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윤하정의 공연 세상
뮤지컬 <록키호러쇼>로 파격 변신하는 배우 조형균
여전히 B급, 컬트 문화를 대표하는 뮤지컬
2008년에는 불편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렌트>도 불편해하는 관객들이 계셨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다 드러내며 사니까 요즘 트렌드에 맞을 거라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공연을 취재하다 보니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가 있습니다. 2007년 국내 초연될 때만 해도 신선함보다는 불편함이 가득했던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지난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인기리에 공연됐고, 올해 10주년을 맞은 <쓰릴 미>는 지난 10년간 국내 공연 트렌드를 확실하게 바꾸었으니까요. 그래서 9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를 이 작품도 막을 열었을 때의 반응이 무척 궁금합니다. 여전히 B급, 컬트 문화를 대표하는 뮤지컬로 이른바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릴지, 이제는 이 정도의 무대는 색다르고 다양한 작품 중 하나로 그저 재밌게 즐길 수 있을지 말입니다. 바로 제목부터 남다른 뮤지컬 <록키호러쇼> 얘기인데요. 이렇게 파격적인 작품은 어떤 배우가 그 독특한 캐릭터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해낼지 더욱 궁금해지죠. 포스터를 보니 컬러풀한 의상 너머로 배우 조형균 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조형균 씨가 란제리 룩으로 무대에 선다는 얘긴데요. 요즘 ‘X-화이트’로 <더 데빌>에 참여하고 있는 조형균 씨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제가 공연 중에 옷을 열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웃음). 그래서 <더 데빌> 공연하면서 열심히 운동하러 다니고 있어요.”
1973년 60석 규모의 런던 로열코트 극장에서 초연된 뮤지컬 <록키호러쇼>는 이후 500석 규모의 킹스로드 시어터로 옮기며 무대를 이어갔고, 1년 뒤에는 영화로도 제작됐습니다. 하지만 양성애자, 외계인, 인조인간 등 파격적인 캐릭터가 그만큼이나 파격적인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는 혹평과 함께 개봉 2주 만에 상영이 중단됐죠. 하지만 영화는 B급 심야영화관인 웨이벌리 극장에서 다시 상영되면서 컬트영화의 지존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사실 B급이 뭘 얘기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특별히 선호하는 문화가 있지는 않아요. 일단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영화를 봤는데 무척 재밌더라고요. 캐릭터의 정신세계가 독특하고,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 본능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 작품이잖아요. 2008년에는 불편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렌트>도 불편해하는 관객들이 계셨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다 드러내며 사니까 요즘 트렌드에 맞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더 데빌>에서 ‘X-화이트’로 무대에 서고 있는데, 그래서 ‘본능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작품’에 끌린 건가요(웃음)?
“제 성향은 ‘X-블랙’입니다(웃음). 지금까지 공연하면서 비슷한 캐릭터를 연속적으로 하지는 않았던 것 같요. 프랑큰 퍼터의 경우 X-화이트와 전혀 달라서 더 하고 싶었죠. 여장남자 같은 역할을 해본 적도 없고, 극 자체가 저에게는 새로운 장르라서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포스터 보니까 마이클리나 송용진 씨에 비해 살짝 어색한 느낌이 나던데요(웃음)? <록키호러쇼>의 분장이나 의상 역시 무척 파격적인데 각오는 되셨나요.
“당연히 어색하죠. 그동안 분장이 과해봤자 눈 화장을 진하게 하는 정도였는데 모든 게 처음이라서 무척 생소했어요. 처음 망사스타킹 신고도 한참이나 웃었어요. 하이힐은 12cm라는데 팔자로 걷게 되더라고요. 여자들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그런데 분장팀이 분장을 너무 멋있게 해주셔서 거울을 꽤 오랫동안 쳐다봤어요. 제 얼굴이 신기했거든요(웃음).”
그 정도 높이의 힐을 신는 여성들은 많지 않습니다(웃음). 그런데 실제 무대에서는 이른바 란제리 룩에 계속 하이힐을 신고 공연하잖아요. 그래서 조형균 씨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 한편으로는 의외고, 다른 한편으로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들 하셨을 것 같습니다.
