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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vs.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

모두들 불행 배틀에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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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로 돈을 번다는 건, 그러니까 말하자면, 맛있는 걸 잔뜩 먹어 건강해지고 얼굴색도 환해졌는데 희한하게 배는 안 나오는 상태와도 비슷하다. (2017.07.11)

신예희의 프리랜서 생존기_4회 그림.jpg

 

"How are you?"라는 질문엔 "Fine, thank you. And you?"라는 대답이 대뜸 튀어나온다. 세뇌라도 당하듯 몇 번이고 외우며 배운 결과다. 마찬가지로 "요즘 일 어때요?"라는 물음엔 "아우, 죽겠어요, 힘들어요" 소리가 입에서 자동으로 나온다. 겸손이든 아니든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자영업자의 근황 매뉴얼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식의 인사말을 주고받는 요령이 아마 제1장에 적혀 있을 것이다. 질투를 유발해 좋을 것이 없으니 몸을 사려야 한다고.

 

어느 날 문득 이 부정적인 대답이 싫어졌다. 일이 잘되면 잘된다고 솔직하게 대답해야지 마음먹었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실행했는데, 대략 이런 대화가 오갔다.

 

상대방 : 그래, 요즘 일은 잘돼요?
나 : 네. 잘하고 있어요.
상대방 : 응? 아~ 그래요? 어우, 잘나가나 봐? (feat. 미묘한 표정)

 

순간 후회가 밀려오는 동시에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뭘 잘못한 겁니까! 하는 일이 잘되어도, 좋은 일이 생겨도 그런 것 전혀 없는 척해야 하는가. 그건 겸손이 아니라 의뭉스러운 거짓말 아닌가... 라고 생각하며 황급히 "아휴 아니에요. 죽겠어요 아주"라고 수습하긴 했지만.

 

타인의 SNS는 하나같이 화려하고 행복하고 즐거워 보인다.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닌 사진, 새로 산 옷과 가방 사진, 리미티드 에디션 립스틱과 아이섀도 팔레트 사진, 여행 사진, 이런 것만 보면 세상에나, 그렇게 행복한 인생은 또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론 누구의 인생이든 골치 아픈 순간, 비루하고 남루한 순간을 쏙 빼고 화사한 순간들만 모아 놓으면(그리고 거기에 적절한 필터를 적용하면) 다 좋아 보이죠. 다른 사람의 직업도, 그가 하는 일도 그래 보일 것이다.

 

모두들 불행 배틀에 뛰어든다. 누가 더 힘든지 경쟁한다. 친구들과 만나면 다들 우리 회사가 얼마나 갑갑한 조직이고 내 상사는 얼마나 한심한 인물인지, 내 부하직원은 얼마나 싸가지가 없고 내 업무는 또 얼마나 고된지 신세 한탄을 한다. 한 명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야, 넌 그래도 나보단 낫지' 라며 맞은편에서 더 암울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와중에 혼자 별 얘기 없이 입을 다물고 있자니 눈치가 보인다. 금세 하소연을 빙자한 공격이 훅훅 들어오기 때문이다.

 

"넌 그래도 회사를 안 다니니까 편하지?"
"네가 무슨 걱정이 있어? 정년이 있니 뭐가 있니?"
"신랑도 없고 애도 없고, 너처럼 세상 편한 애가 어딨니?"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듣는 말은 역시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도 벌잖아"다. 이게 말이야 말갈족이야 싶어 대꾸하지 않으면 '거봐, 역시 그렇지'라는 눈빛이 돌아온다. 그게 싫다면 나도 뭔가를 꺼내야 한다. 별거 아닌 얘기라도 어떻게든 쥐어짜고 과장해서 나도 사실은 죽겠다는 어필을 해야 한다. 내 불행 보따리가 이렇게 푸짐하니 나를 동료로 받아들여달라는 제스처다. 아마 모임을 마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선 그래도 걔보단 내가 낫네라며 안도할 것이다.

 

하지만 저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버는 게 아니라 어지간하면 일을 좋아해 보려고, 정 붙여 보려고 상당히 애쓰는 사람입니다.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토끼 같은 대출원금과 여우 같은 대출이자와 고양이 같은 카드값과 햄스터 같은 사무실 유지비가 나만 쳐다보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죠.

 

열정 하나로 버티겠다는 식이라면 애저녁에 하얗게 타 봄바람에 훨훨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번다는 건, 그러니까 말하자면, 맛있는 걸 잔뜩 먹어 건강해지고 얼굴색도 환해졌는데 희한하게 배는 안 나오는 상태와도 비슷하다. 뒷동산에 우담바라가 만발할 때나 일어나는 일이다. 보통은 살기 위해 뭐든 꾸역꾸역 먹고 덤으로 살까지 찐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이 의미도 재미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의뢰를 받으면 설렌다. 나를 믿고 일을 맡겨주다니 감사하다. 일정대로 작업을 마치면 뿌듯하다. 약속한 날짜에 결제를 받으면 신이 난다. 하지만 정말로 기쁠 때는 따로 있다. 같은 곳에서 두 번째로 일을 제의할 때다. 겸손하게 말하자면 최소한 지난번 일을 망치지는 않았다는 뜻이고, 대놓고 말하자면 돈값을 했다는 의미다. 나름 보람을 느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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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신예희(작가)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프리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재미난 일, 궁금한 일만 골라서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그녀는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탓에 혼자서 시각과 후각의 기쁨을 찾아 주구장창 배낭여행만 하는 중이다. 큼직한 카메라와 편한 신발, 그리고 무엇보다 튼튼한 위장 하나 믿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40회에 가까운 외국여행을 했다. 여전히 구순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처음 보는 음식, 궁금한 음식은 일단 입에 넣고 보는 습성을 지녔다. ISO 9000 인증급의 방향치로서 동병상련자들을 모아 월방연(월드 방향치 연합회)을 설립하는 것이 소박한 꿈.
저서로는 『까칠한 여우들이 찾아낸 맛집 54』(조선일보 생활미디어), 『결혼 전에 하지 않으면 정말 억울한 서른여섯 가지』(이가서), 『2만원으로 와인 즐기기』(조선일보 생활미디어),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시그마북스), 『여행자의 밥』(이덴슬리벨)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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