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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20화 : 제발 힘을 합치라구. 조선사람들 사는 꼴을 보라구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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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부 큰할아버지 이백만의 무덤덤하고 표정 없는 중립주의마저 오래 전에 정해져 있던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2019. 0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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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조사부는 노동자 개개인의 향방, 동정이나 생활상태, 가정관계, 교우관계, 연고관계, 배경 등을 조사한다. 자본 측의 방침이나 취업시간, 임금문제 등 모든 대우개선점을 조사하고 공장측의 착취형태를 폭로한다. 연락부는 공장 바깥에서 각 공장 단위로 연계하고 지도하는 파투 오르그(파업투쟁위원회조직)와 노동자의 중간에서 밖의 결정 방침을 노동자들에게 전하고 또한 노동자의 동정 요구 등을 조직에 보고하여 투쟁을 원활하게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이철은 그때까지 공장 바깥에 그 어떤 조직 상부가 있는지 알지 못했고 안대길이 그들과의 연결점인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정도였다. 밖에도 공장 내와 동일한 조직부서의 전담자들이 있다는 것은 몰랐다. 이들은 경성의 여러 공장들에 연결되어 있을 것이리라. 그가 알기로도 조선에서의 당은 언제나 몇 달이 못 가서 일제의 치안기관에 피검되어 분쇄되어 버렸다. 그리고 행세식 지식인들이 파당을 지어 저희끼리 이합집산했고 자신은 생활을 바꾸지 않은 채로 현장의 노동자 농민대중과 연결하려는 조급성으로 슬로건만 앞세운 조직을 급조했다가 피검되곤 하였다.


소부르주아 인텔리의 관념적 조직과 파벌주의에 대하여 코민테른의 12월 테제는 엄혹하게 비판하고 모든 과거 조직의 해체와 통합을 요구했다. 이이철은 안대길에게서 민족주의적 개량주의와 적색노동조합 운동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교양을 받았다. 좌우 합작 운동체였던 신간회의 민족주의 우파가 일본에게서 자치권을 바라는 정도의 노선을 드러내자 사회주의 계열은 이러한 기회주의를 철저히 배격하며 조직 해소론으로 나아가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고 이철은 이에 크게 공감했다.


신금이는 당시의 일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손자 이진오에게 할아버지 이일철과 결혼하던 무렵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해주었다. 다행이 아들 이지산이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전란 속에서 구사일생하여 후문을 전했지만, 어쨌든 반세기 이상이나 이산가족이 되어 구십 세가 넘도록 살아오면서 그녀는 남편의 청년기 때 모습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그때는 느이 큰할아버지가 아직 시장거리에 살았을 적이란다. 우리가 결혼하고 지산이 아부지가 철도국에 취직을 한 뒤에야 자리가 나서 당산 철도관사에 들어가 살게 되었지. 거기서 한 사오 년 살았는가 싶다. 큰할아버지가 못내 공방을 못 잊어 하셔서 샛말로 집을 장만하여 나오게 되었구나.”


 “그럼 할머니는 할아버지하구 어떻게 만나셨어요? 뭐라더라……중매요, 연애결혼이요?”


신금이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촌사람두 아니니 중매를 서줄 이두 없구. 그렇다구 길거리서 눈 맞아 연애질 한 것두 아니구.”
 “그럼 머예요?”


할머니는 입을 손으로 가리면서 웃었다.


 “반반이라구 해두자꾸나.”


중매반 연애반이라는 말인데, 진오가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자꾸 캐묻자 그제야 남편의 아우였던 이이철 작은 할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우리 시동생이 일정 때 주의자였단 얘기는 너두 들었겠지.”


