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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곤, 호른의 소리 열매는 쉽게 열리지 않는다
수원시립교향악단 호른 수석 호르니스트 이동곤 인터뷰
호른은 오케스트라에서 리듬을 이끌고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왈츠나 행진곡에서 호른의 리듬이 쳐진다면 다른 악기도 그렇게 되죠. 그래서 호른이 박자를 치고 나가면서 단원들이 그 흐름을 읽을 수 있게 해야 해요.
호른 주자는 억울하다. 잘 연주하는 것은 차치하고 틀리지만 않아도 칭찬 받는 악기가 호른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연주하기가 어렵다. 호른은 이런 악조건을 모두 안고 제 몸을 둘둘 말고 있다.
말러(1860~1911)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는 특히나 호른을 사랑했다. 그중 말러는 호른 주자가 상상도 못할 기법들을 휘갈겨 넣었다. 그래서 ‘이 어려운 것을 해냅니다’라는 명대사는 드라마 속 주인공뿐만 아니라 무대에서 연주를 마치고 셔츠가 흠뻑 젖은 채 내려오는 호른 주자가 말할 때, 더 어울릴지도 모를 것이다.
수원시립교향악단(예술감독 김대진)에서 호른 수석으로 재직 중인 이동곤을 만나 호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아니 그 고충을 들어보았다.
모차르트의 호른 협주곡 1번 연주 영상. 라데크 바보라크(호른), 다니엘 바렌보임(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우리를 박쥐라고 한다!
호른의 연주를 들을 때, 기도하게 합니다. 틀리지 말라고.(웃음) 좀 짓궂은 표현이라 죄송하지만 그만큼 불기 어려운 악기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거에요. 호른의 매력에 대해 가볍게 들어보며 대화를 시작해볼까요?
금관악기(트럼펫ㆍ트롬본ㆍ튜바)와 함께 금관 5중주를 할 땐, 다른 악기들처럼 화려하게 소리를 지를 줄 알죠. 반면, 목관악기(플루트ㆍ클라리넷ㆍ오보에ㆍ바순)들과 함께 하는 목관 5중주에서는 전체적으로 음색을 부드럽게 만들어요.
거참, 양면적이네요.(웃음)
그래서 농담 삼아 호른을 ‘박쥐’라고들 해요.
박쥐라고요?
네.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을 보면 짝이 있어요. 첼로와 더블베이스, 클라리넷과 바순, 오보에와 플루트, 트럼펫과 트롬본 등등 말이죠.
그렇죠. 두 개의 악기들이 함께 소리를 내며 비슷한 성격을 드러낼 때가 있죠.
그런데 호른은 말씀드렸다시피 목관 악기에도 금관 악기에도 낍니다. 심지어 현악기랑도요. 그래서 그 중간자의 역할을 잘 해야 돼요.
정말 박쥐라는 별명이 정말 잘 맞네요!
그래서 파트를 이끄는 수석으로 고민이 될 때도 있어요. 합주에서 중요시 하는 균형의 기준을 호른 파트에 두어야 할지, 아니면 다른 파트에 두어야 할지 항상 고민하고 잘 파악해야 하거든요.
말러 교향곡의 호른
국내에서 금관악기의 입지는 피아노와 현악기, 플루트 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좁은 것 같아요. 덜 대중적이고요. 제 경험인데, 저도 중학교 때부터 관악부 활동을 했어요. 어느 날 플루트ㆍ클라리넷ㆍ색소폰 등을 든 선배들이 교실로 들어오더니 호른을 가리키면서 이 악기는 이름만 맞춰도 입단 후 우수한 대접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만큼 아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심지어 동그랗게 말려 있는 관의 길이가 3.7미터라고 하니 그 자리에서 펴보라는 학생도 있었어요.(웃음) 호른을 전공하던 고등학생 때 주위 환경은 어떠했나요?
25년 전이네요. 저는 한국에서 호른의 환경이 그 어떤 악기에 비해 가장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악기를 접했을 때만 해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선생도 소수였고, 해외 호르니스트의 내한 공연이나 마스터클래스를 보러가는 게 대단한 낙일 때였죠.
그런데 어떻게 호른을 만났나요?
중학교 때 시작했는데요, 음악을 둘러싼 환경이 아주 자연스러웠어요. 친인척 중에 음악을 전공한 분들이 많았거든요. 고모부도 첼리스트셨고, 두 딸도 현재 음악을 하고요. 모든 게 자연스럽게 다가왔어요.
