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음악 > 주목, 이주의 앨범
좋은 짜임새를 갖춘 듣기 좋은 록 앨범이다. 정갈하고 단아하지만 때에 따라 폭발력과 동행하는 사운드, 이를테면 록의 힘과 세기(細技)가 공재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외국의 트렌드를 수입해 적용하는 데서 오는 작위와 허세가 없어 자연스럽다. 아마도 밴드는 록 특유의 강력한 분출이 주는 어지러움과 거침을 걷어낸, 잘 정리된 사운드를 지향한 것 같다. 그래야 다수 대중과 만날 수 있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이것은 록 앨범인 동시에 팝 앨범이다.
사운드의 키워드는 단정함 혹은 질서일 것이다. 때문에 미리 싱글로 발표한 곡 「Happiness」 코러스의 둔중함, 「Fireworks」의 헤비 펀치, 「iamnot blues」의 블루스마저 조금의 무리 없이 청각을 파고든다. 이러한 높은 흡인력에 의한 대중성이 앨범의 미학을 형성한다. 마치 과거 플리트우드 맥의 <Rumours>나 알이엠의 <Automatic For The People>를 듣는 것처럼 조금의 거슬림 없이 마지막 곡까지 물 흐르듯 청취가 이어진다. 다음 곡으로 연결되는 느낌이 오토매틱 즉 ‘자동’의 느낌이다. 단 한 곡도 버릴 게 없다.
특히 곡마다 코러스, 이를테면 승부를 거는 후렴 파트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돋보인다. 밴드 스크립트의 「Hall of fame」처럼 잘 흐르면서도 귀에 명확히 잡히는 코러스의 「Wake up」 단 한 곡만으로 충분하다. 전체적으로 스타일은 다양하고 낱개 곡은 깔끔하지만 곡 하나하나에도 여러 요소가 융합되어 있다. 역시 선 싱글로 공개된 「RBTY(Running back to you)」의 경우 팝, 컨트리, 뉴웨이브, 신스팝 등 갖가지 요소가 잘 섞어내 이지리스닝 팝의 모범을 선사하고 있다. 믹싱과 마스터링에도 심혈을 기울였겠지만 멤버들의 이력과 대중적 흡수를 향한 지향이 낳은 산물로 보인다. 「Fly」에서 임헌일과의 보컬 데칼코마니를 구축한 이승열을 위시해 선우정아, 정재일, 윤석철 등 동료 뮤지션과도 콜라보도 완성도 제고를 위한 접근이다.
사운드와 지향뿐 아니라 가사에서도 ‘통일성’을 구현했다. 시작 곡 「Happiness」와 마지막 「Hope」의 제목이 웅변하듯 앨범이 품고 있는 메시지는 위로와 희망 즉 긍정성이다. 하지만 이들이 전하는 긍정론은 결코 ‘아무 의미 없는 위로’가 아니다. 쓰라린, 처절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청춘에게 힘을 주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게 공감을 부른다. ‘한참을 그렇게 거짓과 유혹에 정신을 잃은 채’(Rbty), ‘네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지, 모든 게 어려워’(Just believe what I say), ‘이 밤을 길고 난 이미 엉망이 됐어’(iamnot blues) 와 같은 ‘이생망’ 현실을 토대로, 아이엠낫은 포기와 절망이 아닌 다시 일어서려는 용기를 주문하고 눈을 뜨라고 촉구한다.
정리된 사운드, 곡의 대중성 그리고 시대성이라는 삼박자를 성공적으로 융합한 역작이다. 브레멘과 메이트 때보다 한층 익은 소리를 들려주는 임헌일, 편곡을 주도한 양시온, 다채로운 리듬의 틀을 짜준 김준호에게 박수를 보낸다. 앨범의 걸작 「Lost」는 이들 노력의 총합이다. 우선은 「Happiness」의 매력적인 코러스 「Yeah, it’s alright」 대목이 지속적으로 머릿속을 맴돈다. 대중성을 찾아가는 것이 이 시대 록의 도전과 실험임을 증명하는 회심작이다.
임진모(jjinmoo@izm.co.kr)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