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 '7 rings'
2019년 빌보드 싱글 차트는 릴 나스 엑스가 독차지했지만 올해의 '작은 첫발'을 찍은 주인공은 다섯 번째 음반 <thank u, next>에서 'thank u, next'와 '7 rings' 두 곡을 정상에 올린 아리아나 그란데였다. 그중 '7 rings'는 영화로 익숙한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의 'My favorite things' 멜로디를 빌려와 친근감을 더했다. <thank u, next>의 주제인 아리아나 그란데의 자존감은 성공과 우정을 과시하는 '7 rings'의 자신감에서 더욱 넘쳤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넘어가는 음악시장의 흐름에서 가장 대중적인 위치를 점한 그는 작년부터 이어진 여성 음악가들의 약진을 2019년으로 이었다. 낯익은 선율, 어렵지 않은 랩과 보컬은 '평범'이라는 이 곡의 의외의 성공 동력. 팝 가수의 최선이 군더더기 없는 노래임을 증명하며 그래미 시상식 올해의 레코드 부문에도 노미네이트 되는 성과를 남겼다. 팝 애호가라면 모두가 상반기에 이 노래를 언급했다. (임동엽)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bad guy'
Z세대의 에이브릴 라빈은 스케이터 보이를 놓친 발레 소녀를 탓하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스케이터 보이들 위에 군림할 뿐. 상남자 타령이나 하는 마초남들에게 10대 소녀가 날리는 일침이 가관이다. "아~ 네가 그렇게 나쁜 남자야? 난 너네 엄마가 싫어할 정도로 나쁜 여자(bad guy)인데" 반복적인 베이스 리프에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던지는 조롱 섞인 "Duh!"까지, 이거 완전 펑크(Punk)를 품은 팝송이다.
자신의 몸이 평가받는 것을 거부하며 위아래로 빅 사이즈 옷을 맞춰 입고 Z세대를 대표해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몸소 전하는 빌리 아일리시. 짧지만 굵은 그의 행보를 비춰보았을 때 'bad guy'가 갖는 의의는 명확하다. 'bad guy'는 센 척이나 하는 속 빈 강정들을 향한 충고이자, 누릴 것 다 누린 부머(베이비 붐 세대)들에게 날리는 "요즘 것들"의 통렬한 한 방이다. 이것이 얼터너티브고, 이것이 록이다. (정연경)
릴 나스 엑스(Lil Nas X) 'Old town road (Feat. Billy Ray Cyrus)'
현 시대의 히트곡이란 무엇인지를 규정짓는 트랙이다. 'One sweet day'와 'Despacito'를 훌쩍 넘어선 19주 연속 1위라는 빌보드 신기록. 이를 설명하는 데에는 틱톡(TikTok)과 밈(Meme)이라는 키워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짧은 영상을 공유하는 '인싸 플랫폼'을 통한 유행의 무한확산이야말로 이 현상의 핵심이자 공식이기 때문이다. 카우보이 문화를 선망하는 'Yeehaw agenda'의 맥락을 잇는 전략적인 곡 제작과 스스로 일으킨 'Yeehaw Challenge' 붐. 자신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Z세대에게 있어 음악은 단순한 놀이소재로도 쓰일 수 있음을 한발 앞서 눈치챈 셈이다.
