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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있는 발걸음 가벼운 미술 산책, 『꽃미남과 여전사』

저자와 함께 하는 가볍고 쿨한 “꽃미남 미술관”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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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최고의 스타 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배우 이준기의 컨셉은 모두 아시다시피 “예쁜 남자”입니다. 어쩌다 남자가 귀걸이만 하나 해도 “사내자식이 그게 뭐냐” 소리가 나오던 시절의 기억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이제는 예쁜 남자가 스타덤에 오르는 시대가 왔습니다. 굳이 이준기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굳건했던 성 역할 구도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 사회에서도 다양하고 새로운 모습들로 해체, 변형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예술 장르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동성애자의 삶을 다루고 있고, 한구석에서는 이른바 야오이라 불리는 미소년들의 연애담이 일군의 팬 클럽까지 형성하면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젠더의 변화는 굳이 현대에 들어서야만 발견할 수 있는 시대적 산물은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동성애가 이성애보다 더 고결한 것으로 여겨졌고,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이른바 ‘맷돌부부’라고 하는 여성간 동성애가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최근 붐을 이루는 사회적 성 역할의 모호해짐은 그 근원을 찾자면 아주 오랜 세월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현직 미술학부 교수가 미술을 통해 이 흥미로운 주제에 접근하는 것이 오늘 소개할 『꽃미남과 여전사』의 내용입니다. 메트로섹슈얼, 콘트라섹슈얼 등으로 불리는 21세기의 성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트렌드에 대해 저자는 이러한 현상은 인류 안에 내재된 본원적인 욕망에서 비롯되었으며, 각 시대별로 다양하게 그 욕망이 드러나 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 미술,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시각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의 해설을 시도합니다. 꽃미남이라 불리는, 남성이면서도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는 독특한 매력의 소유자는 고대 역사에서부터 사람들의 선망이자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스의 수많은 남신들은 꽃미남 인간들에게 반해 그들을 데리고 와 자신의 시종으로 삼고 함께 사냥을 즐겼으며, 한편으로는 많은 여신들이 남자이면서도 아름다웠던 그들에 대해 질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신화 속의 모습들이 매우 자주 미술 작품 속에서 그려졌다는 것입니다. 중세의 암흑기를 빼고는 그리스/로마, 르네상스 이후의 서구 미술 모두가 이들에게 높은 주목도를 보여온 것은 아름다운 남성이라는 중성적 매력이 단지 신화 속에서만 동경의 대상인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누구나 한번쯤 꿈꿀 수 있는 은밀한 매력이라는 것을 반증합니다. 이러한 성적 역할의 파괴에 대한 미술에서의 천착은 비단 서양 미술계에서만 일어난 국지적 현상은 아닙니다. 인도에서부터 중국과 한국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아시아의 광범위한 불교 벨트에서 볼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종교미술들은 동양에서 또한 중성적 이미지가 소수자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거의 모든 불상은 남성이면서도 외양만으로는 남성임을 알기 힘든 부드러운 신체 곡선과 미소를 띠고 있으며, 반은 남자, 반은 여자인 시바/비슈누의 자웅동체 구조를 갖춘 힌두교의 신 하리하라 등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민족과 시공간에 상관없이 미술사 전체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중성성에 대한 동경을 저자는 다양한 미술 작품들의 구석구석을 놓치지 않고 설명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깨닫게 합니다.

