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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과 재혼하는 법 : <부모님과 이혼하는 방법>

가족, 그 지울 수 없는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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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는 ‘누가 보는 사람만 없다면 슬쩍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가족을 정의했다. 가족이란 단어는 묵직한 정서적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이상한 힘이 있다. 흉터처럼 잊고 살지만 지워지지 않고, 삶의 언저리로 밀어내 보아도 어느새 그 구심력으로 생활의 한 가운데로 다시 돌아오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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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건 어쩌면 작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커다란 퍼즐판 같다. 멀리서 떨어져 보면 하나의 그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이는 미세하게 균열이 나 있다. 완성된 그림으로 보이는 가족도 있지만, 아무리 채워보려 해도 어긋난 그림처럼 보이는 가족들도 있다. 어느새 한 조각 한 조각 사라져 결국 어느 빈틈 사이를 채워 넣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케빈 윌슨의 베스트셀러 소설 『펭씨네 가족』을 원작으로 한 영화 <부모님과 이혼하는 방법>은 각자의 퍼즐로 다른 그림을 완성하고 싶어 하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갈등을 그린다. 부모는 자기의 방식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퍼즐을 강요하고, 자식들은 그 한 조각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삶이 예술이어야 하며, 자식들을 그 퍼포먼스의 수단으로 삼는 예술가 부모라는 설정 때문에 처음에는 다소 낯설고 이질적인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하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다툼에는 누구나 공감 가능한 보편성이 담긴다. 서로를 감싸주고 위로해주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아니라, 가장 잔인하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야 마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우리네 가족의 모습과 오히려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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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예술가 부모 밑에서 자라온 애니 펭(니콜 키드먼)과 백스터 펭(제이슨 베이트먼)은 어릴 때부터 각자 아이 A, 아이 B의 역할로 부모의 행위예술에 참여하며 자랐다. 세월이 흘러 배우가 된 애니와 작가가 된 백스터는 부모의 곁을 떠나 살고 있지만, 어릴 시절의 기억은 긴 그림자처럼 그들의 삶에 짙게 드리워 있다. 어려운 순간마다 떠오르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주술처럼 그들의 삶을 지배한다. 퍼포먼스를 하는 부모님과 달리 각각 배우와 작가라는 예술가의 삶을 선택했지만, 혼자 우뚝 서는 법을 알지 못한다. 어느 날 어이없는 사고로 다친 백스터 때문에 흩어진 가족이 다시 모이게 되고 아버지 칼렙 펭(크리스토퍼 워큰)과 엄마 카미유 펭(메리앤 프런켓)은 새로운 가족 퍼포먼스를 기획한다. 하지만 칼렙과 카미유의 퍼포먼스는 실패하고 그들은 갑자기 여행을 떠난다. 애니와 백스터는 경찰을 통해 칼렙과 카미유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들의 차는 피범벅이 되어있고, 경찰은 그들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애니와 백스터는 이들의 실종이 진짜인지, 고도로 계산된 또 다른 퍼포먼스인지 혼란에 빠진다. 그들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부모의 행적을 쫓는다. 

 

<부모님과 이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로 기대할 거리가 많은 영화다. 우선 뛰어난 원작은 물론 배우들의 면면도 믿음직하다. 뛰어난 완성도로 극찬을 받은 케빈 윌슨의 소설 『펭씨네 가족』을 읽은 니콜 키드먼은 그 내용에 빠져 판권을 구매하고 주연은 물론 제작에도 나섰다. 40대 이상이라면 친숙한 1980년대 인기 미드 <초원의 집>의 아역에서 출발, 최근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로 이름을 알린 제이슨 베이트먼은 주인공 백스터의 역할은 물론, 작품의 연출을 맡았다. 2013년 <배드 워즈> 이후 두 번째 연출작임에도 이야기를 아우르며 갈등을 쌓아가는 능력이 꽤 안정적이다. 게다가 제이슨 베이트먼이 연출과 함께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것은 꽤 효과적이다. 온화한 엄마, 책임감 강한 아빠,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착한 아이들이 어우러져 가족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주장했던 <초원의 집> 속 어린이와 부모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현재의 제이슨 베이트먼의 모습이 겹치면서 묘한 균열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반의 이미지 때문에 이야기는 더욱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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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이혼하는 방법>은 가족의 비극과 그 파국을 담고 있지만, 흔히 기대하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결말로 치닫는다. 파탄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시작을 향하는 결말을 통해 다 안다고 믿는 가족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알고 사는지 관객들에게 되묻는다.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숨 쉬고 있고,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잘 안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다른 길 위에서 각자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과 이혼하는 방법>은 결국 온전한 내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 자신과 만나야 한다는 것과 그 길을 찾는 것은 오직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읊조린다. 괴짜가족의 이야기가 부모의 실종으로 인해 미스터리로 빠지는 순간, 영화는 거대한 상징으로 보편적 삶을 은유하며 더욱 깊어진다.
 
부모가 끝내 살아있다고 믿고 싶은 애니와 살해당했다고 믿고 싶은 백스터는 각자의 믿음이 향하는 의미를 공유하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한다. 이처럼 부모의 실종사건 혹은 심정적 죽음은 부모를 딛고 일어서야 하는 자식들이 극복해야하는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부모의 실종 혹은 사망이 직접적인 것이건 심정적인 것이건, 스스로의 마음에서 질긴 인연을 끊어내고서야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 영화 속 펭씨의 부모와 자식들은 결국 파국에 이르러서도 어긋난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다. 하지만 펭씨네 남매는 서로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대신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방법을 배운다. 틀린 것을 알면서도 굽힐 줄 모르는 헛된 자존심과 끝내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은 복수심에서 벗어나는 순간 새로운 길 위에 선 나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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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는 ‘누가 보는 사람만 없다면 슬쩍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가족을 정의했다. 가족이란 단어는 묵직한 정서적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이상한 힘이 있다. 흉터처럼 잊고 살지만 지워지지 않고, 삶의 언저리로 밀어내 보아도 어느새 그 구심력으로 생활의 한 가운데로 다시 돌아오고야 만다. 제이슨 감독은 <부모님과 이혼하는 방법>을 통해 애먼 가족의 화해를 내세우거나 서둘러 갈등을 봉합하지 않고, 주인공의 미래를 방치하듯 툭 던진다. 혼자 앞서 나가라고 등을 떠밀기 보다는, 혼자 걸어갈 수 있다고 살포시 손을 잡아준다. 하지만 강한 어조의 충고나 파국을 통한 카타르시스, 거짓말인줄 알지만 달짝지근하고 강한 감미료 같은 위로를 느끼고 싶은 관객들에게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아쉽다면 케빈 윌슨의 원작소설 『펭씨네 가족』을 통해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파보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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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펭씨네 가족

<케빈 윌슨> 저/<오세원> 역12,600원(10% + 5%)

“예술? 아름다움? 다 필요 없어, 우린 그냥 엄마 아빠의 아들딸이고 싶다고!” 「커쿠스리뷰」 「북리스트」 선정 ‘2011년 최고의 소설’ Top 10 아마존·반즈앤노블 선정 ‘2011년 최고의 책’ 2011년 미국 뉴욕 도서전에서 33세의 젊은 신예 작가 케빈 윌슨의 첫 장편소설《펭씨네 가족》의 원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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