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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보통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음악 - 『피아노의 숲』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천재. 그를 바라보고 있는 범인(凡人). 친구이자 라이벌인 관계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들은 서로에게서 무엇을 바라볼까? 밀로스 포만 감독의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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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천재. 그를 바라보고 있는 범인(凡人). 친구이자 라이벌인 관계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들은 서로에게서 무엇을 바라볼까? 밀로스 포만 감독의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가 그러했다. 살리에리가 작곡한 곡을, 단 한 번 듣고 그대로 연주하는 모차르트. 아니 그 순간 편곡을 하여 더 유려한 선율로 바꾸어내는 천재. 수재인 살리에리는 신에게서 내려받은 모차르트의 재능을 질투하고 한편으로는 흠모하면서 살아간다.

이시키 마코토의 <피아노의 숲>도 천재와 범인의 이야기다. 유명 피아니스트의 아들인 슈우헤이는 시골의 학교로 전학을 가서 카이란 소년을 만난다. 유령이 나와 피아노를 친다는 소문을 듣고 숲으로 간 슈우헤이는 피아노를 치고 있는 카이와 친구가 된다. 그 피아노는 학교의 음악 선생인 아지노의 것이었다. 아지노는 한때 최고의 피아니스트였지만 사고로 연주를 할 수 없게 된 후 이 곳에 살고 있었다. 누군가 숲의 피아노를 친다는 말을 들은 아지노는, 숲과 하나가 되어 연주를 하는 카이를 발견한다. “오래 전에 잃어버린 나의 음”을 연주하는 카이의 모습을 본 아지노는 “나와 같이 피아노를 치지 않겠니”라고 말한다.

전반부의 내용만 본다면 <피아노의 숲>은 전형적이다. 놀라운 재능을 가진 아이가 성장하면서 정상으로 올라간다는 이야기. 고난과 함정이 있기는 하지만 ‘열혈’로 모든 것을 뚫고 나간다는 내용. 아지노의 권유를 무시해버렸던 카이가 결국은 레슨을 받게 되고, 슈우헤이가 오랜 세월 준비해왔던 콩쿠르에 함께 나갔다가 카이가 탈락할 때까지도 <피아노의 숲>은 공식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카이는 “객석을 수목으로 바꾸고 이 콩쿠르 회장을 피아노의 숲으로 바꿔서 쳤다. 나의 피아노를…”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위대한 재능을 철저하게 무시한다. 카이를 인정하는 심사위원조차도 “천재라는 놈은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는 존재거든. 인간은 관여하지 않는 게 좋아”라고 뒤로 물러선다. 피아노를 만난 카이의 첫번째 고난이다. 천재에게도 고난은 필요한 법이니까, 그의 재능을 더욱 빛내주고, 세상과의 불화를 과장하기 위하여.

천재와 범인을 비교하는 <피아노의 숲>은 구태의연함과 클리셰 등을 탁월하게 뛰어넘는다. 카이는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는 천재가 아니다. 카이가 태어난 곳은 ‘숲의 가장자리’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경멸하는, 유흥가. 카이의 엄마는 몸을 파는 창녀였고, 숲의 가장자리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결코 그 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카이는 순수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좋은 것과 싫은 것, 고통과 절망, 기쁨과 희망까지도. 아지노에게 피아노를 배우면서, 카이는 생각한다. “레슨은 정말 힘들어. 슈우헤이는 계속 이런 걸 해왔을까?” 그건 솔직한 의문이다. 어릴 때부터 숲에 놓여 있던 피아노를 자기 마음대로, 자기의 기쁨을 위하여 쳐왔던 카이에게 ’레슨‘은 고통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슈우헤이를 존중한다. 반면 슈우헤이는 카이의 재능을 존경한다. 질투 때문에 그를 버리고, 도망치기도 했지만 결국은 그의 곁에 선다. 친구로서.

<피아노의 숲>은 카이와 슈우헤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숲의 피아노가 수명을 다하여 불타버리고, 카이가 숲의 가장자리를 떠나 ‘세계’로 향한 뒤의 이야기는 아직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피아노의 숲>이 천재의 활약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이시키 마코토는 천재의 재능을 묘사하는 것 이상으로, 주변 사람들의 소중한 삶을 푸근하게 그려낸다. 카이가 콩쿠르에서 만나 용기를 주었던 다카코는 마침내 자신의 피아노를 발견한다. 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한, 타인의 시선에 들기 위한 피아노가 아니라 자신의 피아노를. “자신의 피아노를 친다는 것이… 그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카이, 난 피아노를 치길 잘 했어. 괴로워도 계속… 참아오길 잘 했어. 내가 나여서 다행이야…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피아노를 치지 않겠어. 그 감동을 나의 것으로 만들겠어.”

카이에게, 슈우헤이에게, 다카코에게 피아노는 성공이나 자기만족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한동안 피아노를 떠났던 카이가 다시 피아노를 만나 던지는 말처럼 “피아노는 나의 생명이다.” 그들은 피아노를 치면서 삶을 살아간다. 아니 반대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살아가기 위하여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것이다. 카이의 재능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 유학을 갔던 슈우헤이는 슬럼프에 빠져든다. 자신의 피아노가 아니라, 타인의 피아노를 흉내 내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때 슈우헤이의 선생은 “훌륭한 음악가는 모두 뛰어난 기술과 음악성을 갖추고 있단다. 음악성은 그 음악가의 인간성에서 나오는 거야. 슈우헤이 넌 네 자신의 의지로 성실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니? 슈우헤이! 넌 너의 인생을 외면하면 안 돼”라고 말한다. 그 순간의 슈우헤이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일본으로 돌아와 카이를 만난 후, 비로소 깨닫는다. 카이는 슈우헤이를 쫓은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앞만 보고 달렸음을. 그리고 자신 역시 그렇게 달려가야 했음을.

세상은 천재의 위대함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슈우헤이는 아버지의 공연을 보고 깨닫는다. 아버지 역시 젊은 시절, 아지노의 연주를 듣고는 절망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길을 걸어갔고, ‘치유의 피아노’를 만들었다. “아버지의 피아노는 위대해. 이렇게도 원대하게 날 감싸안으며 날 치유해준다”는 슈우헤이의 독백은 과장이 아니다. 이지노의 말처럼, 세상에는 두 종류의 피아니스트가 존재한다. 다시 한번 듣고 싶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다시 한번 듣고 싶은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천재만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삶을 걸고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모두 개성이 있고, 가슴을 울린다. 아마 카이 역시 그런 길을 꾸준하게 걸어갈 것이다. 재능을 과신하지 않고, 치열하게 노력을 하면서. 그래서 <피아노의 숲>역시 다시 보고 싶은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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