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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에> 한겨울밤에 청평사에서 생긴 일
한겨울 밤의 꿈으로 가는 여행
계기를 엿보며 터질듯한 사랑의 감정을 가까스로 움켜쥐고 있었기에 더욱 간절했던 그때 그 시절은 그래서 순수했다. (2020.12.18)
흥주(양흥주)와 은주(서영화)는 부부다. 오랜만에 춘천의 청평사를 찾았다가 서울로 돌아가려는 참이다. 택시 ‘뒷좌석’의 은주가 별안간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며 ‘운전 보조석’의 흥주를 당황하게 한다. 택시기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갈 생각에 난색을 보이면서도 결국 이렇게 얘기한다. “여기서 유턴합니다.”
청평사는 30여 년 전 흥주가 부근 군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은주와 연애하면서 찾았던 장소다. 한창 좋았을 그때와 다르게 지금은 각자 앉았던 택시 좌석의 위치만큼이나 마음의 거리감이 생겼다. 핸드폰은 통신 목적 외에 주고받은 문자,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 등 개인의 과거가 담긴 일종의 기억 재생 장치이기도 하다. 그들이 진짜 찾으려는 건 핸드폰일까, 연애 당시의 기억과 기분일까.
‘거슬러 올라간’ 청평사에서 흥주와 은주가 맞닥뜨리는 건 군복을 입은 남자(우지현)와 그를 면회하러 온 여자(이상희)다. 흥주와 은주의 연애하던 시절과 상황이 똑같다. 아니나 달라, 남자와 여자의 대화가 심상하지 않다. “근데 여기 낯이 익어”, “여기 기억 안 나?” 흥주와 은주는 자신들의 과거를, 남자와 여자는 미래를 서로에게서 거울로 비춰보는 듯하다.
청평사는 출발점이 서로 다른 커플의 시간이 등을 지고 원을 돌아 한 점에서 만나게 되는 공간이다. 현재에서 시작하여 과거와 미래를 경유,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이들 관계의 역사가 일종의 윤회(輪廻)로 담겨 있다. 남자와 여자는 호감이 있으면서도 아직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아 서로의 마음을 빙빙 돌며 조심스럽게 알아가는 중이다. 계기를 엿보며 터질듯한 사랑의 감정을 가까스로 움켜쥐고 있었기에 더욱 간절했던 그때 그 시절은 그래서 순수했다.
잃어버린 핸드폰에 집착하는 은주의 의도가 순수 찾기에 있다면 흥주는 뚜렷한 목적 없이 은주의 뒤를 따라다닐 뿐이다. 눈 위의 뚜렷한 발걸음은 은주를 향하면서도 등 너머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은주와는 다른 기억에 가 있는 듯하다. 은주가 잠든 사이 청평사 주변을 홀로 걷는 흥주의 눈에 들어온 건 대학 동창 해란(김선영)이다. 술에 잔뜩 취해 해란에게 뽀뽀해달라는 등의 언사를 하는 걸 보니 흥주는 은주에게 충실했던 것 같지 않다.
남자와 여자의 경우를 통해 흥주와 은주의 관계를 밟아 나가다 보니 현재의 거리감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물론 흥주·은주 부부와 남자·여자 커플은 전혀 별개의 관계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현실을 초현실로 착시하게 의도한 건데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 사이로 지나가는 인물의 장면 구성하며, 과거의 어느 지점을 몰래 살피듯 여자를 창밖에서 바라보는 흥주의 설정하며 환상적인 요소가 두 커플의 사연을 하나의 시간으로 중첩하여 입체감을 더한다.
영화는 사연 중간중간 단락 구분처럼 네 차례 선화(禪畵)를 노출한다. 동자가 소를 잃어버린 후 이를 찾는 과정에서 해탈에 이르는 내용이 10장의 그림에 담겨 있어 십우도(十牛圖)라고도 불리는 심우도(尋牛圖)다. <겨울밤에>를 연출한 장우진 감독은 심우도가 중요한 레퍼런스였다면서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그것을 찾는 여행을 다뤄보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그렇다면 은주와 흥주가 이번 여행을 통해 이른 해탈의 내용의 무엇일까.
흥주는 응어리진 마음을 토하듯 무언가를 눈 위에 뱉는다. 흥주가 떠나고 그 자리를 찾은 은주는 흥주가 뱉은 그 위에 깊은 발자국을 남긴다. 해란과의 관계를 뱉어내려 한 흥주의 과거를 묻겠다는 건가? 헛구역질에 그쳐 과거를 떨치지 못한 흥주를 무시하겠다는 건가? “외로워,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 같지 않아.” 결국, 은주는 핸드폰을 찾지 못한다. 이들은 영화 첫 장면에서처럼 같은 택시의 같은 좌석에 앉아 내려온다. 은주와 흥주가 경험한 건 한겨울 밤의 꿈이었을까, 아니면 현실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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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