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봉석의 만화이야기
일본 만화의 신, 데츠카 오사무
중학교 1학년인 조카에게 가끔 만화책을 빌려주곤 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우주소년 아톰』을 보겠냐고 물어봤다가 거절을 당했다. 왜? 라고 물어봤지만, 조카는 얼버무렸다. 옆에서 어느 님이, 초등학생들이 보는 거니까,라고 대신 답했다.
중학교 1학년인 조카에게 가끔 만화책을 빌려주곤 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우주소년 아톰』을 보겠냐고 물어봤다가 거절을 당했다. 왜? 라고 물어봤지만, 조카는 얼버무렸다. 옆에서 어느 님이, 초등학생들이 보는 거니까,라고 대신 답했다. 나는 “『우주소년 아톰』이 얼마나 심오한데”라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꽤 아쉬웠다. 『우주소년 아톰』의 연재가 시작된 것이 1952년이니까 반 세기전이다. 태어나기도 수십 년 전의 만화이니 무척 낡았다고 당연히 생각할 수 있다. 어린 시절 TV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봤던 『우주소년 아톰』을 다시 만난 것은 중학교 때였다. 해적판으로 나왔던 『우주소년 아톰』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1980년대에 다시 본 『우주소년 아톰』은 낡지 않았고, 결코 초등학생들만 보는 만화는 아니었다. 지금도 그 장면이 기억난다. 인간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면서 죽어가는 로봇들의 처연한 모습이.
데츠카 오사무 |
한국에서 데츠카 오사무의 작품은 만화보다 애니메이션이 일찌감치 소개되었다. 어린 시절 봤던 애니메이션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우주소년 아톰> <사파이어 왕자> <밀림의 왕자 레오> 등이 모두 데츠카 오사무의 작품이다. 아톰이 국내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음은 한때 한 프로축구팀의 마스코트가 아톰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 시절에 데츠카 오사무라는 이름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후일 <우주소년 아톰>을 비롯한 애니메이션의 원작이 모두 한 사람의 작품이고 그가 바로 일본 만화의 신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건 과장이 아니다. 데츠카 오사무는 일본 만화의 신이라 불릴 만한 엄청난 업적을 쌓았다.
데츠카 오사무는 일본 만화의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불새』를 비롯하여 SF인 『우주소년 아톰』, 의학 만화인 『블랙 잭』, 종교만화인 『붓다』, 정치만화인 『아돌프에게 고한다』와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준 『리본의 기사』, 디즈니가 베낀 『밀림의 왕자 레오』 등 데츠카 오사무는 세상의 모든 것을 소재로 이용하여 다양한 만화를 만들어냈다. 극화를 만들어낸 것은 데츠카 오사무가 아니지만, 그는 재빠르게 극화체를 자신의 만화에 도입하여 자신의 만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기틀을 잡은 것 역시 데츠카 오사무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데츠카 오사무가 워낙 적은 제작비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애니메이션 업계가 지나친 상업주의로만 달리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데츠카 오사무가 모든 것을 시작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데츠카 오사무의 작품 중에서 걸작을 꼽으라면 흔히 『불새』를 최고로 꼽는다. 그 다음으로는 『블랙 잭』과 『우주소년 아톰』 등이 거론된다. 불의 산에 산다는 불사조인 불새의 생피를 마신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불새』는 바로 그 ‘영원한 생명’을 둘러싼 갖가지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고대와 현대, 미래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개그와 장엄한 드라마, 때로는 실험적인 묘사까지 과감하게 펼쳐나가면서 인간의 삶과 함께 모든 생명의 의미 같은 철학적인 문제까지도 폭넓게 파고든다. 데츠카 오사무가 자신의 ‘생애를 걸고 그린 최대의 역작’이라고 평가되는 작품이니만큼 정독할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블랙 잭』은 머리의 절반이 하얀 색이고 온몸이 흉터로 가득한 외과의사의 이야기다. 신의 능력을 가지고 온갖 위험한 수술을 하는 무면허 의사, 어둠의 의사가 바로 블랙 잭이다. 캐릭터가 워낙 강렬하여 대중적으로는 『우주소년 아톰』 이상의 최고 인기작이 되었다. 개인의 복수를 꿈꾸는 것 같기도 하지만 『블랙 잭』의 주제는 휴머니즘이다. 휴머니즘은 데츠카 오사무의 모든 작품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기운이다. 데츠카 오사무의 최고 히트작이라 할 수 있는 『우주소년 아톰』은 막강한 힘을 가진 조그만 로봇 아톰의 활약을 그린 만화다. 데츠카 오사무가 아톰의 캐릭터를 떠올린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라고 한다. 하나는 일본의 패전 후 들어온 미군이 워낙 거대해 보였고, 거기에 비해 일본인은 왜소해 보였기 때문이다. 체격만이 아니라, 일본인은 늘 위축되어 보였다. 그래서 데츠카 오사무는 일부러 아톰을 조그만 로봇으로 설정하고, 체격은 작지만 누구보다도 강한 힘을 가진 존재로 만들었다. 다른 하나는 미군과 일본인의 관계였다. 언어가 틀리고,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미군과 일본인 사이에는 본질적인 단절이 있었다. 게다가 미군이 폭력을 휘두를 때에도 일본인은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아톰이 인간과 로봇, 지구인과 외계인 사이의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중간자, 통역자로 등장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데츠카 오사무는 아톰을 ‘평화의 대사’로 생각했던 것이다.
데츠카 오사무의 작품들은 지금 봐도 크게 감동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린 만화가 많기는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의 의미는 결코 질이 낮은 것이 아니다. 아니 아이들은 언제나 가볍고 별다른 의미가 없는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는 생각이야말로 데츠카 오사무가 거부한 편견이다. 데츠카 오사무는 언제나 “아이들은 진지한 메시지를 원한다”고 생각해왔다. 그의 만화에는 그런 진지한 메시지가 단순한 형식으로 담겨 있다. 그것이 지금 데츠카 오사무의 만화를 읽어도 진한 여운이 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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