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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호하고 다양한 세상의 진실 - 『폴리스 스테이션 라쇼몬』
돈을 훔치거나, 사람을 죽이거나, 무언가를 부수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범죄자라고 부른다. 그들은 사회가 금하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다. 범죄라는 것은, 결코 나와는 동떨어진 별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돈을 훔치거나, 사람을 죽이거나, 무언가를 부수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범죄자라고 부른다. 그들은 사회가 금하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다. 범죄라는 것은, 결코 나와는 동떨어진 별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이 세상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범죄가 벌어진다. 때로는 범죄를 목격하기도 하고, 자신이 범죄의 희생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어떤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범죄자는 우리와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고 흔히 생각한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회적 약자를 더욱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범죄자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들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야, 라고.
범죄만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악인들은, 더 심하다. 예를 들어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박사. 가장 매력적인 악당으로 평가받는 한니발 렉터는 최고의 심리학자인 동시에 클래식 음악과 미술 등 고상한 취미에 통달한 지식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람의 목을 물어뜯어 피를 마시고, 인간의 뇌와 심장 등을 요리해 먹는 식인귀다. 그런 살인마는, 결코 우리의 이웃이 아닐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우리들은 생각한다. 그들은 단지 돌연변이일 뿐이고, 이성과 도덕을 잃어버린 짐승일 뿐이라고. 『지뢰진』 같은 만화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악인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우리들이 할 일은 절망하거나 함께 야수가 되어 싸우는 것뿐이라고.
그러나 『폴리스 스테이션 라쇼몬』(야지마 마사오 글, 나카야마 마사아키 그림)은, 시대착오적으로 ‘애정’을 말한다. “사람의 마음만큼 약하고 망가지기 쉬운 것은 없습니다. 그 마음을 구원하는 것이 있다면 역시 애정이겠죠”란 대사는 너무나 이상적으로 들린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힘들어, 순식간에 지옥으로 떨어져버린 사람들. 그들을 애정으로 구원해야 한다는 것은 당위이지만, 한 개인에게는 너무나 어렵고 힘든 선택이다. 자신이 범죄의 희생자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폴리스 스테이션 라쇼몬』은 그 시대착오적인 당위를, 끈질기게 설득한다. 이런저런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 그들의 마음을 구원해주려고 애쓴다. 젊은 여자를 바라보는 중년의 남자가 있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인생을, 매일매일 즐겁게 만들어준 여자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남자는 행복하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스토커라고 신고한다. 도산 위기에 몰린 공장의 사장이 월급을 주기 위하여 현금지급기를 부숴버린다. 한없이 성실하고, 상식적인 사고를 가진 사장이었지만 거품 경제시대에 강제로 떠넘기다시피 돈을 빌려준 은행 때문에 공장의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라쇼몬의 형사들은, 원인을 제공한 시대 때문에 범죄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아니 그들은 범죄자와 별다르지 않다. 라쇼몬의 형사들을 조사한 내사과에서는 “환상 속에 살며 타인과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 금전감각이 없는 사람, 마약이라는 말만 들으면 냉정한 판단력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형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경찰이었던 남편이 죽은 후, 그의 길을 따라 형사가 된 베니야 루미의 생각은 다르다.
“라쇼몬의 형사들은 분명 다들 어딘가 결함이 있다. 세상에서 소외될 만큼. 하지만 그러기에 사람들의 아픔을 깊이 느끼고 있으며,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절실함, 거듭 죄를 짓는 인간의 업이 얼마나 깊은지 알고 있어, 그들도 죄인처럼 깊은 업을 안고 있기에, 죄를 저지른 사람을 속죄의 길로 이끄는 것밖에는...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거야.”
영화 『라쇼몬』은 일본의 거장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대표작이다. 그 영화에서는, 라쇼몬 근처에서 벌어진 강도사건을 놓고,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목격자가 서로 다른 진술을 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의 신념과 처지에 따라 그들은 자신만의 진실을 가지고 있다. 진실의 상대성을 말하는 『라쇼몬』처럼 『폴리스 스테이션 라쇼몬』 역시 범죄와 범죄자를 둘러싼 다양한 시선을 보여준다. 아니 그 모호하고, 다양한 시선 자체가 세상의 진실이다. 진실이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라쇼몬’은 헤이안 시대 교토 남쪽에 있던 큰 문이다. 헤이안 말기에는 라쇼몬 근처가 황폐해지고, 시체를 버리는 곳이 되어 도둑들이 들끓었다고 한다. 그 후 라쇼몬은 죽음과 삶이 공존하고, 온갖 인간 군상이 모이는 곳이란 상징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범죄를 저지르고, 라쇼몬이라 불리는 경찰서에 온 남자는 말한다. “여길 지나가면 인간으로 살 수 없게 돼.”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말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폴리스 스테이션 라쇼몬』은 알고 있다. “천년이 지나도 인간은 거기서 거기인” 것을. 그래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아무리 식상할지라도 ‘애정’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서 쫓겨난 떨거지들이 모이는 라쇼몬의 형사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일말의 고민도 없이 사람을 체포하는 경관은 기분 나빠”라고 말하는 것이다. 범죄자의 말을 들어주는, 그의 마음을 구원해주는 대표적인 인물은 쿠로다 경부보다. 다른 경찰들은 쿠로다를 미워한다. 아니 이해하지 못한다. “쿠로다는 압도적으로 가해자 편을 들어. 자백한 용의자의 손을 부여잡고 펑펑 우는 걸 봤지. 솔직히 놀랐어. 범죄자한테만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게.” 쿠로다는 아무리 잔인하고 냉혹한 범죄자일지라도, 아파하면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한다. 살인자의 속마음까지 믿고 있다. 그 마음이 범죄자를 흔들어댄다. 거짓말 같지만, 아니 거짓말이지만 쿠로다의 진심만은 믿을 수 있다.
『폴리스 스테이션 라쇼몬』은 사실, 위험한 주장도 많이 담고 있다. ‘이기적인 동기, 성도착의 미화’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매춘이란 건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라고 내뱉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선택되지 못한 사람들을 향한 이해와 애정의 토로이기는 하지만, 위험한 동정이고 생경하기도 하다. 그러나 『폴리스 스테이션 라쇼몬』의 스토리를 쓴 야지마 마사오의 이전 작품인 『인간교차점』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의 모습을 가급적 있는 그대로 그려내려 애쓰는 노력만은 분명하다. 『인간교차점』도, 『폴리스 스테이션 라쇼몬』도, 인간이란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해답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어디론가 가야 한다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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