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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자기소개에 대하여

직업 소개는 조금 더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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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라는 단어는 때론 상상 속의 유니콘처럼 느껴진다. 실체가 없는, 막연하고 아련한 자유의 냄새를 폴폴 풍기는 그 무엇이다. 이런 근사한 말을 감히 미천한 내가 갖다 써도 되는 걸까? (2017.06.20)

채널예스_신예희의 프리랜서생존기_본문 이미지.jpg

 

내가 사는 아파트는 2,700세대가 넘는 대규모 단지다. 2,700이라니, 거창한 숫자다. 집 안에 틀어박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는 실감 나지 않지만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한 아름 안고서 밖으로 나가 분리수거를 한 다음 주변을 휙 둘러보면 새삼 놀랍다. 맞네, 맞아. 단지가 넓기도 넓고 아파트 건물은 높기도 높다. 화요일 낮 두시 반에 유니클로 실내복을 위아래 쫙 빼입고 분리수거를 하는 나. 이래 봬도 1인 기업 사장님이시다. (특히 무급 휴가에 후하다) 그런데 정작 동네 사람들 눈엔 뭐 하는 사람으로 보이려나?

 

자기소개는 언제나 어렵다. 직업 소개는 조금 더 복잡하다. 학교를 졸업한 이래 지난 20여 년간 별별 일을 해왔다. 다양한 온라인 매체와 신문, 잡지 같은 오프라인 매체에 만화를 연재했다. 여행과 음식에 대한 책을 몇 권 썼고 칼럼을 연재했다. 학습서 삽화를 그렸고 번역서를 출간했다. 동화책을 만들었고 때로는 사진 일로 출장을 다녔다. 1년 가까이 전문 학원에 출강하며 특정 분야를 가르쳤고 도서관과 백화점 문화센터, 기업체 강연을 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 출연 경험이 있는데, 녹화(녹음) 방송과 생방송을 두루 겪으며 내가 거북목이라는 것과 남보다 혀가 딸다... 아니 짧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이사이 이런저런, 별별 일을 기획하고 실행했다. 모두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혼자 해온 것들이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나도 궁금하다.

 

그러니 처음 만난 사람으로부터 "어떤 일을 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아주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저, 저는 말이죠... 우선 부모님 친구분들께는 방송 출연이라던가 신문 연재 이야기가 참 잘 먹힌다. 70대 이상 어르신들께 공중파 텔레비전과 일간지의 위력이란 대단한 것이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조카 친구들에겐 "이모가요, 만화를 그려요"라고 하면 열광적인 반응이 돌아온다. 얘들아, 그렇다고 다짜고짜 뽀로로를 그려 내라고 하면 이모가 힘들단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좀 드문 편이고, 보통은 "네, 저는 프리랜서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어요"라고 답한다. 만화면 만화, 책이면 책 등 그때그때 주력하는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꽤 많은 사람이 일의 내용보다 프리랜서라는 근무 형식에 더 주목한다는 것을 느낀다. 이게 뭔 소리냐면

 

나: 아, 저는 프리랜...
상대방: (싹둑) 와 멋있다~ 좋겠다~

 

이런 일이 무척 자주 생긴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직업 중에서 콕 집어 어떤 분야의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것인지 아직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왜 그러시죠. 뭐, 그렇다고 기분이 상할 일은 전혀 아니다. 그저 프리랜서라는 단어가 여전히 생소하고 독특하게 느껴진다는 뜻이겠지. 뭐니 뭐니 해도 '프리free'라는 부분, 그게 매력 포인트일 것이다. "집에서 노브라로 일해요"라고 대답하는 것보다 훨씬 있어 보이기도 하고.

 

물론 기분이 확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오래전 소개로 만난 남성과의 대화를 떠올리면 지금도 입가에 아련히 쌍욕을 머금게 된다. 대략 이런 대화였는데

 

소개남: 회사는 어디 다니신다고요?
나: 아, 저는 출퇴근이 아니라 프리랜...
소개남: (싹둑) 팔자 좋으시네, 사회생활을 모르시겠어~ 조직이요,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주선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카페 테이블을 마음속으로만 열두 번 엎었던 과거의 나여... 잘 참았다...

