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윤일상의 가요 Talk 10
영혼을 노래하는 가수 김범수
1편 김범수
‘윤일상의 가요 Talk 10'은 명작곡가 윤일상과 명가수 10명의 인연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첫 번째 편은 ’보고싶다‘의 김범수입니다.
수없이 많은 가수들과 작업을 했고 함께한 모든 가수가 소중하지만 유독 특별한 인연의 가수들이 있다. 그 특별함은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반복되는 운명적인 만남으로 만들어진 깊은 인연일 것이다. 앞으로 써 내려갈 본 칼럼은 나와 함께했던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그 중에 빼 놓을 수 없는 가수가 바로 ‘김범수’다.
범수와 작업한 곡들 중 잘 알려진 ‘하루’, ‘보고싶다’, ‘끝사랑’, ‘나타나’, 그리고 최근 발표된 ‘눈물나는 내 사랑’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곡에서 함께 호흡했다. (일례로 JTBC의 히든싱어, 김범수 편에서 부른 모든 곡이 내 곡이기도 했다.) 특히 ‘보고싶다’ 음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30여 개의 데모곡을 제작했을 만큼 열정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작곡가 윤일상과 ‘비쥬얼 대세’ 가수 김범수는 어떻게 이런 오랜 음악적 인연이 가능했을까?
Chapter 1. 강렬한 첫 인상
범수와의 만남은 그의 1집 <약속>을 발표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너도 들어서 알겠지만, 노래는 정말 잘해.”
진지한 표정으로 제작자였던 민혁이 형이 얘기했다.
“외모는 어때요?”
그냥 호기심에 물어본 나의 물음에 다시한번 민혁이 형이 얘기했다.
“노래 잘해. 일단 한번 만나봐.”
당시 청담동 신나라 레코드건물 2-3층이 범수의 기획사였고 그 곳에 있는 조그만한 녹음실에서 범수를 처음 만나기로 했다. 조금 일찍 도착해 기다리고 있으니 매니저처럼 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다. 꾸벅 인사를 하기에 그냥 인사만 받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민혁이형과 범수가 오기를 기다렸다. 조금 뒤 도착한 민혁이형.
“어? 같이 있었네? 서로 인사 안했어?”
탈색한 머리, 깡마른 체구, 어찌보면 너무나 도전적여 보였던 범수의 첫인상은 강렬함 그것을 넘어섰다. 멋쩍은 듯 다시 한 번 범수가 인사를 해왔다.
“(힘찬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아…네가 범수구나…그래, 일단 노래한번 들어보자.”
그리고는 바로 부스에 들어가서 평소 연습하던 노래와 앨범에 수록된 노래를 쉼없이 불렀다. 그때까지의 목소리는 예상했던 대로 1집 음반을 위해 당시 작곡가로부터 훈련된 톤과 감성이었고, 나로서는 어색하고 와닿지 않았다. 나빠서가 아니라 진짜를 부른다는 느낌이 제대로 들지 않아서였다.
몇 곡을 부르고 나온 범수에게 지금 부른 노래 말고 평소에 좋아하는 노래가 없냐고 물어봤다. 잠시 머뭇거리며 생각하더니 연습곡도, 앨범에 실린 곡도 아닌 자기가 진짜 빠져서 즐기며 부르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래를 듣고서야 가슴 한 귀퉁이에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이 아이가 진짜 보컬리스트가 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구나. 이 아이는 가지고 있구나, 진짜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그렇게 1집 음반이 발매되고 2집 음반에 들어가기 전 ‘하루’라는 곡을 썼고 이 곡을 제대로 표현하게 하기위해 6개월이라는 녹음시간이 소요되었다. 연애 경험도 풍부하지 않았고 사랑에 대한 상처와 아픔도 없는 아이에게 오직 자신이 가지고 있는 톤과 가슴 속 깊숙이 존재하는 감성, ‘슬픔을 제대로 연기하기’를 가르치기 위해 연습시키고 녹음하고를 반복했다. 호흡 하나, 음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말 그대로 달달 볶았다. 음악을 제 몸보다 사랑하는 그 아이는 불만 한마디 없이 깨우치려 노력했고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하루’가 세상으로 나왔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 사람들에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감성보컬의 대형신인을 알리게 되었다.