유행이 띄운 노래라고 미리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나인 인치 네일즈(Nin Inch Nails)의 '34 Ghost Ⅳ'를 샘플링해 만든 컨트리 스타일의 리프부터 그의 재기가 느껴지니 말이다. 쫀쫀한 트랩 비트를 타고 넘는 주인공의 래핑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다. 여기에 마일리 사이러스의 아버지기도 한 컨트리 가수 빌리 레이 사이러스의 보컬이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카우보이의 부합하며 발하는 시너지 역시 강한 인상을 남긴다. 마지막 후렴의 합창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은 바로 과거와 현재를 영리하게 섞은 덕분일 터. 시대의 트렌드를 시대의 방법으로 전파해 다시 한번 새시대를 정의하는, 현 세대에게 있어 음악의 가치는 무엇인지 알려주는 지침과 같은 싱글. (황선업)
영 떡(Young Thug) 'The London (Feat. J.Cole & Travis Scott)'
래퍼 21 새비지(21 Savage)는 '퓨처(Future)와 영 떡은 요즘 힙합 노래들의 저작권료 90% 정도는 받아야 한다'라는 트윗으로 두 아티스트의 위상을 요약했다. 독특한 발성의 멈블(Mumble), 보컬과 랩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를 짜는 영 떡의 스타일은 2010년대 말 힙합 씬의 가장 선명한 흐름을 주도했다. 프로듀서 메트로 부민(Metro Boomin)과의 찰떡궁합, <Jeffry> 등의 멋진 믹스테이프, 카밀라 카베요의 'Havana' 피쳐링으로 주류 시장에 존재감을 키워온 그는 첫 메이저 데뷔작 <So Much Fun>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만한 곡은 앨범의 마지막 트랙 'The London'이다. 앨범 전체를 프로듀싱한 제이 콜과 작년 <ASTROWORLD>라는 걸작으로 슈퍼스타가 된 트래비스 스캇이 한 데 뭉쳐 최고의 3분 25초를 선사한다. 트래비스 스캇의 몽롱한 훅이 티 마이너스(T-Minus)의 차분한 트랩 비트와 함께 럭셔리 호텔 '더 런던'의 문을 열고, 제이 콜이 날카로운 랩으로 모두를 바짝 긴장하게 만든 다음 영 떡의 주술 같은 목소리가 자욱한 연기처럼 파고든다. 컨디션 절정의 세 래퍼가 정의한 이 시대의 힙합 문법. (김도헌)
조나스 브라더스(Jonas Brothers) 'Sucker'
2013년 해체 이후 세 형제가 다시 만나 올해의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추억 속 소년의 앳된 보컬과 외모 대신 그들은 성숙해진 목소리와 매끈한 팝으로 돌아왔다. 200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보이 밴드의 신곡 발표는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발매 즉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석권하면서 이들을 몰랐던 이들에게도 산뜻한 첫인상을 제공했다. 전성기 시절에도 얻지 못한 싱글 넘버원이기에 더 화제가 되었다.
조 조나스가 몸담고 있던 밴드 DNCE의 경쾌함, 유명 팝 뮤지션들의 음반을 제작한 라이언 테더의 프로듀싱이 만나 대중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조나스 형제들의 재결합은 반가웠고, 거부할 수 없는 팝 선율은 많은 이가 노래를 찾고 듣게 만들었다. 2019년의 '흥'을 책임진 노래. (정효범)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 'Lose you to love me'
'두 달 만에 넌 다른 사람을 만났지 / 마치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셀레나 고메즈는 지나간 사랑인 저스틴 비버를 향해 다시 한번 저격을 가한다. 마침표가 채 마르기도 전에 새 사랑을 시작한 전 애인의 행보는 셀레나 개인의 감정적 절망을 넘어 그 이상의 음악적 성숙을 가져왔다. 대중의 관심을 듬뿍 받으며 이어나갔던 사랑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눈길 아래서 끝난 이별의 과정은 이 노래의 뿌리 깊은 영감이 됐고, 그는 이를 솔직한 발화로 완성시켰다.