이진오는 머리가 커서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그로부터 꼼짝달싹도 못할 정도로 자신의 미래가 노동자 이외의 다른 존재로는 살아갈 수 없게 한정 지어졌다고 그는 억울하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월북했고 아버지는 그를 따라갔다가 부상당하여 반공포로가 되어서 돌아왔다. 그리고 일찍이 그의 작은 할아버지는 공산주의자로 일제 강점기에 해방을 맞지도 못하고 옥사했다. 할아버지의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이었을까. 증조부 큰할아버지 이백만의 무덤덤하고 표정 없는 중립주의마저 오래 전에 정해져 있던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신금이는 그때 일요일만 되면 교회에 나갔다. 여고보 과정을 공장에서 단기로 수료할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어 방직공장에 여공으로 들어갔으니 뭔가 배우겠다는 일념이 강했던 그녀였다. 그녀는 전문학교 학생이나 일본유학생들이 영어를 배워서 말하고 읽는다는 것이 부러웠다. 장로교 예배당에 영어성경반이 있는데 가보지 않겠느냐는 친구의 말에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에는 조선인 목사 이외에 미국인 선교사 부부가 봉직하고 있었는데 그 부인 메리가 영어성경반을 맡고 있었다.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수요일과 일요일에 있었다. 수요일에는 저녁 예배가 끝나고 나서 한 시간이었고 일요일에는 낮 예배 끝난 오후 한 시간이었다.


아무튼 공장에서 삼 년의 단기 여고보 과정을 수료한 뒤였으니까 전보다는 시간 여유가 많은 편이었다. 그녀는 이제 어엿한 정식 직공이자 조장이어서 부근에 집이 있었으면 출퇴근도 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기숙사에 기거하는 것이 좀 불편하기는 하여도 숙식이 해결되어 생활비를 절약할 수가 있어서 그녀는 기숙사의 2인실에 잔류하는 쪽을 택했다. 기숙사 사감은 교회에서 확인서를 받아오도록 하여 외출을 허용해 주었다.


장로교회는 공장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어서 영등포역을 지나 시장 사거리도 지나고 옹기말 언덕 초입에 새로 지은 벽돌건물이었다. 나중에 이곳에 유치원이 생겼을 때에 그녀는 이지산을 넣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아무튼 일요일은 오전에 나와서 예배를 보고 오후에 성경반 수업을 받고 때로는 외식하고 들어가거나, 시장거리에 있는 극장에 들러 활동사진도 보고 일본 신파극 또는 잔잔바라 같은 사무라이극도 구경했다. 그런데 수요일에는 수업이 끝나면 보통 아홉 시가 넘은 시각이라 총총걸음으로 기숙사의 취침시간인 열 시에 맞추려고 서둘러야 했던 것이다. 그맘때에 공장까지 돌아가는 길은 역전 광장 부근만 빼고는 거의 인적이 드물었다. 여름에는 그래도 행인이나 집 앞 골목에 나와 있는 주민들이 많았지만 날씨가 궂은 날이나 추운 날이 되면 사방이 적막하고 조용해서 무섬증이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귀신이 무서운 게 아니라 사람이 무서웠다.


신금이가 교회에서 나와 걷기 시작했는데 검은 그림자가 뒤에 적당한 거리로 따라붙더니 같은 방향으로 계속 쫓아오면서 차츰 거리를 좁혀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시장 사거리에 이르러 행인의 왕래가 제법 보이는 길에 이르러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다. 다가오는 사람을 보니 젊은 청년이었고 목까지 단추를 채우는 국방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부근에서는 직장 다니는 사람이 일터에서 돌아오는 행색으로 익숙한 모습이었다. 청년은 그녀를 지나쳐 가지 않고 대여섯 걸음 떨어져서 돌아서더니 짐짓 권련을 꺼내어 불을 붙이며 어물쩍거렸다. 신금이는 당돌한 데가 있어 겁먹지 않고 대뜸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왜 저를 쫓아오는 거예요?” 


 “예에?”


 그는 피워 물었던 권련을 얼른 내리고 뒤로 두어발짝 물러나며 더듬거렸다.


 “서, 선옥씨 잘 아시죠?”


 “박선옥 말인가요? 내 조수인데 그 애가 무슨 상관이죠?”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하나 이거. 실은 나두 같은 직장에 나갑니다.”