 

프리랜서라는 단어는 때론 상상 속의 유니콘처럼 느껴진다. 실체가 없는, 막연하고 아련한 자유의 냄새를 폴폴 풍기는 그 무엇이다. 이런 근사한 말을 감히 미천한 내가 갖다 써도 되는 걸까?

 

갓 졸업했을 무렵엔 자기소개를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뭘 해도 처음이니 뭔 일을 하든 우왕좌왕, 허둥지둥인데 프리랜서는 무슨 프리랜서. 간지럽고 민망하고 쑥스러웠다. 아직 한참 부족하구먼. 그런데 잠깐, 대체 뭐가 부족하다는 거지? 역시 돈일까? 벌이가 시원찮아서? 아니면 아직 어려서? 혹은 폼이 나지 않아서? 친구들은 근사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회사로 출근하는데 나는 후줄근한 후드티에 무릎 튀어나온 추리닝 바지 차림으로 집에서 일하니까?

 

딱 집어서 이거다, 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저 송구하고 부끄러울 뿐. 그 때문에 돈벌이를 시작하고도 1~2년 동안은 직업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냥 뭐...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요"라고 얼버무렸다. 나는 아직 준비 중인, 미완의 상태라고 변명하며 몸을 숨긴 것이다. 언젠가 내가 근사해지면, 완벽해지면, 그땐 당당하게 나서야지 하고.

 

그렇게 하루 벌어 하루 먹는다는 자세로 지내던 어느 날, 거래처 담당자의 전화를 받았다. 상부 보고용으로 이력서와 명함이 필요하니 보내달라는 요청이었는데, 어이구야, 그러고 보니 난 아직 명함이 없는데? 통화를 마치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정신없이 명함을 만들고 인터넷으로 인쇄 업체를 검색했다. 파일 전송 완료! 빨리, 빨리요! 몇 시간 후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온 퀵서비스 기사가 자그마한 꾸러미를 건넸다. 포장을 풀고 플라스틱 통에 담긴 명함을 꺼냈는데... 거참, 요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작은 종이 한 장이 어쩌면 그렇게나 묵직하게 느껴지던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명함을 사용하고 있다. 전화번호만 두어 차례 바뀌었을 뿐이다. 첫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하기 위해서다... 라고 하면 왠지 좀 멋있어 보이는데, 실은 겸사겸사 귀찮아서이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안녕하세요, 프리랜서 작가 신예희입니다. 일을 시작한 이래 때로는 아슬아슬하게 버틴다는 심정으로, 때로는 인생 뭐 있냐 배 째라는 마음으로, 일하고 좌절하고 욕하고 기뻐하고를 거듭하니 어느새 20년이 지났습니다. 알게 모르게 마음엔 굳은살이, 몸엔 뱃살이 두껍게 붙었습니다. 그만큼 맷집이 좋아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굵고 짧고 폼 나게 살고 싶지만, 실제론 가늘고 길게 가고 있습니다. <프리랜서 생존기>는 ‘성공기’가 아닌 ‘생존기’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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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신예희(작가)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프리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재미난 일, 궁금한 일만 골라서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그녀는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탓에 혼자서 시각과 후각의 기쁨을 찾아 주구장창 배낭여행만 하는 중이다. 큼직한 카메라와 편한 신발, 그리고 무엇보다 튼튼한 위장 하나 믿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40회에 가까운 외국여행을 했다. 여전히 구순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처음 보는 음식, 궁금한 음식은 일단 입에 넣고 보는 습성을 지녔다. ISO 9000 인증급의 방향치로서 동병상련자들을 모아 월방연(월드 방향치 연합회)을 설립하는 것이 소박한 꿈.
저서로는 『까칠한 여우들이 찾아낸 맛집 54』(조선일보 생활미디어), 『결혼 전에 하지 않으면 정말 억울한 서른여섯 가지』(이가서), 『2만원으로 와인 즐기기』(조선일보 생활미디어),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시그마북스), 『여행자의 밥』(이덴슬리벨)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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