현악기와 신시사이저를 사용한 세련된 편곡, 담담하면서도 공감을 자아내는 가사, 터뜨릴 듯 터뜨리지 않는 절제된 보컬까지. 음악 예술성의 완벽한 제압으로 통쾌한 복수에 성공했다.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 자신을 사랑하자는 다짐 또한 놓치지 않는다. 뼈아픈 만남의 끝은 그렇게 '나를 사랑하기 위해 너를 잃어야 했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상처의 노래는 아름다운 종착을 내린다. 시린 마음은 성장을 남겼고, 우리는 고품격 이별가를 얻었다. (조지현)
나오미 스콧(Naomi Scott) 'Speechless'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넘어서며 흥행한 영화 <알라딘>에는 공주 자스민의 역할이 중추적이었다. 왕위를 계승하고 나라를 이끌기 원하는 그의 진취적인 야망은 원작보다 진일보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디즈니의 변화를 보여준다. 'Speechless'는 이러한 시대성에 맞춰 원작의 작곡가 앨런 멘켄(Alan Menken)과 위대한 쇼맨, 라라랜드로 유명한 작곡 듀오 파섹 앤 폴(Pasek and Paul)이 새롭게 주조한 곡이다. 기존에 없던 이 자스민만의 테마곡에는 침묵을 강요받던 계층을 대표한 저항의 선언이 한껏 담겨있다.
새로운 자스민에 대중은 열광했다. 그를 무릎 꿇게 하려는 현실에 맞서 '나는 침묵하지 않을 거야'를 강변하는 노랫말은 국내에서도 여전히 '스피치리스'로 억압받는 약자들에게 강한 연대감을 심으며 노래를 각종 음원 차트에 올렸다. 영화의 흥행만큼이나 투철했던 주제가의 시선. 그 시선이 작금의 사회를, 대중을 읽었다. 개인의 다짐이 다수 목소리의 대변으로 이어진 올해의 싱글. (이홍현)
앤 마리(Anne Marie) '2002'
11살이던 2002년에 남자친구를 만난 앤 마리는 엔싱크의 'Bye bye bye', 제이 지의 '99 problems',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Baby one more time'와 'Oops... I did it again', 넬리의 'Ride wit me'를 함께 따라 부르며 사랑을 키웠다. 16년이 지나 가수가 된 앤 마리는 에드 시런, 줄리아 마이클스, 베니 블랑코와 함께 '2002'를 작곡해 자신의 마음속에 고이 간직했고 이 아름다운 사랑을 대중에게도 공개해 함께 나누었다.
2018년에 데뷔앨범 <Speak Your Mind>를 발표했을 때 '2002'는 '무명'이었지만 작곡가 에드 시런과 함께 어쿠스틱 버전으로 부른 영상이 뒤늦게 화제를 모으면서 뒤늦게 대한민국에 스며들었다. 장난기 넘치고 따뜻한 장조 곡 '2002'를 하나의 스타일로 정의하기는 벅차다. 포크의 바탕 위에 일렉트로닉으로 밑그림을 그린 다음 그 위에 힙합과 컨트리로 채색해 연령대와 상관없이 우리의 젊은 시절, 어린 시절로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앤 마리가 2002년을 잊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2002년도 아름다웠다. (소승근)
리조(Lizzo) 'Truth hurts'
2019년이 리조의 해라는 것에 굳이 DNA 테스트까지 필요할까. 리조는 정형화되고 정제된 엔터테인먼트 시장과 팔짱 끼고 있는 대중들 앞에 거대한 체구를 앞세우며 당당하게 자신을 뽐냈다. 젠더, 인종, 성 정체성과 관련된 고정관념들을 짓밟으며 전진하는 리조의 무지갯 빛 기세를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었다. 그토록 보수적인 그래미 또한 그의 이름을 최다 부문에 올리며 항복을 선언했을 정도.
