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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좋아할까. 그 집착에는 이유가 있다 - 『가면 속의 수수께끼』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 길을 가다 만난 사람에게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빼앗길 수도 있고, 늘 보던 사람에게 어느 날 갑자기 사랑을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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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 길을 가다 만난 사람에게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빼앗길 수도 있고, 늘 보던 사람에게 어느 날 갑자기 사랑을 느낄 수도 있다.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을 볼 때마다 두근거리고, 같이 있고 싶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진다. 사랑에 빠진 그 순간은 너무나 황홀하고, 또 너무나 가슴 아프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자. 왜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일까? 그 사람이 너무 예쁘게 생겨서? 너무 귀여워서? 너무 멋있어서?

그렇게 답이 쉽게 나올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좋다. 하지만 세상이란 게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왜 나는 저 사람이 아니라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일까. 예쁜 사람들도 많고, 귀여운 사람들도 많고, 멋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이 사람일까. 그런 걸 일컬어 누구는, 운명이라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나는 이 사람과 맺어질 운명이었던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나 정말 자신의 운명이라고 믿는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하고, 평생을 함께 보내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런 걸 생각하다보면 몇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어떻게 나는 이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일까. 더 나아가면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일까.

호천이의 물음도 그렇게 출발하여 근원적인 영역까지 다다른다. 고등학생인 호천이가 그런 물음을 갖게 된 이유는, 송적이란 아이가 너무나 이상하기 때문이다. 같은 반 친구인 송적이는 빈 건물의 지하실에 혼자 살면서 툭하면 학교에 안 나오고, 늘 여우 가면을 뒷머리에 쓰고 다니는가 하면 집에는 온갖 종교의 상징물 같은 것들을 잔뜩 모아놓고 있다. 그런데 호천이는 어느 날 갑자기 송적이를 좋아하게 된다. 잃어버린 게 있어 학교로 돌아갔을 때, 교실의 문을 열자 송적이가 홀로 책상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호천이는 송적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유는 모른다. 하여튼 송적이에게 고백을 하고, 송적이도 받아들인다. 하지만 송적이가 호천이에게 원하는 것은 이상한 것뿐이다. 네 귀를 파주고 싶어, 네 심장 소리를 듣고 싶어, 네 눈물을 맛보고 싶어 등등. 그런 이상한 요구를 들어주면서, 호천이는 늘 생각한다. 왜 나는 송적이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그래서 호천이는 송적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한다. 왜 자신이 그를 좋아하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우에시바 리치의 『가면 속의 수수께끼』는 단순한 연애만화가 아니다. 송적이가 모으는 인도와 티베트의 종교적 상징물이라든가 일본 민간신앙의 도구 같은 것들에는 의미가 있다. 송적이는 늘 호천이에게 이상한 요구를 하면서, 무언가를 탐구한다. 송적이의 의문은 이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 너머의 어딘가에 맞닿아져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송적이는 이 세상의 인간이 아니다. 정체가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도 송적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과 다른 세계를 수월하게 넘나들 수 있는 어떤 존재다. 그런 점에서 호천이가 송적이에게 의문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 송적이와 호천이는 그 이상한 연애를 통해서, 인간의 존재와 의미를 탐구한다.

우에시바 리치가 대학을 다닐 때부터 그리기 시작한 『가면 속의 수수께끼』는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한다. 왜 나는 송적이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라는 의문은 호천이를 위험에 빠트린다. 그리고 명계(冥界)로 향한 송적과 호천은 각각 영겁의 시간 속을 헤매면서 각기 자신의 그림자와 상대방의 그림자 그리고 마음속에 깃든 서로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시간의 미로 속에서 송적과 호천은 미래에 결혼해서 자식을 낳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영원한 행복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그림자와도 마주친다. 명계의 마왕을 만난 호천은 어리석은 자문자답을 포기하고 편하게 살아갈 것을 종용받기도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마음의 끝’을 발견하기 위해 계속 나아간다. 물음을 포기하고, 세상에 그냥 안주해버리는 행위는 거부한다.

『명계편』은 송적이와 호천이가 명계 안에서 얻는 깨달음을 그리고 있다. 이어지는 학원편에서는 학교 내의 자잘한 사건들을 통하여, 사랑이나 성장 같은 일상적인 것들의 의미를 파고든다. 일반적인 방법이라면 에피소드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학원편』을 앞에 배치하고, 거대한 사건이 벌어지는 『명계편』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겠지만 『가면 속의 수수께끼』는 정반대로 간다. 그건 우에시바 리치의 욕심이다. 오랫동안 자신의 머릿속에 있었던 것들을, 한꺼번에 풀어내기 위하여 『명계편』으로 시작한 것이다. 야심 넘치는 신인답게, 『명계편』은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 의미도 충실하지만, 그림 역시 놀라운 수준이다. 만다라 같은 불교의 상징물을 그리거나 갖가지 종교적 상징이 배치된 복잡한 화면을 그려내는 능력은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가면 속의 수수께끼』는 아마추어적인 열정이 프로의 세계까지 훌륭하게 확장된 놀라운 작품이다.

『학원편』을 지나 『정령편』까지 나아가면 우에시바 리치는 아주 편하게 그림을 그린다. 자신이 좋아했던 만화의 장면이나 대사를 소개하기도 하면서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런 사소한, 실제 전개되는 만화 내용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낙서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를테면 『정령편』에 등장하는 꿈의 전사들은 장난감을 이용하여 변신을 한다. 거기에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타 로보 같은 것들을 슬쩍 끼워넣기도 한다. 그건 작가의 취향이지만, 단순한 여흥만은 아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 아무리 단순하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해도 거기에는 존재의 가치가 있다.

『가면 속의 수수께끼』는 하나의 질문에 집착한다. 왜 나는 너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그 집착에는 이유가 있다. 어느 순간 우리가 ‘질문’을 잃어버린다면, 우리의 마음은 굳어버리고 단지 안락한 일상만을 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면 속의 수수께끼』는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는 질문들을, 대단히 독창적인 방법으로 제시한다. 그 질문의 의미를 담아내는 그림만으로도 『가면 속의 수수께끼』는 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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