신금이는 그때에 뭔가 회색빛 그림이 어둠 속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의 거뭇한 몸 위로 무슨 검은 줄이 세로로 죽죽 그어져 있었다. 그녀가 그런 장면을 떨쳐버리듯 머리를 흔들자 검은 줄은 사라졌다. 


 “나는 댁에를 본 적이 없는데요.”


그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계면쩍게 말했다.


 “공장 들어간 지 이제 한 달포 되었습니다.”


 “어느 부서죠?”


 “발전부 인부로 들어갔습니다.”


신금이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인부라면 일당을 받는 임시직이니 허드레 일꾼이나 마찬가지였고 더구나 달포 되었다면 이제 겨우 공장 안을 파악했을까 말까한 기간이다. 


 “일이나 열심히 배워서 장정 구실 할 생각이나 하세여.”

그랬더니 청년은 꾸뻑 인사를 하고는 말했다.


 “네 그럴 생각입니다. 실은 저는 철도공작창에 다니다 해고당했거든요.”


신금이는 처음부터 그의 인상이 어딘가 막일꾼으로는 보이지 않았고 눈앞에 떠올랐던 그림이 마음에 걸렸다고 그랬다. 신금이는 아들 이지산과 손자 이진오에게 몇 번이나 그 얘기를 했었다. 그게 옥살이를 연거푸 해야 할 도련님짜리의 운명을 미리 보았던 것이라고 그녀는 말하곤 했다. 신금이는 공작창에서 수백 명이 들고 일어났던 파업 사건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큰 사건에 대하여 영등포에 사는 누군들 듣지 않았으랴. 많은 사람들이 잡혀갔다 풀려 나왔고 노동쟁의는 전기공장 고무공장 제분공장 정미소 등에까지 번져서 영등포와 인천 일대가 한동안 떠들썩했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천천히 걷기 시작했고 그는 공장까지 따라왔다. 그가 하려던 말은 지금 공장의 몇 사람이 일요일마다 밖에서 독서모임을 하는데 신금이 씨도 참여를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녀를 넌지시 소개한 것이 바로 그녀의 직조기 조수인 박선옥이라는 얘기였다.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영등포에는 신세대 주의자들이 막 노동운동을 시작하고 있을 때였단다. 선배 세대가 매번 요릿집이나 카페에서 당을 선언만 해놓고는 잡혀가고 깨지고를 반복하니까, 그 사람들은 아예 각자 공장에 들어가서 조직을 만들어 밑에서부터 시작하려구 했대. 맨 뒤에 류 아무개라는 전설 같은 활동가가 있었지. 느이 할아부지도 그때는 그 사람 얼굴도 못 보았던 시절이다. 그러구 선이 한둘이라야 말이지. 제각기 조직을 만든다구 국제당의 선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네야 모두 입을 모아 말했지. 제발 힘을 합치라구. 조선사람들 사는 꼴을 보라구.”


영등포공작창은 만주사변과 세계 경제 불황의 여파로 재정비를 한다며 임시휴업을 단행했고 이에 조선인 공원 백여명이 파업에 돌입했다. 회사 측은 단호하게 정식 직공과 다수의 용인 인부를 포함한 이백여명을 해고했다. 이에 맞서서 삼백여 명이 파업에 동참했고 공장은 완전히 멎어버렸다. 안대길 방우창 이이철을 비롯한 칠팔 명의 비공개 파업위원회가 꾸려지고 밖에서는 안대길이 접선하고 있던 중앙조직이 파업을 지휘했다. 이들은 전체 직공대회를 개최하고 그중에서 공개적인 대표자 다섯 사람을 선정했다. 이는 그동안 식민지 조선의 파업 중에서 공장 내의 전 종업원을 망라한 대회가 조직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위력적이었다. 한꺼번에 이백여 명을 해고한 강경책이 오히려 노동자들을 뭉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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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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