데뷔 이래 두 장의 앨범과 'Good as hell', 'Boys' 등 좋은 곡들을 선보이며 내공을 쌓아가던 리조는 한 SNS 내 밈에 사용된 'Truth hurts'으로 본격적으로 대중 앞에 섰다. 곡은 그가 지향하는 삶을 유쾌하게 녹여낸 가사와 자기 자신과 결혼하는 내용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자신을 사랑할 것'을 강조했다. 누구나 던질 수 있는 메시지지만 리조의 캐릭터와 언행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음악이 설득력을 더했다. 멋과 흥, 메시지를 모두 챙긴 올해의 싱글! (이택용)
루이스 카팔디(Lewis Capaldi) 'Someone you loved'
강렬한 첫 도입부 몇 초로 곡의 성공이 결정된다면, 'Someone you loved'는 그 기준에서 조금 벗어난 싱글이다. 스코틀랜드의 싱어송라이터 루이스 카팔디는 별다른 장치 없이 잔잔하게 차오르는 피아노와 목소리 하나로 영국 싱글 차트 7주 연속 1위를 하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1위에 올랐다. 제임스 블런트, 제임스 아서와 작업한 영국의 유명 작곡 팀 TMS가 참여해 영국 팝의 온기가 가득하다.
1996년생인 루이스 카팔디는 오랜 슬픔을 견뎌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을 표출한다. 그는 나를 구해줄 사람, 내가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아픔을 고통스럽게 노래한다. 6개월 동안 치열한 고민 끝에 만든 곡이라는 점, 빠르게 성과를 맛보기를 바라는 이 시대에 2018년 11월 첫 발매 이후 1년이 지나 빌보드 정상에 올랐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다. 느림의 미학이 담긴, 올해 가장 감성적인 팝. (정효범)
이제 세상은 완벽히 변했다. 새 시대의 팝스타들은 기성 팝 문법을 가볍게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그를 생산하던 산업의 규율까지 비웃으며 생경한 충격을 안기고 있다. 2010년대까지 이것을 '혁신'이라 불렀다면, 다가올 2020년대엔 그 새롭고 낯선 경험이 일상으로 자리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물론 언제나 그 핵심에 '좋은 음악'이라는 가치가 있음도 물론이다. 2019년의 팝 앨범 10장을 선정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 - <Norman Fucking Rockwell!>
전반에 서려있는 서정미와 비장미. 관조하듯 천천히 끓어올라 묵직하고 은근하게 내뱉는 세상을 향한 목소리는 조소, 환멸, 고통, 비극을 경유해 끝내 아픔을 포용한다. 하지만 관점의 시작은 여기, 나로부터 출발하여 이 음반에는 라나 델 레이 본인의 경험과 추억, 그가 들어왔던 음악들이 여기저기의 영감이 되어 자리한다. 비치 보이스, 데이비드 보위의 곡을 인용하고 카니예 웨스트를 차용해 전달하는 미국에 대한 통박은 그렇게 이 음반의 품격을 높였다.
여전히 세상의 틀에 자신을 맞추지 않는다. 노이즈로 풍성하게 소리를 키운 수록곡 'Venice bitch'는 10분의 러닝 타임을 지닌 채 싱글 커트 되었고, 오르간과 다층의 코러스를 사용해 씁쓸한 정취를 살린 'California'와 고독의 정서를 토해내는 'Fuck it I love you'는 회색빛 감정으로 작품의 얼개를 잡는다. 유명 화가 노먼 록웰이 삽화로 아메리칸 드림의 허물을 형상화한 것에 영감 받아 라나 델 레이는 그 사이 'Fucking'이란 수사를 덧댔다. 유영하듯 침잠해 날선 메시지의 적확함으로 작금의 미국을 소환하고 꼬집는 음반. 흔들리지 않고 쏘아붙인다. (박수진)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2019년의 동의어는 '빌리 아일리시'였다. 그로테스크한 뮤직비디오는 Z세대의 열띤 환호를 받았고 'bad guy'는 '힙'의 대명사와 다름없다. 폭발적인 가창력이나 달달한 사랑을 외치는 전형적인 팝스타를 거부한 17세 소녀는 발칙하고 괴이한 상상('우리가 잠에 들면 어디로 갈까?')의 영토로 우리를 이끌며 잠재된 반항 정신을 건드렸다. 의식과 무의식, 꿈과 죽음이라는 대조적인 공간을 마구 헤집어 놓는 광기는 그 어떤 로커보다도 '록'스러웠다.
