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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XCX, 코로나 시대의 뮤지션 생존기
찰리 XCX(Charli XCX) - <how i’m feeling now>
뮤지션과 청취자의 교류를 이뤄내는 데에 성공한 본작은 그의 커리어에서도, 대중음악계에서도 유의미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2020. 07. 08)
전염병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유행이 가져온 혼란은 우리를 구금시켰고, 이는 연예인과 뮤지션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지독한 자가 격리 속 유명인들은 화려한 드레스 대신 편한 복장 차림의 SNS 게시물을 올리고 소소한 취미 공유, 집에서 하는 운동, 파스타 만들어 먹기 등을 선보이며 소박한 모습으로 우리와 소통하는 중이다.
영국 출신 싱어송라이터 찰리 XCX 역시 삶의 피폐를 막기 위해 본인의 방식대로 일상 지키기에 나섰다. 그는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창조적이어야 한다'라며 참신한 음악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영국과 미국에 엄격한 격리 통제가 내려진 지난 4월 6일, 작곡, 편곡, 믹싱을 단 5주 만에 끝내고 한 장의 앨범을 발매할 것을 비디오 채팅을 통해 선언한 것이다. 또한 그 짧은 기간 동안 온라인상에 데모 파일을 공유하고 팬들이 보낸 일상 사진을 모은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등 매우 투명한 제작 과정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렇게 탄생한 <how i'm feeling now>는 아티스트의 개성과 완숙한 대중 감각, 동시대의 시선이 모두 담긴 빼어난 팝 음반이다.
본 이베어(Bon Iver)와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 등의 아티스트와 협업으로 잘 알려진 BJ 버튼(BJ Burton), PC 뮤직(PC Music)의 창립자 A.G 쿡(A.G Cook)이 조력한 음향 기조는 변함없이 미래를 지향한다. 2016년 미니 앨범 <Vroom Vroom>을 분기점으로 DJ 소피(Sophie)를 비롯한 PC 뮤직 뮤지션의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한 그는 본작에서도 거칠게 갈라진, 돌출되고 기계적인 편곡을 선보인다. 앨범의 킥오프인 'pink diamond'와 고립된 일상의 감상을 적나라한 언어로 설파하는 'anthems'는 대표적이다. 잔뜩 뒤틀리고 왜곡된 신시사이저가 자극적인 두 곡은 그러나 찰리 XCX의 능수능란한 사운드 스케이프가 꼿꼿이 중심을 잡고 있어 각 요소가 안정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구성적으로도 짧은 기간에 탄생한 만큼 장황하지 않고 간소하다. 더불어 그의 장기인 선명한 멜로디가 작품 곳곳에 숨 쉬어 어렵게 들리지 않는다. 남자친구를 위한 발라드인 'claws'는 질서를 갖춘 통통 튀는 편곡 위 잘 들리는 보컬 라인을 전면에 내세워 쉬운 청취를 확보하고, 비슷한 결의 'detonate'도 귀를 쫑긋 세운다. 전작의 'Click'을 재해석한 'c2.0'는 원곡의 뼈대 아래 힘은 덜고 중독성은 더한 흐름이 승리한 인상적인 리믹스다. 그런가 하면 관계의 허무와 불안을 노래하는 가사와 몽롱한 분위기를 섞은 'i finally understand'는 비교적 속도를 줄여 작중 쉬어가는 구간을 남긴다.
무엇보다 앨범의 백미인 'forever'는 그의 역량이 절정에 다다른 곡이라 할만하다. 팬들이 보낸 일상 사진을 모은, 팬데믹 속에서도 끈끈하게 유지되고 있는 사람들의 연결 고리를 보여주고 있는 뮤직비디오도 중요한 부분이나, 그런 사회적 시선을 걷어내고 듣더라도 곡 자체의 뛰어난 완성도에 넋이 빼앗긴다. 역시 한껏 날이 서 있는 전자음의 겉모양과 달리 속에는 더없이 여리고 순하게 쓰인 선율이 꿈틀대고 '영원히 너를 사랑할게 / 네가 옆에 있지 않더라도'라는 미래를 기약하는 노랫말, 4분 안에 완급을 기막히게 조절하는 극적인 전개 과정이 섞여 음반의 감동을 극대화한다. 올해 가장 멋진 연가(戀歌)가 탄생했다.
찰리 XCX가 써낸 흥미로운 코로나 시대 뮤지션 생존기는 혼돈과 불안 속에서도 살아 숨 쉬는 음악적 영감이 빚은 빛나는 한 장이다. 뮤지션과 청취자의 교류를 이뤄내는 데에 성공한 본작은 그의 커리어에서도, 대중음악계에서도 유의미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일상은 멈춰도, 음악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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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