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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아기를 돌보다 - 『아기와 나』

라가와 마리모의『아기와 나』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을 그린 만화다. 하지만 보통의 육아만화와는 조금 다르다. 우치다 순기쿠의 『홈』이나 김지윤의『마이 퍼니 베이비』같은 만화들, 직접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만화들과『아기와 나』는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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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와 마리모의『아기와 나』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을 그린 만화다. 하지만 보통의 육아만화와는 조금 다르다. 우치다 순기쿠의 『홈』이나 김지윤의『마이 퍼니 베이비』같은 만화들, 직접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만화들과『아기와 나』는 조금 다르다.『아기와 나』에서 아기를 키우는 주체는, 보통의 엄마 아빠가 아니라 이제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인 진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직장에 다녀야 하기 때문에 진이가 육아의 책임을 맡은 것이다. 아버지는 홀홀단신이고,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를 거역하고 집을 나왔기 때문에 처가의 도움을 바랄 수도 없다. 게다가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진이는 아침마다 신이를 유치원에 맡기고, 오후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신이를 데리고 집에 온다.

초등학교 5학년생인 진이가 아기를 돌본다는 말에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조금 힘들겠구나, 정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지 못하는 어려움이다. 말을 하기 전까지는, 단지 아기의 울음소리와 표정 등으로 모든 것을 알아내고 적당한 조치를 해줘야 한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먹을 것을 주고, 함께 놀아준다. 하지만 때로는 그 어떤 해결책도 소용없다. 그러다가 뒤늦게 병원에 달려가고, 이상한 조짐을 알아채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기도 한다.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미운 일곱 살’이란 말이 요즘은 ‘미운 네 살’로 바뀐 것처럼, 타자와 다른 주체의 의미를 알기 시작한 아기는 자신의 고집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한다. 그건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모든 것을 하겠다는 주체의 선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기를 키우는 입장에서 보면, 집안을 온통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밥상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아기를 그냥 지켜볼 수도 없다. 그래서 아기의 과도한 행동을 막으면, 당장 울음이 터지고 난리가 난다. 적절하게 얼러주고, 때로 혼도 내면서 아기와 함께 매일을 보내는 일은 전쟁에 비견할 만도 하다. 이 모든 과정을, 부모가 아니고 어른도 아닌 진이가 하기는 무척 힘든 일이다.

물론 아기를 키우는 과정에는 엄청난 행복과 기쁨도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세상의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일구어나가는 그 과정을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부모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며, 부모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한 생명이 조금씩 자립해가는 과정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놀라운 경험이다. 그건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경험을 대신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다. 만화나 영화도 그중 하나다. 실제 경험만은 못하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사람의 마음과 감동을 어느 정도는 슬쩍 느껴볼 수는 있다. 라가와 마리모의 『아기와 나』가 좋은 점은 바로 그것이다. 갑자기 부모가 되어버린 남자아이의 경험은, 아직 아기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더욱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진이는 회사 일이 바쁜 아버지 대신에 신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후에 데려오고 저녁밥까지 줘야 한다. 진이는 당연히 신이를 귀여워하지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기에게 모든 시간을 쏟아야 하는 것은 어딘가 억울하다. 진이가 아무리 착해도 마찬가지다. 진이는 엄마가, 부모가 아니니까. 게다가 한참 친구들과 놀 나이 아닌가. 그래서 때로는 진이도 화를 낸다. 하지만 그후에는 언제나 자신이 신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고, 더 열심히 신이와 함께 있어줘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면서 진이는 신이와 함께, 성장한다.

그러니까 『아기와 나』는 단순한 육아만화가 아니다. 순정만화도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그 경계에 있는, 감수성 풍부한 소년과 소녀가 함께 볼 수 있는 학원물이고,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가정드라마다. 『아기와 나』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것은 육아만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다양한 ‘관계’다. 어느 날 앞집 김씨 부부의 망나니 아들 성일이 돌아온다. 성일은 동네에서 망나니로 찍혀 있다. 도망치듯 가출했던 성일은 동네 사람들은 물론 부모에게서도 푸대접을 받는다. 진이는 성일과의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갑자기 돌아온 성일을 유심히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하나 둘 과거의 진실들이 밝혀진다. 동네 사람들은 물론 부모도 성일의 진짜 얼굴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관계란 결국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의해서 결정된다. 진이가 성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과거 성일의 장난이 악의가 없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일하게 진이는 성일을 이해하고 받아준다. 유심히 타인의 모습을 바라보지 않으면, 그의 이면을 살펴볼 마음이 없다면 커뮤니케이션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 하나.『아기와 나』에는 가족의 여러 유형이 등장한다. 진이에게는 어머니가 없다. 철이의 가족은 엄청난 대식구다. 친구들 중에서는 활달한 엄마와 가정적인 아빠를 가진 아이도 있고, 부모와의 나이 차가 할아버지뻘 되는 아이도 있고, 이혼한 부모를 가진 아이도 있다. 저마다 콤플렉스를 가지고 충돌도 하지만, 결국은 화해한다. 그리고 행복이란 가족의 형태에 달린 것이 아니라,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가꾸어 나가는 것임을 알게 된다.『아기와 나』는 그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상의 진리를 알려준다. 라가와 마리모는 『아기와 나』에서 이를 감동적으로 포착하면서도, 일상적인 생활을 그릴 때는 아기자기하게 희극적으로 그려낸다. 어른부터 아기까지, 누구나 따뜻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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