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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 작가가 천재가 아닌 이상 쓰기 어려운 소설

『라면의 황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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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일기를 철저히 후회한다. 찾아보니 『라면의 황제』가 내 책보다 훨씬 많이 팔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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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4.


김희선의 『라면의 황제』를 읽었다.
희극의 기본요소인 ‘의외성’과 ‘이율배반성’이 돋보였다.
본래 희극은 진지할 듯 전개되다가 갑자기 다른 식으로 미끄러지거나, 박식한 것과 무식한 것, 세련된 것과 촌스러운 것, 진중한 것과 가벼운 것이 능청스레 결합될 때, 매력을 발휘한다. 소설의 경우, 그 기저에 호기심을 유발하는 서사가 깔리고, 그 서사가 예측할 수 없는 문장으로 전개되면 되는 것이다(물론 이런 문장은 대개 장문이다. 이 소설 또한 그러하다).
기본기에 굉장히 훌륭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 말에 나온 『라면의 황제』가 이 작가의 첫 소설집이었다. 어느덧 2년이 흘러가고 있다. 약사인 그녀가 부디, 꾸준히 소설을 써주길 바란다. 사람들은 도대체 이런 책을 안 사고 뭐 하는지 모르겠다.

 

 
9. 5.


어제의 일기를 철저히 후회한다.
찾아보니 『라면의 황제』가 내 책보다 훨씬 많이 팔린 것 같다.
판매뿐만이 아니다. 서평도 2016년 9월 5일 현재 기준으로 53개나 달려있다.
2014년 12월에 출간된 이 책에는 53편의 리뷰가 달린 반면, 이보다 석 달 앞서 출간되어 오늘부로 출판 2주년을 맞이한 비운의 역작 『풍의 역사』에는 2년간 총 20편의 리뷰가 실렸다.
나보다 두 배 이상의 리뷰를 자랑하는 그녀가 부럽다.
실은, 몇 년 전쯤에 - 아마 4년 전인 것 같다. - 한 출판사가 마련한 술자리에서 그녀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나는 다른 출판사의 신인상을 기세 좋게 받고, 이런 저런 문예지에 소설도 왕성하게 발표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없게도 팬 카페 같은 것도 생겨있던 터에 (혼자서) 주인공이라 생각하고 앉아서, 대화의 주역으로 (착각하고) 왕성하게 이런저런 문학적 소견을 잔뜩 늘어놓았는데, 그때 묵묵히 가장자리에서 기네스를 홀짝이며 앉아있던 작가가 바로 김희선 작가다. 아마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저런 말 많은 녀석들이 책을 내면 독자들이 외면한다고.’
당시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녀가 부럽다.
내 비운의 소설 『풍의 역사』와 불운의 소설 『쿨한 여자』와 역운의 에세이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까지 모두 동원해 리뷰를 더하면, 『라면의 황제』보다 리뷰가 하나 더 많다.
아, 지난 4년간 나는 무엇을 한 것인가.
한 번 더 『라면의 황제』를 뒤적거리며, ‘절도할 거리’를 찾아봐야겠다.

 


9. 7.

 
부러운 김희선 작가는 이중 대사를 쓴다.
진행 중인 대사에 부가 설명이 필요한 어떤 단어가 등장하면 그 설명을 다른 대사나 지문으로 처리하지 않고, 같은 대사 중에 괄호를 써서 그대로 진행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그때, 노벨문학상을 주관하는 한림원장이 말했다.
 “이번에 믿기 어려운 소설이 나왔더군요.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이라니! 이 소설은 엽편소설(한 편의 소설이 나뭇잎 한 장에 쓰일 만큼 짧다는 뜻으로, 나뭇잎 ‘옆’자를 써서 ‘엽편 소설’이라고 하죠. 손바닥 안에 쓸 만큼 짧다 하여, 손바닥 ‘장(掌)’자를 쓴 ‘장편소설’이라고도 합니다만, 이는 본래의 장편소설(長篇小說)과 헷갈리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 사기꾼들이 채택하는 표현입니다. 긴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한 권이라도 더 팔아먹으려는 꼼수죠. 그래서 초단편이나, 엽편 소설이 정직한 표현입니다.) 마흔 두 편이 각각 독립적으로 펼쳐지는데, 그 이야기들이 유기적인 연계성을 띠면서 이야기가 꼬이고 꼬이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작가가 천재가 아닌 이상 쓰기 어려운 소설인 것이지요.”
김희선 작가의 『라면의 황제』에 대해 쓰려 했는데, 쓰다 보니 내 책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새 책이 나온다. 제목은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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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8.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은 리뷰를 올리기에 좋은 세계 최초의 블로거 친화적인 소설이다. 무슨 말이냐면, 리뷰에 목마른 작가가 과도한 독서의 압박감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을 위해 말도 안 되는 혁명적인 분량, 즉 A4지 1장이라는 시간도 절약되고, 정신 소모도 적은 분량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두꺼운 고전 읽으랴, 맛집 탐방하랴, 패션 상품 착용해보고 후기 올리느라, 항상 시간이 부족한 블로거들이 과도한 취미 생활 와중에도 3분이면 한 편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이 소설은 작가가 한때 국제구호기관에서 3년이나 헌신한 전력이 없었다면 과연 쓸 수 없었을 만큼 배려심으로 점철된 소설인 것이다.
이처럼 이타적이고, 독자 지향적이고, 블로거 중심적인 이 소설에는 과연 리뷰가 50편 이상 달릴 것인가.

 


9. 9.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은 굳이 리뷰를 달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들고 다니며 읽기에도 좋은 소설이다. 256페이지라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놀라우리만치 가볍기 때문이다. 과도한 업무로 지친 직장인, 출산으로 체력이 고갈된 산모, 각종 참고서를 짊어지며 통학하는 수험생, 아니, 그냥 인생의 무게에 짓눌린 모든 현대인들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마치 거위털 베개 같은 소설인 것이다. 아, 오해는 마시라. 물리적 무게는 깃털 같으나, 내용의 무게는 측정불가능하니까 말이다. 

 


9. 10.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은 굳이 읽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책장에 꽂아 놓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소설이다. 왜, 그런 책이 있지 않은가. 『브리태니커』『율리시스』처럼 그저 책장에 있으면, 어쩐지 영혼이 마구 포식한 듯한 기분이 드는 책 말이다. (…부끄럽지만,)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이 바로 그러한 책이다.
오늘 드디어 새 책이 나왔다. 이번에는 과연 리뷰가 몇 개 달릴 것인가. 
그나저나, 이 일기는 『라면의 황제』에 관한 일기인가,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에 대한 일기인가.
어쨌든 부럽다. 김희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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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최민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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