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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석의 저주

그나마 마누라는 올해 책이라도 한 권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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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연말이 성큼 다가왔고, 다들 이맘때면 대충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무자비한 시간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 위에 속절없이 주저앉은 기분이다. (2017.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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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벌써 11월이라니! 2017년도 고작 한 달밖에 안 남았다니! 그동안 내가 한 일이라곤 어제도 술 처먹고 그저께도 술 처먹고 엊그저께도 술 처먹은 기억밖에 없는데! 심지어 오늘도 술 처먹을 것 같고 내일도 술 처먹을 것 같은데! 빌어먹을! 젠장...

 

어느새 연말이 성큼 다가왔고, 다들 이맘때면 대충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무자비한 시간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 위에 속절없이 주저앉은 기분이다. 사실 술만 처먹은 건 아니다. 술을 안 처먹는 시간에는 주변도 돌보고, 집안일도 돌보고, 혼자 잘 노는 애가 심심해하면 이따금 말동무도 돼주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술값이라도 벌어 보려고 나름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용케 술값은 벌긴 했는데, 아시다시피 술 처먹고 나면 딱히 남는 게 없을 뿐이다. 술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되는 일은 없는데 하는 일은 되게 많군요.” YG엔터테인먼트 대표 양현석이 했던 말이라고 한다. 어떤 TV프로그램에서 어떤 맥락으로 한 말인지는 모르겠다. 검색도 귀찮다. 왠지 이 말의 맥락을 파악하는 일조차 되게 많은 하는 일 중 하나가 될까봐 두렵기도 하고. 어쨌든 최근 비수처럼 콱 꽂힌 말이다. 가위에 눌릴 때마다 머리를 풀어헤친 양현석이 귓속말로 그 말을 다정하게 속삭일 것만 같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를 시시포스처럼 알 수 없는 꼭대기에 힘겹게 올려놓으면 양현석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그 하루를 얄밉게 밀어뜨릴 것만 같다. “되는 일은 없는데 하는 일은 되게 많군요”라는 팩트 폭격을 퍼부으며.

 

역시 성공한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달라... 참나, 웃기지 마! 암만 그래도 양현석보다 서태지거든! 그런데 서태지도 성공했잖아... 라며 거울 속에 나와 혼잣말을 주고받으며 양현석의 저주를 있는 힘껏 물리치는 중인데, 이게 통할까? 안 통하지. 자, 이럴 시간에 뭐라도 해보자며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뭔가를 하려고 하면, 그 뭔가는 ‘되는 일’일까 아니면 되게 많은 하는 일 중 하나일까 계산부터 하고 자빠졌다. 아, 양현석!

 

그나마 마누라는 올해 책이라도 한 권 출간했다. 『두 여자 이야기』라고 혹자는 올해의 책이나 다름없는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보다 훨씬 재밌고 뭉클하다지만, 망했다. 뭐 아주 망한 건 아닌데, 『82년생 김지영』에 비하면 망했다는 얘기고, 『82년생 김지영』에 비하면 안 망한 책을 찾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부디 오해 없길 바란다. 『82년생 김지영』의 성공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 성공은 오히려 환영 받아 마땅한 일이다. 82년생 김지영으로 대변되는 모든 여성의 이야기가 마침내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방증일 테니까. 이참에 55년생 함현숙(어머니)의 이야기와 23년생 강복만(외할머니)과 21년생 도수선(할머니)의 이야기도 쏟아지길 바란다.

 

무엇보다 애는 올해도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아무 음식이나 잘 먹고, 아무 데서나 잘 자고, 아무 때나 잘 웃는다. 이따금 친구들로부터 상처받는 일도 있지만 곧잘 까먹는다. 살뜰히 챙겨주지 못하는데 투정부리는 일도 없다. 더 바랄 게 없다. 잠든 애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하염없이 고맙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책이 별 주목을 받지 못해 한동안 의기소침했던 마누라도 새 만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또 망할 수 있겠지만, 마누라는 쉽게 주저앉을 사람이 아니다. 마침 해외 출판 관계자들도 마누라의 만화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마누라가 맨부커상이나 노벨문학상을 받는 경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만화는 해당 안 되나?) 말하자면 허공에 삽질도 계속하면 헛되지 않고, 나만 잘하면 된다.

 

물론 나도 아무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4년에 출간된 예쁜 여자』가 불어판에 이어 네덜란드에서도 출간될 것 같은데, 다만 작은 걸림돌이 하나 있다. 현지 출판 관계자가 아재개그를 너무 좋아한다. 가령 “불어판을 중역하면 불어판 출판사에 비용을 따로 줘야 하는 게 아니냐”라고 메시지를 보내면 “걱정 마, 해적판으로 출간할게”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런 식으로 현지 출판 관계자의 메시지는 반절이 아재개그고, 게다가 영어로 된 아재개그다. 그냥 영어도 잘 안 되는데 영어로 아재개그라니. 우리말이면 어느 정도 맞장구를 치겠는데, 너무 피곤하다. 그래도 나는 영어사전과 구글 번역기를 총동원해 성실히 응답하고 있다. 그런데 이건 과연 ‘되는 일’일까? 불어판도 실은 망한 거나 다름없고, 네덜란드어판이 출간된다고 해서 큰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대관절 영어 공부까지 해야 하고, 그나저나 네덜란드 사람들한테 내 이야기가 통할까? 젠장, 알 게 뭔가. 어차피 ‘되는 일’인 줄 알고 시작한 것도 아닌데.


 

 

두 여자 이야기송아람 글그림 | 이숲
누워서 애꿎은 이불이라도 걷어차고 싶은 이야기,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 혹은 당신이 그동안 외면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두 여자 이야기, 아니 가족과 사회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한 여자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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