릴리언과 라우렌스 슈바르츠, <모나-레오>, 1986년, 컴퓨터 합성
책의 재미는 그러나 그러한 중성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 방점을 찍는 것이 아닙니다. 『꽃미남과 여전사』가 갖는 책으로서의 가장 큰 의미는 “주제가 실린 미술기행”이 될 것입니다. 책은 왜 인간은 아름다운 남성에 대해 이끌리는지, 어째서 많은 예술가들이 꽃미남과 여전사라는 주제에 대해 그토록 깊게 빠져드는지에 대한 심도 깊은 설명은 시도하지 않습니다.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책은 메트로/콘트라섹슈얼에 대한 동경이 담긴 미술품들을 수집한 정원을 독자와 함께 산책하는 즐거움을 줍니다. 같은 미술관을 관람하더라도 일정한 주제 없이 그저 시간과 연대, 사조 순으로 나열된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동일한 주제를 여러 가지 시대 상황과 작품 요소들 속에 변주하여 단일주제가 여러 가지 형태로 육화肉化되는 소나타의 변주와도 같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그 감상의 만족 자체가 다릅니다. 책은 바로 그러한 지점에서의 독자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미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요즘과도 같이 성 역할의 파괴가 사회의 트렌드 중 일부를 차지하는 시대라면 “동성애나 중성성을 다룬 미술 작품을 한번에 쫙 볼 수는 없을까?” 라는 미술 쪽에서의 관심사가 부각되기 마련이고, 책은 그러한 부분에서 너무나도 만족스러울 만한 편집과 기획의 승리인 것입니다. 특히 풍부한 도판과 이야기체로 그림의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큐레이터와도 같은 저자의 설명은 그러한 “기획전시 관람”으로서의 느낌을 한층 살려줍니다. 그림 속의 인물이 누구이며, 왜 저러한 포즈를 하고 있으며, 그 배경에 배치된 각 요소들은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을 설명함으로써 그림으로 하여금 화폭 안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의 상상을 타고 캔버스의 울타리 너머로 튀어나올 수 있는 자유로움을 던져주는 것이야말로 『꽃미남과 여전사』가 독자에게 선사하는 주제가 있는 새로운 미술의 세계입니다.
마돈나 - 그녀는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난생 처음 나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어찌 보면 그러한 부분은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꽃미남과 여전사』는 분명한 미술감상서로 나왔기 때문에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중성성에 대한 깊은 탐구를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당장 책을 읽다 보면 드는 첫 의문은 “아니 왜 제목은 꽃미남과 여전사인데, 여전사 이야기는 뒤에 찔끔 나오는 걸까?”인데, 조금 진중한 표현으로 “왜 중성성에 대한 집착은 남성화한 여성보다 여성화한 남성에서 더 부각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명확히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성 중심의 오랜 역사 속에서 여성이라는 존재는 늘 시선의 대상이자 수동적 존재였고, 따라서 미적 숭배의 대상은 역시 대상화하기 쉬운 ‘여성스러움’이 적용될 수 있는 “예쁜 남자”에 한정되기 쉽다는 것은 성 정치적인 맥락 내에서 풀어내야 하는 부분이지만 책에서는 그러한 논지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모든 예술이 사회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늘 사회와 인간의 어느 한 부분을 반영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책의 이러한 점은 자칫 미술 감상을 그저 세상과 동떨어진 채 깨끗하고 고요한 전시관에서 관람자 스스로를 그저 우아하고 세련된 인간으로 만드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해봅니다. 여전사보다 꽃미남이 강조된 미술사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남성 중심의 사회가 관음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좋은 여성만이 대상화되는 데에서 기인하며, 이는 많은 트랜스젠더 가운데서도 유독 남성의 가시적 욕망을 충족시킬 요건을 채우는 하리수와 같은 이들만이 세간의 이슈가 된다는 점은 미술 감상에서 놓쳐서는 안될 부분입니다. 재기 넘치는 문장과 고전 조각부터 마돈나까지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영역 등 저자의 ‘끼’가 여기저기서 묻어나는 편안한 미술 교양서로서 접근한다면 두 권의 분량이 무색할 정도로 즐겁고 속도감 있는 독서가 가능한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책이 펼쳐주는 인류 역사 속 꽃미남들의 세계 속을 위트 넘치는 저자와 함께 대화하고 토론하며 산책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서 책은 자리합니다. 읽고 나서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냉방을 자랑하는 어느 미술관을 떠올리는 것은 비단 저 혼자만의 독후감은 아닐 것입니다. ------------------------------ 저자 ‘이명옥’은 누구? 불같은 감성과 얼음 같은 이성을 지닌 진정한 콘트라섹슈얼,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그녀는 타고난 글쟁이이며 독서광, 그리고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전시 기획자이다. 마치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본다'는 블레이크의 시 한 구절처럼 그녀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갖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는 환상적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래서인지 어떤 것도 그녀가 숨결을 불어넣으면 생생하게 살아 숨쉬게 되는 것이다. ------------------------------ 『꽃미남과 여전사』는 어떤 책? 『팜므 파탈』의 작가,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남자와 강인한 여자 이야기. 저자 이명옥은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위해 인류가 이루어놓은 수많은 문화유산을 답사하기 시작한다. 신화, 종교, 예술에서 시작된 이 여정은 영화와 음악을 필두로 하는 대중문화에까지 두루두루 이어진다. 그리고 이 여정 속 그물망은 그녀 자신의 탄탄한 인문학적 지식과 특유의 촉촉한 감성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촘촘히 짜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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