국내에서 말러의 교향곡은 물론 교향곡 전곡을 선보이는 공연이 많아졌어요. 1999~2003년에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말러 전곡 연주는 정말 십 수 권의 대하소설을 써내려가겠다는 의지의 표출이었고요. 말러의 곡을 선보이는 데 금관 연주자들의 발전, 그 중 특히 호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시 저는 대학원생 신분이었는데, 부천필하모닉의 말러 대장정에 합류했었죠. 연습량이 어마어마했어요. 연습료와 연주료가 지급되었는데요, 어느 날 보니 너무 큰 액수가 입금이 된 거에요. ‘왜 이리 많을까’라며 궁금해 했는데, 세어보니 그만큼 연습일수가 많았던 것이죠. 정말 호르니스트로 피나는 노력을 했던 시간이었어요.
새로운 역사를 쓰는 현장에서, 나름 보람찬 아르바이트였겠습니다.
그렇지만 연습과 연주 때 많이 긴장했죠. 말러의 교향곡은 호르니스트들을 극한에 도달하게 하거든요.(웃음)
수원시향도 작년부터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하나씩 선보이는 ‘그레이트 말러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죠?
예전에 비하면 요즘은 재밌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실력이 안 되어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라, 호른 문화가 발전하면서 자연스레 선곡의 범위가 넓어지고, 사람들의 듣는 귀도 높아졌고, 그에 따르는 긍정의 긴장감이 있죠.
말러의 교향곡 4번을 선보였던 김대진(지휘)ㆍ수원시향의 ‘그레이트 말러시리즈 Ⅲ’ 영상. 영상의 37:20부터 감상할 수 있다. 초반에 이동곤 수석의 연주 장면도 나온다.
4월, 수원시향이 말러의 교향곡 7번을 선보였습니다. 국내에서 실제 연주로 들어보기 정말 힘든 곡이었는데, 저도 이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들어볼까라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수석주자로는 처음 연주해보았어요. 호른 독주가 많이 나와요. 사실 중간에 가끔 등장해야 긴장도 되는데, 계속 나오니까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긴장이 좀 덜 되더라고요. 그래도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웃음) 음악에 대한 집중이 곧 완성으로 이어지거든요.
호른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말러의 교향곡을 꼽는다면?
정말 버릴 게 없는 작품들이에요. 그런데 다른 악기로 연주하면 더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을 굳이 호른이 하라고 악보에 적어놓은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정말 소리 내기 힘든 고음으로, 그것도 소리 내기 힘들 정도로 작은 소리로 악기를 불어라? 이런 거요. 정말 그의 교향곡은 그 어느 것도 하나 버릴 것이 없지만, 이럴 때는 웃길 때도 있어요.
호른을 처음 시작할 때의 환경에 비해 지금의 환경은 어떤가요?
현실로 느껴져요. 제자인 주홍진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유학을 거치지 않고 인천시향 수석으로 입단했어요. 유학을 거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국내 환경만으로 좋은 연주자가 배출되죠. 현악기 교육이 국내에 빠르게 안착했는데, 호른도 이러한 환경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악기의 기초를 가르치는 형식과 시스템의 보편적인 틀이 생긴 것 같아요. 제가 배울 때는 한 선생이 곧 하나의 스타일이던 때였어요. 당연히 공통의 교과서란 게 없었고요. 지금은 공유가 되니 교육 체계라는 말도 쓸 수 있고요.
호른의 넓은 세계
수원시향은 언제 입단했나요?
2011년입니다.
입단 시험에서 연주했던 곡은 무엇인가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호른 협주곡이에요. 전세계 오케스트라의 공통시험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외 베토벤(1770~1827) 교향곡 7번, 차이콥스키(1840~1893)의 교향곡 5번,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교향곡 5번 속 호른 독주로 오디션을 보았어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호른 협주곡 2번 연주 영상. 라데크 바보라크(호른), 요미우리 일본 교향악단
슈트라우스 곡 중에 호른을 위한 곡이 많죠?
만약 그가 살아 있다면 “제일 좋아 하는 악기가 호른이죠? 맞죠?”라고 물어봤을 겁니다.
이제 본론입니다. 호른은 연주하기 참으로 어렵다고 하는데.
공기를 불어 넣는 마우스피스는 금관악기들 중에 가장 작고, 관은 제일 길지만 공기는 관의 끝까지 도달해야 하고, 그렇게 도달한 공기가 소리가 되어서 나오는 벨 부분은 금관악기들 중에 제일 크니까요.
