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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문장들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이 책을 들고 어디라도 가고 싶습니다.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누군가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이 곁에 없더라도 쓸쓸하지 않을 겁니다. 이 책이 속마음을 알아봐주었으니까요.
“사랑이 없으면 사는 게 얼마나 밋밋하겠어요? 사랑은 우릴 흥분시키고 즐겁게 해주죠. 사랑을 하면 삶은 모험의 연속이 되고, 만남은 순간순간 아찔한 경이가 된답니다. 물론 늘 그런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전 사랑이 현대생활의 가장 큰 불행, 즉 권태로부터 우릴 지켜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은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모험이지요. 우릴 늘 젊게 만들어주는 사랑만세예요.”
안녕하세요, 시인이자 여행작가 그리고 사진가 최갑수 작가님의 책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를 만든 위즈덤하우스 편집부 최연진입니다.
앞서 읽어드린 글은 프랑수아 를로르가 쓴 『꾸뻬 씨의 사랑 여행』의 한 구절입니다.
이번에는 ‘사랑’ 자리에 ‘여행’을 넣어 읽어볼까요.
“여행이 없으면 사는 게 얼마나 밋밋하겠어요? 여행은 우릴 흥분시키고 즐겁게 해주죠. 여행을 하면 삶은 모험의 연속이 되고, 만남은 순간순간 아찔한 경이가 된답니다. 물론 늘 그런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전 여행이 현대생활의 가장 큰 불행, 즉 권태로부터 우릴 지켜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여행은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모험이지요. 우릴 늘 젊게 만들어주는 여행만세예요.”
어떠세요? 이렇게 읽어보니, 사랑과 여행은 무척 닮았습니다.
작가는 우리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사랑과 여행이 어디, 마냥 좋기만 하던가요.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는 세 번 감상하게 되는 책입니다.
첫 번째는 여행하는 문장들. 최갑수 작가님은 여행을 떠나지 않을 때면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지내신다고 해요. 그렇게 읽어온 책과 영화와 음악에서 자신의 내면을 깨운 문장들을 모았습니다. 시인의 가슴으로 밑줄을 그은 문장에는 사랑에 관한 글도 헤어짐에 관한 글도 슬픔과 고독에 관한 글도 있습니다. 이는 모두 생과 사랑과 여행에 관한 문장이었다,라고 요약합니다.
두 번째는, 고심하여 고른 문장에 더한 최갑수 작가님의 글입니다. 쉽게 읽히면서도 숨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속 깊은 사유는 읽는 이의 가슴에 스며들어 오래오래 남습니다. 삶을 함부로 긍정하지만은 않는, 고독의 시간을 지나온 듯한 시인의 글은 담담해서 더 가슴이 아립니다. 울컥 건드리는 데가 있는데, 어디서 그랬는지는, 비밀입니다. 여러분도 책을 읽으면서 각자의 구절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세 번째는, 사진입니다. 저 또한 최갑수 작가님의 사진을 애정하는 팬입니다. 좋은 사진을 ‘결정적 순간’이라고도 하지요. 저는 작가님의 사진을 보면 ‘결정적 감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순간의 사진에 어쩌면 이토록 많은 감정과 여운이 담겨 있는지. 그래서 사진은 문장과도 닮아 있고, 너머에 수많은 ‘우리의’ 이야기가 흐릅니다.
책을 덮고 나면, 세 단계의 감상이 절묘하게 맞물립니다. 속내를 들킨 듯, 깊은 밤 숨죽여 울던 시간이나, 누군가의 마음을 가늠해보던 시간, 더 이전, 우리로 함께이던 계절이 아스라이 떠오르고요. 가슴에 바람이 싸~하게 부는 기분입니다. 겨울에 잘 어울리지만, 차지만은 않습니다. ‘빛은 틈’으로 들어옴을 알게 된 것처럼 ‘오늘은 사랑하기 좋은 날씨’라며, 고달픈 삶일지라도 사랑과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맺음하거든요.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이 책을 들고 어디라도 가고 싶습니다.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누군가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이 곁에 없더라도 쓸쓸하지 않을 겁니다. 이 책이 속마음을 알아봐주었으니까요. 그래도 괜찮다고, 당신의 마음과 사랑과 생을 조금씩 회복하며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주는 듯합니다.
1927년,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는 미국 미니멀리즘 작가 칼 앤드리의 조각품 <등가VIII>을 구입했다. 1966년 제작한 이 작품은 총 120개의 벽돌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의 지시에 따라 벽돌을 두 층으로 쌓아 올린 직육면체 모양의 작품이다. 작품이 전시된 1970년대 중반에는 많은 논란이 일었다.
옅은 색 벽돌에서 특별한 점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단돈 몇 푼이면 아무나 사들일 수 있는 벽돌이었지만, 테이트 갤러리는 이 작품을 구입하느라 2,000파운드가 넘는 거금을 지불했다. 영국 언론들은 일제히 혼란에 빠졌다. "벽돌 무더기를 사느라 나랏돈을 낭비하다니!" 언론들은 목청을 높였다. 식자층을 겨냥한 예술 전문 월간지 <벌링턴 매거진>조차 반문했다. "테이트 갤러리는 제정신인가?" 다른 매체에서는 테이트 갤러리가 어째서 소중한 국민의 돈을 "아무 벽돌공이나 만들 수 있을 법한" 작품을 사들이는 데에 쏟아부었는지 의문을 나타냈다.
그로부터 약 30년 뒤, 테이트 갤러리는 또다시 범상치 않은 작품을 사들였다. 이번에 선택한 것은 줄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니, 이건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인간을 구입하는 것은 불법이므로 행렬을 사들였다는 편이 맞겠다. 슬로바키아 출신 작가 로만 온다크는 배우들을 고용해서 자신이 써놓은 지침에 따라 행렬을 이루어 행위 예술을 하게끔 했다. 지시 내용에 따르면 배우들은 전시장 밖이나 안에서 줄을 서는 척해야 했다. 줄지어 서 있는, 업계 용어로 말하면 '설치된' 이들은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 양 기다리고 있었다. 행렬을 보고 호기심이 동한 행인들은 줄에 합류한다. 그러지 않더라도 줄 서 있는 사람들을 지나치면서 의아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그들이 뭘 기다리는지 궁금해한다.
- 『발칙한 현대미술사』 (윌 곰퍼츠/알에이치코리아)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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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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