영리하기까지 했다. 스산한 곡에서 댄서블한 후크를 뽑아낼 수 있고 로드, 에이브릴 라빈, 마릴린 맨슨을 언뜻 내비치다가도 순식간에 자신으로 돌아간다. 자기 파괴와 고딕 이미지가 절정에 올라 죽음으로 귀결되는 일련의 테마는 지루할 틈이 없으며 'bury a friend', 'you should see me in a crown'으로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했다. 홈메이드 방식과 원시적 감정의 부각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 음악의 유통기한을 매기는 틴 팝 시장을 향한, 무심한 꾸짖음 그 자체이다. 대중성과 유니크, 저항 정신을 모두 잡은 올해의 앨범. (임선희)
랩소디(Rapsody) - <Eve>
"블랙 우먼의 이야기, 그런 랩은 원하지 않아
그들은 환상을 좋아해, 총이 울리는 액션을 좋아해
노예 시절에도 강간했고, 다시 우릴 강간하지
가슴이 출렁거리는 경우만 TV에 내보내"
- 'Cleo' -
<Eve>는 피가 끓는다. 들끓다 못해 철철 흐른다. 인종과 젠더의 차별을 받는 당사자가 직접 마이크를 잡아 더욱 리얼하다. 흑인 사회의 영웅들, 그것도 여성들의 이름이 곡의 이름으로 붙여졌다. Nina, Michelle, Aaliyah, Whoopi.. 흑인 탄압에 핏대를 세웠던 니나 시몬의 목소리로 시작해 현재 가장 존경받는 오프라 윈프리와 미셸 오바마도 그녀의 음악이 되었다.
귀를 기울일 곳이 참 많다. 정곡을 찌르는 가사는 물론이고 모티브를 푸는 세련된 전개, 공들여 얹은 샘플링까지. 앨범은 완벽함에 가까운 만듦새를 자랑한다. 2008년 데뷔해 남자들 투성이인 힙합씬에서 단단하게 버틴 그녀, 레전드들의 호위를 받으며 자신의 신념을 널리 포효하기 시작했다. (김반야)
FKA 트위그스(FKA Twigs) - <Magdalene>
핵심은 모순의 공존이다. 제목부터가 창녀와 신실함의 이미지가 혼재한 마리아 막달레나에서 따왔다. 사운드에서도 알앤비와 일렉트로닉의 영향이 뒤엉키고, 가사에는 진지함과 조소, 연약함과 단단함의 콘트라스트가 매혹적이다. 가사를 내뱉는 FKA 트위그스의 목소리 역시 섬세함과 강렬함 사이를 자유로이 오간다.
FKA 트위그스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자신을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보편성을 잊지 않는다. 우울한 자위를 노래하는 'daybed', 고통과 분노에서 서글픔으로 이어지는 'Home with you', 그리고 정제되지 않은 두려움을 드러내는 'cellophane' 까지, 한 사람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면서도 사회에게 부여당한 정체성을 직시하는, 정치적인 주체로서의 개인의 서사다. FKA 트위그스는 분노와 자애, 욕망과 신성함을 모두 끌어안아 입체적인 자아를 완성한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입장에 빗대어,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그 어떤 개인도 한가지 틀로 규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 이건 시대정신이다. (황인호)
자밀라 우즈(Jamila Woods) - <Legacy! Legacy!>
자신의 뿌리에 대한 위대한 찬사. 그는 이미 1집 <HEAVN>을 통해 시카고, 흑인, 여성에 대해 노래하며 자신을 지배하는 예술적 자아를 언급했고 더 나아가 이번 앨범으로 시대를 앞선 다인종 예술가들의 행적을 통해 본인이 움직여야 했던 이유의 당위성을 알렸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흑인 혹은 여성 사회의 기억을 더듬으며 발견한 차별과 항거의 흔적은 그가 부당에 투쟁해야만 하는 확실한 근거가 됐다. 그는 사서(司書)가 되길 자처하며 영감을 준 이들의 이름을 따 음악으로 기록했다.