정리해볼게요. 공기 넣는 곳은 작아서 볼이 아프고, 관이 길어 그 어느 악기보다 많은 공기를 필요로 하고, 소리가 나오는 부분은 금관악기 중에 제일 크니 그에 맞는 음량을 내려면 정말 많은 호흡이 필요하다, 이런 뜻이죠? 또한 트럼펫이나 트롬본은 소리가 나오는 벨이 정면을 향해 있지만, 호른은 등 뒤로 나 있어서 쪽으로 나 있어서 청중에게 소리를 제 때 전달하기 위해 다른 악기에 비해 ‘0.3초’ 앞서 나가야 한다는 속설이 있던데, 맞는 말인가요?
글쎄요. 음악에서 ‘0.3초’란 사실 엄청난 시간이에요. 더군다나 빠른 속도의 곡이라면 0.3초가 아니라 0.03초의 순발력이 필요하겠죠. 그런 순발력은 물론 필요합니다. 호른은 오케스트라에서 리듬을 이끌고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왈츠나 행진곡에서 호른의 리듬이 쳐진다면 다른 악기도 그렇게 되죠. 그래서 호른이 박자를 치고 나가면서 단원들이 그 흐름을 읽을 수 있게 해야 해요. 저는 그런 리듬감이 감각적으로 있다고 생각했는데, 입단 후에 무디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웃음)
오늘 인터뷰의 콘셉트는 ‘호른 불기의 힘겨움’인 것 같습니다. 다른 악기라면 악기의 매력을 얘기해달라고 하는데, 오늘은 참으로 계속 어려운 점만 묻는 것 같네요. 고음을 내는 것도 어렵다는데.
손가락으로 키를 눌러서 연주하지만 한편 입술의 모양을 아주 미세하게 움직여 전혀 다른 소리들을 내기도 하죠.(이동곤이 호른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키에 얹은 손가락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는데, 다른 계이름들이 나온다) 입술의 힘이 조금만 빗나가도 엄청난 실수로 이어집니다. 고음을 고음이라 생각하고 불면 안 되고, 늘 평정심을 갖고 불어야 하죠.
호른의 음역 중에 소리의 매력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소리는 무엇인가요?
오케스트라의 단원 중 두 명은 고음을, 나머지 두 명은 저음을 맡아요. 가장 좋은 음색은 중간 음인 것 같아요.
호르니스트로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곡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영웅의 생애’입니다. 슈트라우스의 아버지는 뛰어난 호른 연주자였죠. 그래서인지 슈트라우스는 호른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이 까다로운 악기를 연주하기 수월하도록 곡을 썼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 연주 영상. 발레리 게르기예프(지휘),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유투브의 영상들을 보면 엄청난 기교를 보여주는 연주 영상들도 있더라고요. ‘이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첼로곡인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위한 변주곡’을 호른으로 편곡해서 부는 경우도 있죠. 심지어 정말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림스키 코르사코프(1844~1908)의 ‘왕벌의 비행’도 있고요. 호른은 끊임없이 진화했어요. 19세기 초반에 F조 호른이 생겼고, 20세기 초반에 B플랫조 호른도 생겼어요. 악기의 발전이 연주자의 발전을 만들었어요.
슈만의 4대의 호른을 위한 협주곡 영상. 사이먼 래틀(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라데크 바로라크ㆍ스테판 도어ㆍ스테판 드 르발 예지에르스키ㆍ사리 윌리스(호른)
독주회를 한다면 어떤 곡을 연주하고 싶나요?
데스칸트 호른이라고, 고음을 내기 용이하도록 관을 짧게 만든 호른인데 이 악기로 바로크 음악들을 연주하고 싶어요.(※데스칸트 호른이란 바로크 시대 곡들의 아주 높은 고음을 조금 더 쉽고 편하게 내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1900년경 독일에서 등장했고, 1950년대 바흐가 재조명받던 시기에 이 악기의 필요성이 급증했다.)
끝까지 호른 연주의 어려움을 강조하며 이제 마치고자 합니다. 악기를 관두고 싶게 하는 곡은 없나요?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도전해보고 싶은 곡들이 더 많거든요. (웃음)
끝으로 올해의 계획은?
말러! 말러에 주력합니다. 수원시향의 ‘그레이트 말러 시리즈’ 중 올해는 3곡이 남았습니다. 저의 2017년은 말러입니다. (교향곡 6번 연주회(9월 13일), 교향곡 10번 연주회(11월 16일), 교향곡 2번 ‘부활’(12월 7일). 장소는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
음악평론가로 음악 듣고, 글 쓰고, 음악가들을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고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월간 <객석>을 중심으로 취재 및 집필 활동을, KBS 1FM에서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