경쟁심이나 근성, 프라이드…. 보통 경기에서 필요한 감정. 허나 프리다이빙 경기에서는 방해만 되는 감정이다. 무리하면 바로 목숨이 위험’하다는 말처럼, 프리다이빙은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글로코스』는 프리다이빙을 소재로 이야기를 펼치면서, 인간이란 존재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글로코스』의 주인공 시세는, 돌고래와 함께 바다에서 발견된 아이다. 아끼던 제자에게 배신당하고, 자살할 곳을 찾아 남태평양의 섬으로 온 클로드는 우연히 시세의 잠수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희망을 느낀다. 클로드와 시세는 일본으로 향하고, 인간의 비장을 연구하는 의사 하루카가 합류하여 하나의 팀이 된다. 시세는 눈앞에 펼쳐진 심해의 세계로 들어가길 원하고, 클로드는 프리다이빙이 기술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하며 그것만이 인간과 자연이 일체가 되는 길이라고 믿는다. 하루카는 시세의 특이한 비장을 연구하며, 비장이야말로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인류에게 남아있는, 잠수를 위한 장기라고 생각한다. 시세와 클로드, 그리고 하루카. 그들에게는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하나다. 바다가 인류의 미래라는 것.
시세의 고향에는 오랜 전설이 있었다. 전쟁과 약탈로 가득했던 육지의 왕이 바다까지 손을 뻗치려 하자, 걱정이 된 바다의 왕은 돌고래의 등에 탄 평화의 사신을 보냈다. 바다와 육지를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바다의 왕자. 그러나 육지의 왕은 선망과 질투에 사로잡혀 그를 창으로 찌르고 바다에 던져버렸다. 그는 인간에게 실망하고 물고기로 변해 깊은 곳으로 사라져갔다. 두 번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육지의 왕은, 이를테면 시세를 단순한 상품으로 생각하는 에레보스사의 사장처럼, 육지와 바다가 양립할 수 없는 세계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바다를, 단지 대상으로만 바라본다. 자신의 욕망을 채워주는 대상이거나,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노다지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전설에는, 누구도 모르던 후일담이 있었다. 바다로 간 청년은 공주를 만난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다. 드디어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의 시대다. 바다에서 온 인류의 새로운 길이 바다에 있다고 믿는 클로드 같은 사람들. 그 믿음처럼 시세는 바다 안에서 새로운 풍경을 본다. 태고의 바다에서 생명이 태어난 것은, 필연이 아니라 기적이었다. 그 기적을 우리는 간직하고, 더욱 소중하게 키워나가야 한다. 다나카 아키오는 프리다이빙이라는 세계를 통해 바다의 의미를 말하고, 인간의 미래와 진화를 제안한다. 거창하고 교훈적이지만, 바다에 매혹된 적이 한번이라도 있다면 거기에 동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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