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권력에 으르렁대자
『으르렁 아빠』 편집 후기
‘사람이든 책이든 사랑은 어렵구나.’ 그런데 왜일까? 이 책은 보통 한 권 마감할 때 느낌과 사뭇 달랐다.
젊은 날, '무슨 일을 하면서 살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덜컥 발을 들인 판이 출판! 지금은 출판 앞에 부사어 '하필'을 꼭 붙여야 하고말고. 심지어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내가 감히 '책'을 만든다는 것이 그때는 뿌듯하고 좋았다. 그 초짜 시절 우연한 술자리에서 대형 출판사 중간급 편집자가 대뜸 물었다. “그림책, 한 두 달이면 만들지?” 몇 년 동안 그림책을 만든, 그것도 한두 달은커녕 몇 년 넘게 잡고 있어서 주간님께 만날 채찍질을... 아니 채근 당하던 터라 대뜸 답했다. “만드신 소설은 OOO 작가님 글이라 만지지도 못하고 편하셨죠?” 취했던 건지 맞았던 건지 그 다음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15년 가까이 그림책을 만들면서 한 번도 쉽다고 생각한 적 없다. 그리고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지 못하는 건 더 괴로웠다. 2009년 봄, 국제 도서전을 앞두고 에이전시에서 수십 통 씩보낸 라이츠 가이드를 보다가 눈에 띄는 표지를 보았다.
빨강색과 검정의 대비가 딱 봐도 구소련 포스터스러운 폭력성이 느껴진, 제목조차 『TERRIBLE』인 그림책. PDF에 불어를 한 줄 한 줄 긁어서 번역기에 때려 박고 대충 살펴보니 무섭게 보이려고 온통 검은색 옷과 장갑, 장화를 신는 한 늑대가 이야기였다. 검은 장갑과 장화 속에는 알록달록 노랑, 파랑, 녹색, 분홍색 손과 발이 숨어 있었는데 결국에는 가족의 사랑, 특히 아이들의 용기로 따뜻한 가족의 모습을 되찾으며 해피엔딩이니 어찌 소개하고 싶지 않으랴! ‘이래서 표지가 강렬하구나!’, ‘아~ 이래서 제목은 노랗고, 작가 표기는 녹색과 파랑이고 출판사는 분홍으로 했구나!’ 난 마치 난제를 푼 양 의기양양하게 편집 회의에서 논의하며 계약을 어필했다. 그때 결정권자는 말했다. “야, 이런 책 안 팔려!”. 왠지 억울했지만 “네.” 하고 말았었고.
몇 년 지나 발행인으로서 2015년에 에이전시에 들렀다가 그 책을 다시 만났다. 사랑했지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소싯적 짝사랑을 만난 기분이랄까? 반갑고 미안하고 ‘이제라도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결심하고 그 자리에서 계약했다. 맥락을 반영해 제목을 정하고 원서 제호 디자인도 마음에 들지 않아 며칠 고민 끝에 직접 만들었다.
인쇄 감리만 8시간 끝에 오매불망 성책을 기다리는 내게 제본소에서 청천벽력 같은 전화가 왔다. “삼방제단 하는데 가로든 세로든 한 쪽 최대사이즈가 265mm라 안 되겠는데요.” 이 책은 판형도 으르렁한 280x280mm이니 위, 옆, 아래 돌려가며 일일이 자르더라도 해 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든 책이든 사랑은 어렵구나.’ 그런데 왜일까? 이 책은 보통 한 권 마감할 때 느낌과 사뭇 달랐다. 편집하는 동안 광화문 몇 차례 간 것 밖에 없는데... 그렇다. 오방낭처럼 알록달록하지만 겉으로는 검은 억압과 폭력으로 국민을 억누른 권력자들이 이 책에 검은 늑대와 오버랩 되어 만드는 내내 열불이 났던 것이다.
1961년 5월 16일이 연상되는 51.6%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된 순간부터 모든 게 의혹투성이였던, 그리고 되돌아보면 ‘그랬던 거네.’ 싶은 일들로 관철된 4년 동안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담배, 소주, 주민세, 기름 값 인상 등 권력과 거리가 먼 국민에게 불합리한 정책들에 불만을 품었던 우리는 왜 권력자의 검은색 장갑과 장화를 왜 벗기려 하지 않았을까?
이 책에서 아이들이 무서운 아빠의 검은 옷을 어느 날 문득 벗겨야겠다고 생각했을 리 없다. "아빠는 왜 검은 옷을 벗지 않지?"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용기 낸 것이리라! 어른에 비해 힘이 약한 아이들이지만 나름의 판단과 지성이 있고 거기에 특유의 순수함이 더해지면, 반복적인 일상에 찌들어 삶의 가치에 무신경해진 어른보다 훨씬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작금의 권력자들이 지금이라도 검은 늑대처럼 눈물을 흘리며 뉘우치면 좋겠다. 우리는 가족이 아니기에 절대 책에서처럼 따뜻하게 안아 줄 수는 없겠지만. 끝으로 아이도 어른도 부조리하고 억압된 모든 것에 으르렁댈 수 있기를 바라며, “이런 책 안 팔려.”라는 말에 대해 반박할 수 없어 슬픈 편집자 후기를 마친다.
그램책공작소에서 공작소장으로 일한다. 물론 책을 만든다.
<알랭 세르> 글/<브뤼노 하이츠> 그림/<이하나> 역13,500원(10% + 5%)
모두에게 무섭게 보이고 싶은 검은 늑대 항상 으르렁대는 검은 늑대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를 무서워했어요. 편지를 전해 주는 우체부 늑대, 아픈 곳을 치료하는 의사 늑대, 용감한 군인 늑대도 두려움에 떨었지요. 무시무시한 숲 속 어둠의 괴물들조차 검은 늑대를 무서워했습니다. 심지어 가족인 아내와 사랑스러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