단지 소개로 끝나지 않았다. 알앤비와 소울, 힙합을 기반으로 시도된 음악적 실험은 흑인 음악의 역사를 훑으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했고 박자에 얽매이지 않고 흐르는 목소리는 앨범의 처음과 끝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역사를 완성했다. “My wings are greater than walls.” 그는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굴복하지 않고 항쟁한 선구자에 대한 존경과 성찰 그리고 자기애를 담아내며 체제에 저항했고 그들이 남긴 발자취에 자신의 메시지를 덧씌우며 뚜렷하게 이름을 새겼다.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될 최신 '유산'이다. (손기호)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 - <Assume Form>
범연한 소리를 곧이곧대로 따르는 모습은 매혹적이지 않다. 오리지널리티가 그래서 사랑스럽다. 그러나 그 오리지널리티마저도 기존하는 형식과 내용을 맴도는 순간부터는 따분하다. 기껏 얻어듣는 입장에 입맛이 뭐 이리 강퍅하냐마는 아무튼 간에 나는, 여태껏 말해보지 않은 것을 포착해다가 기어이 제 언어를 동원해 말해내는 이에게 실로 크나큰 감흥을 느낀다. 오직 그러한 이만이 전에 없던 것들을 쉬지 않고 재차 포획할 수 있다. 이상은 <Assume Form>을 듣고는 다시 한번 떠올린 내 청취에 관한 화두다.
제임스 블레이크는 늘 상투성의 함정을 교묘히 피한다. 선례를 조금씩 왜곡해가며 타인과, 그리고 기존의 자신과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습관은 또다시 다른 소리를 내어놓는다. 고요하면서도 번잡한, 몽환적인 일렉트로니카라는 자신의 언어 대종에 계속 의지하면서도 전보다는 다분히 밝고도 팝적인 사운드를 이식하기도 하고, 이제는 범상해질 대로 범상해진 트랩을 포섭해서는 신선한 모델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이제 두 가지 경로에서 익숙하고 또 낯설다. 친근한 팝 사운드가 아티스트의 왜곡과 함께 멀어졌다는 게 하나고, 아티스트의 스타일 역시 여전히 모호한 가운데서도 예상 밖으로 팝적으로 변모했다는 게 다른 하나다. 이러한 제임스 블레이크 또한 분명 전에 없었다. (이수호)
로살리아(Rosalia) - <El Mal Querer>
'Despacito'로 정점에 달한 2010년대 라틴 팝은 혁신과 열정의 젊은 아티스트들에게로 2020년대의 바통을 넘겼다. 제이 발빈(J Balvin), 배드 버니(Bad Bunny), 말루마(Maluma) 등이 각축장을 벌이는 가운데, 대세는 홀연히 떠오른 뮤즈 로살리아를 주목하고 있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이 아닌 유럽 대륙,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그들의 전통 민족 예술 플라멩코(Flamenco)를 13세부터 수련해온 수재(秀才)다.
플라멩코의 혼과 새 시대 대중음악의 차분한 문법을 자유롭게 혼합하는 <El Mal Querer>는 앨범 커버처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을 기묘한 청각적 경험과 감각의 승천을 인도한다. 중세 기사도의 비극을 2000년대 초 아이돌 팝으로 수놓고, 원시적인 리듬으로 호흡을 가쁘게 가져가다 전자음의 치밀함을 전개하기도 한다. 이 태피스트리 위에서 눈물짓고, 몸을 불사르며, 절규하고 또 다짐하는 젊은 뮤즈의 모습이 숭고하다. 로살리아는 이 걸작의 메시지를 이후 히트 싱글 'Con altura' 속 가사로 다시 강조했다. "이 높은 곳에 있기 위해 최선을 다해 / 난 일찍 죽어 묘지로 갈 거야" (김도헌)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 - <Father Of The Bride>
그간 꾸준하게 장르 다양성을 시도해온 그룹 뱀파이어 위켄드는 포크와 가스펠, 그리고 소울, 재즈, 팝 등 여러 장르를 한 데 섞은 요리를 꾀한다. 신선한 재료에 걸맞은 담백한 건강식이자, 깔끔한 플레이팅이다. 아이비리그의 키덜트(Kid Adult)들은 미니멀리즘으로 더욱더 명징해졌고 여유로운 포용력으로 한층 더 성숙해졌다.
