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더 크게 꿈꾸고 소리쳐봐!– 뮤지컬 <인 더 하이츠>
폭발하는 리듬, 심장이 뛰는 무대!
어른이 된다는 건 때론 무언가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고 때론 원치 않는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그 과정 속에서 성장통을 겪으며 네 친구는 조금씩 조금씩 각자의 삶을 그려간다.
요즘 TV를 틀면 힙합과 관련된 프로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쇼 미더 머니, 언프리티 랩스타, 힙합의 민족 등. 대중적인 인지도와 사랑을 받는 힙합 뮤지션 역시 많아졌다. 음악 차트에서 힙합 음악은 늘 상위권을 차지하고, 요즘 유행하는 힙합 음악을 모른다면 다른 이와의 대화가 매끄럽지 않을 정도다. 근래 몇 년 새 힙합은 정말 말 그대로 '대세'가 됐다. 뮤지컬 <인 더 하이츠>는 그 힙합이라는 거대한 바람을 뮤지컬에 녹여낸 작품이다.
주인공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워싱턴으로 이민 온 라틴계 청년 우스나비. 워싱턴 하이츠에서 작은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우스나비는 힘들고 고달픈 하루 하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열혈청년이다. 그가 사는 워싱턴 하이츠에는 우스나비처럼 가난한 이민자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모여 살고 있다. 물론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미용사, 택시 회사 직원, 신문배달원 등의 일을 하며 하루 벌이를 하는 그들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그러나 우울하고 무거울 것 같기만 한 이 동네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뉴욕의 라틴 할렘에 사는 이민자들은, 삶의 애환을 라틴 리듬과 힙합 위에 유쾌하고 흥겹게 풀어낸다. 고향이 그리울 때도, 장사가 잘 되지 않을 때도, 거대한 현실의 벽에 부딪혔을 때도 그들은 어둡고 침울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더 밝고 크게 웃으며 그런 일쯤은 다시 이겨 낼 수 있다는 듯 춤추고 노래한다. 그들의 지나친 긍정 에너지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하는 그들에게선, 어떻게든 희망적으로 고통을 이겨내려는 진심이 느껴진다.
뮤지컬 <인 더 하이츠>는 2008년 브로드웨이에서 첫 공연을 한 뒤 토니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 등을 받으며 큰 인기를 얻었다. 한국에서는 2015년 초연 이후 일본 투어를 거쳐 올해 다시 관객 앞에 찾아왔다. 인기 아이돌의 출연, 탄탄한 군무, 라틴과 힙합을 아우르는 다양한 음악 등 화려한 볼거리를 앞세워 관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장장 3시간에 걸쳐 배우들의 연기와 춤, 노래가 쉬지 않고 이어진다. 특히 앙상블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어떤 장면에서건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려준다. 눈을 즐겁게 해주는 수 많은 볼거리 덕분에, <인 더 하이츠>는 부담 없이 가볍게 즐기기에 딱 좋은, 오락 뮤지컬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작품이다.
허나 작품이 보여주는 메시지가 다소 빈약하다는 점은 아쉽게 다가온다. 각 인물들이 지닌 내면의 고민이나 상처를 함께 들여다볼 시간도 없이 이어지는 음악은 종종 극의 몰입을 방해하고, 흐름을 부자연스럽게 만든다.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하나하나 더 돋보이게 만들어 내지 못하는 전개도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주인공 우스나비 역할을 맡은 키의 연기력이나 감정 표현력은 우스나비라는 인물에 대한 공감도를 크게 이끌어 내지 못했다.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우스나비, 베니, 니나, 바네사는 아무 걱정 없던 어린 시절을 지나 생계를 걱정하고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때론 무언가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고, 때론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걸 뜻한다. 그 복잡한 과정 속에서 네 친구는 성장통을 겪으며 조금씩 조금씩 각자의 삶을 그려간다.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들의 꿈을 향해 나아간다. 그 과정을 그리는 방식이 다소 상투적이긴 하나,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나는 그들의 모습 그 자체는 충분히 아름답고 반짝인다.
무대 위에 놓여진 거대한 조지 워싱턴 다리는 화려한 도시의 삶과 빈민들의 삶을 뚜렷하게 규정 짓지만, 그들의 꿈 마저 규정짓진 못한다. 누구보다 큰 꿈과 희망을 안고 사는 <인 더 하이츠>의 인물들은 내달 12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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