“좋게 생각해주셨다면 감사하죠. 매일 헬스장에 있는 것들을 조금씩 다 해보고 있는데, 살면서 한 번이라도 몸이 좋을 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이 그때라고 생각해요(웃음). 할 수 있을 때 해봐야죠. 배우는 도전하면서 발전하는 거니까요. 그리고 외적인 관리도 중요하지만, 저는 프랑큰 퍼터의 성향이 남자라고 생각해요. 란제리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그렇게 껍데기는 여자지만 남자다운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 캐릭터의 느낌을 찾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작품의 기본 형식이 콘서트형 뮤지컬이고 대사도 많지 않으니까 행동이나 노래로 전달하는 부분도 많이 찾아야 하고요.”
마이클리, 송용진 씨와 함께 캐스팅됐는데, 조형균 씨의 프랑큰 퍼터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두 형님이 워낙 잘하시는 분들이라 사실 열심히 따라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그러다보면 관객들이 봤을 때 색깔이 나뉘는 거겠죠. 어떤 작품이나 배우에게 요구하는 건 한 가지잖아요. 한 인물에 더블, 트리플 캐스팅이고 배우들이 똑같은 캐릭터 라인을 구축해도 사람이 다르다 보니까 관객 입장에서는 다 다르게 보이는 거죠. 색깔이란 자기가 만드는 게 아니라 주변 인물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도 열심히 따라가다 보면 뭔가 다른 차이가 생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4월 말까지는 <더 데빌> 공연과 <록키호러쇼> 연습을 함께 진행할 텐데, 몸도 만들어야 하고 꽤 힘들겠는데요(웃음).
“성대관리도 하고 있습니다(웃음). X-화이트에게서 거친 소리가 나오면 안 되잖아요. 항상 맑고 청아한 음색이 나오도록 매일 가습기를 틀어놓고 잡니다. 그런데 <더 데빌>은 공연할수록 재밌더라고요. 열려 있는 부분이 많아요. 드라마 자체가 선택이라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보니까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제시하는 것이지 답은 없거든요. 그래서 배우 입장에서는 무대에 설 때마다 새로워요. 할 것도, 찾아야 할 것도 너무 많지만 그만큼 공부도 많이 됐어요.”
초긍정 배우답게 모든 것에 정말 긍정적이네요.
“저도 긍정적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웃음). 노력하는 거죠. 사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전까지는 무대에 서고 싶은데 오디션 볼 때마다 떨어지고. 그래서 관둘까도 생각했어요. 지금은 그 마음이 덜하지만 아예 없지는 않아요. 배우들의 숙명과도 같은 고민인데 당장 내일을 모르잖아요. 모든 배우들이 마찬가지일 거예요. 늘 선택을 받아야 하고, 관객들에게 또 한 번 평가받아야 하는. 그야말로 상품이잖아요. 그래서 한 회 한 회 정말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하려면 행복해야 하잖아요. 행복하려면 팀워크가 좋아야 하고요. 사실 공연은 시간이 지나면 실수나 평가보다는 ‘그때 정말 즐거웠다, 행복했다, 힘들었다’ 등의 기억만 남더라고요.”
조형균 씨의 파격적인 변신을 기대하고 있을 관객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파격적일지 혐오스러울지 걱정인데(웃음), 영화를 보면 브래드와 자넷이 속옷만 입고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10분 정도 지나니까 무뎌지더라고요. 무언가를 드러내기까지가 어색하지 한번 드러내면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그리고 그 안을 보면 이유가 있어요. 프랑큰 퍼터에게도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고. 그래서 여러 장치가 파격적일 수는 있지만, 진지함에서 나오는 B급이 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관객에게도 공연은 ‘재밌었다, 신선했다, 감동적이었다, 지루했다’ 등 몇 개의 단어로 기억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 2008년 뮤지컬 <록키호러쇼>를 봤던 기자에게는 솔직히 ‘신선함’, ‘독특함’보다는 ‘불편함’, ‘어색함’이라는 단어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소재나 장치의 불편함은 아니었을 겁니다. 무언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제작진과 배우, 또 받아들일 수 있는 관객, 그러니까 무대를 둘러싼 당시의 문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요. 그래서 이번 무대가 더욱 궁금합니다. 얼추 10년이 지났고, 대학로의 문화는 또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조형균 씨의 변신과 활약도 기대되고요!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