2013년도 작 <Modern Vampires Of The City>의 심오한 향을 가지면서도 그 형태는 2009년도 작 <Contra>와 같이 가볍고 경쾌한 것이, 올해 가장 리스너블한 록 음반의 탄생이다. 적당히 알싸하면서도 부담 없는 사운드 속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성장하는 밴드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 벅찬 감정과 휴머니즘, 소소한 기쁨이 오가는 <Father Of The Bride>는 밴드의 따뜻한 새 국면을 선사한다. (장준환)
유나(Yuna) - <Rouge>
유나의 네 번째 글로벌 앨범 <Rouge>는 전작 <Chapters>(2016)로 지명도를 얻은 뮤지션의 야심작이었다. 말레이시아의 재능 있는 싱어송라이터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지-이지(G-Eazy), 리틀 심즈(Little Simz), 카일(KYLE) 등 영미의 래퍼와 일본의 로커 미야비, 한국의 박재범 등 글로벌 합작 군단을 구축해 좀 더 과감하고 관능적인 음반을 꾸렸다. 잘 들리는 알앤비 앨범의 근간에는 재즈와 일렉트로닉, 힙합을 재료로 한 사운드 디자인이 위치한다.
앨범은 여러 스타일을 오가며 듣는 재미를 다채롭게 풀어냈다. 펑키한 디스코 풍 'Blank marquee'와 'Pink Youth', 건반과 보이스 샘플의 활용이 빛나는 힙합 알앤비 넘버 '(Not)The love of my life', 미야비의 기타 연주와 유나의 보컬이 섬세하게 어울린 'Teenage heartbreak', 박재범과의 하모니가 인상적인 하우스 트랙 'Does she' 등 매력적인 수록곡이 가득하다. 노래마다 톤과 창법을 달리하며 흔들림 없이 음반의 중심을 잡는 가창 또한 수준급이다. 아티스트의 음악적 성장이 돋보인 앨범. (정민재)
포스트 말론(Post Malone) - <Hollywood's Bleeding>
어디를 가나 포스트 말론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한 앨범에 수록된 17개의 노래가 모두 빌보드 싱글 차트 100위 안에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Hollywood's Bleeding>은 현재 그의 커리어 하이를 증명하듯 종합 히트곡 세트로 올해 팝 신을 강타했다. 힙합과 록을 가로지르는 작법에 더욱 완숙해진 프로듀싱을 받쳐 매끄러움을 살렸고, 여유롭게 끌어안은 팝 멜로디와 고유 매력이던 슬프고 어두운 캐릭터도 놓치지 않았다.
그에게 장르의 정의는 무의미하다. 어느 쪽에 치우침 없이 여러 양식을 두루 접목한 틀, 곡의 감성에 따라 제각각 탈을 바꾸며 변조를 이루는 보컬과 랩에 아티스트의 특출한 재능이 녹아든다. 스타일의 융합으로 제시한 다양한 색깔을 빼곡하게 수놓으니 음반은 더없이 풍요롭다. 촉망받는 팝스타의 전진 앞으로! 당분간 가장 '다재다능한' 뮤지션은 포스트 말론으로 통할 것이다. (이홍현)
관련태그: 2019 연말 결산, 올해의 팝,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 '7 rings',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bad guy'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