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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1월 우수상 - 엄마의 손 편지

버리지 못하는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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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손을 잡고 신부 입장을 하며 박수 소리에 황홀했다. 점점 주례사단상이 가까워 질 수록 엄마의 얼굴도 시부모님의 얼굴도 가까워졌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2021.01.07)

언스플래쉬

"냉장고에 반찬하고 국 데워 먹어라."

초등학교 때부터 20살이 되기 전까지 줄곧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엄마의 쪽지다. 초등학교 땐 주위 친구들 중 일하는 엄마가 없었다. 일하는 나의 엄마는 평범한 엄마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평범하지 않은 엄마가 싫었다. 밤낮없이 일하던 엄마는 몸살이 나서야 쉴 수 있었다. 몸져누운 엄마 곁을 기웃거리는 일이 내가 할 수 있었던 전부였다. 무뚝뚝한 엄마는 늘 바빴고 가쁜 숨을 몰아내쉬며 사느라 다정하지 못했다. 삶에 치여 지친 엄마의 울분 섞인 짜증이 새어 나오는 날엔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이해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 올랐다. 나도 무뚝뚝한 딸로 자라났다. 남들에겐 살갑지만 엄마에겐 얼음장 같은 딸로 말이다.

"엄마는 날 챙기지 않았잖아! 돈만 벌었잖아! 내가 어떻게 자랐는지도 모르잖아!”

20살이 돼서 엄마를 향해 뾰족한 말들을 쏟아냈다. 훌쩍 커버린 딸 앞에 엄마는 무력했다. 늘 같은 엄마의 무표정에 뾰족한 말도 지긋지긋 해져갈 즈음 나는 사랑에 빠졌다. 결혼을 준비하며 마냥 신이 났다. 예쁜 드레스를 입을 생각에 신났고, 아기자기한 살림살이를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예물은 어떤 걸로 할지,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지 인터넷세상을 뒤지고 뒤지며 매시간이 즐거웠다. 3개월의 결혼 준비 끝에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결혼식 전날엔 다들 잠이 안 온다던데 나는 꿀 같은 숙면을 취했다. 결혼식 날 아침까지도 엄마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의 얼굴이 기억나는 건 신부대기실에 앉아 있을 때부터였다. 약간의 코가 빨간 엄마의 얼굴이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일인지 그저 신경이 쓰였을 뿐이다.

아빠 손을 잡고 신부 입장을 하며 박수 소리에 황홀했다. 점점 주례사 단상이 가까워질 수록 엄마의 얼굴도 시부모님의 얼굴도 가까워졌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울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엄마가 날 사랑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태까지 커오면서 10대 때는 사랑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20대 초반엔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지배당한 채 자살을 시도하고 병상에서 눈을 떴었다. 결혼을 해도 안 해도 엄마에겐 나 같은 건 있으나 마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모든 것이 나의 잘못된 생각임을 알아차린 순간이었다. 폐백을 드리고 식사 후 공항으로 향하기 전 엄마는 흰색 봉투 하나를 쥐여주셨다. 그 속에는 돈과 편지가 들어 있었다.

하와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엄마의 편지를 읽고 11시간 동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숨죽여 울다가 지쳐 잠들길 반복했다. 두 명의 승무원이 오가며 불편하신 곳 있으시면 말씀을 해달라고 쉴새 없이 나를 주시했다. 비행기 안에서 "이건 현실이 아니야. 모든 게 잘못됐다."는 생각뿐이었다. 편지에는 엄마가 얼마나 날 사랑하는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먹고 사느라 힘들었던 엄마. 12남매의 기둥인 엄마. 돈 버는 걸 멈추는 순간 자식도 엄마의 형제들도 멈춰버린다는 현실에 서러웠다. 남자들이 일하는 공장지대에서 홀로 버텨냈던 엄마. 몇 일을 잠 한숨 자지 못한 채 서울에서 인천까지 자식들 보러 새벽녘 어둠을 달려왔을 엄마. 입학식, 졸업식, 운동회, 학부모 상담에 오지 못해 늘 죄인으로 살아온 엄마. 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동물처럼 일해온 엄마의 책임감 속에 늘 사랑은 존재하고 있었다.

먹방 유튜버 사이에서 문래동2가 철제소 사이 사이에 있는 식당을 찍는 게 유행인가 보다. 최근 좋아하게 된 그림책 작가분의 작업실도 이곳에 있다. 먹방 유튜버와 그림책 작가님은 같은 말을 했다. 이곳이 조금은 어둡고 철제소가 많아 무서우실 것 같다고. 그 말이 사무치게 아프고 아프다. 20대 꽃 같은 나이에도 60대인 지금도 이곳은 여전히 엄마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엄마는 의자에서 홀로 일어서지 못할 때까지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고막을 찌르고 기름 냄새로 온몸이 기름에 절인 듯한 이곳에 우리에 어린 시절이 있고, 엄마의 청춘이 있고, 12남매의 밥이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젊은 사람도 다 나자빠지는 일을 노년기에 접어든 엄마에게 무리라고 뜯어말렸었다. 이제는 엄마가 하루라도 더 일할 수 있도록 나는 아이들의 엄마로, 언니와 동생은 사회인으로 각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아무리 사는 게 팍팍하고 힘들어도 앓는 소리 집어치우고 닥치는 데로 산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쭈욱...... 

하지만 이젠 힘듦이 삶을 엄습해 올 때 이를 악물지 않아도 된다. 나에게는 어떤 힘듦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수아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 그대로 장래희망은 빼어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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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수아(나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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