Chapter 2. 보고싶다
‘하루’의 성공이 있고 다음 앨범을 준비할 때는 비장을 넘어서서 의무감에 휩싸였다. 소위 말하는 ‘대형가수’를 만들고 싶었다. 심지어 업텝포음악까지도 완벽히 소화할 수 있는 제2의 김건모, 제2의 조용필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 때의 ‘감정 제대로 연기하기’를 넘어선 ‘진짜 감성 가지기’가 필요했다. 그것이 간접 경험이든 아니면 직접 경험이든 길지 않은 시간에 많은 자극과 경험을 주어야했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뮤직비디오, 영화 등을 보여주며 음악 이전에 감성으로 이야기하고 느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곡을 범수를 위해 써 내려갔다. 10곡, 20곡, 범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정이 쌓여가는 동안 나의 곡도 늘어났다.
드디어 제작자와 나, 모두가 만족하는 ‘타이틀곡’이 나왔다. 앞서 ‘하루’라는 곡이 그래도 많이 알려졌기에 그 분위기를 이어 마이너 곡을 만들었고 후렴구의 임펙트도 상당히 강한 곡이었다. 데모는 보통 내가 부르는데 데모를 듣고 울음이 난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가사가 나오고 드디어 녹음……
정말 단 한 줄도 마음이 들지 않았다.
힘들어했고 힘들게 들렸다. 임펙트가 센 그 곡은 범수 역시 부담감으로 더 세게 불러댔고 너무 세게 쥐면 결국 부러지듯, 듣기에도 힘든 곡이 되어버렸다. 결국엔 목이 완전히 가버려 몇 달을 노래 한마디도 부를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는 오랜 시간이 흘렀다.
목소리가 안 나와서 노래를 할 수가 없었기에 그 시간 동안 다시 감성 트레이닝에 집중했다. 그 즈음 내 솔로앨범 Soulist를 작업 중이었는데 내가 부를 생각으로 메이져곡 하나를 만들었다. 그런데 만들고 나니 왠지 범수에게 더 어울리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범수와 제작자형이 있을 때 혼자 피아노를 치며 흥얼거렸다. 후렴구에 채 들어서기도 전에 제작자형이 뛰어왔다.
“이 곡 뭐야? 범수줘~ 범수줘~”
작사가 윤사라는 그 노래를 듣는 내내 울면서 가사를 썼다고 한다. 그렇게 ‘보고싶다’의 녹음 준비가 끝났다. 거의 1년을 그렇게 준비작업으로 보냈고 가사와 편곡 작업까지 마친 후 드디어 보컬 녹음날. 범수는 부스에 들어간 후 단 30분만에 녹음을 완성하고 나와서 여느 때와 같이 언제 그런 감성을 표현했냐는듯 씩씩하게 밥을 먹었다.
디렉팅은 내가 ok하지 않으면 끝이 나지 않고 앞서 ‘하루’처럼 6개월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30분만에 완성된 ‘보고싶다’의 보컬녹음은 그동안 우리 모두가 심혈을 기울였던 ‘감성만들기’에 대한 보상같은 느낌이었다. 그 후 ‘천국의 계단’ OST에도 실리게 되면서 ‘보고싶다’는 아직까지 노래방 애창곡 순위 상위에 랭크되는 스테디셀러가 되었고 범수와 나의 대표곡이 된다.
Chapter 3. 끝사랑
범수의 소속사가 바뀌면서 우리가 함께하는 작업도 잠시 끊어지게 된다. 아마도 새로운 색깔을 표현하기 위한 범수만의 노력이 있었으리라. 그러다가 내가 시크릿가든의 OST작업을 하게 되면서 범수에게 딱 맞는 곡이 나왔고 우리는 다시 한번 ‘나타나’로 뭉치게 된다. 드라마의 히트와 더불어 그 곡은 범수의 업템포 히트곡이 된다. 그 여세를 몰아 다음 미니앨범을 준비했다.
범수는 지고지순 순정파였다. 세상물정 모르고 노래밖에 모르는, 그래서 내 핸드폰 범수의 이름은 ‘노래쟁이 김범수’이다. 그런 순정파 순수남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제 ‘이별’이 찾아왔다. 그 풀 스토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나에겐 당시 범수의 감정이 어떤지 가슴으로 공감해 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곡을 만들었고, 범수의 이별 이야기를 담아낸 가사를 입혀 바야흐로 리얼 스토리의 작품이 탄생했다.
‘끝사랑’
연습실에서 처음 범수의 목소리로 들은 ‘끝사랑’은 실로 감동 그 자체였다.
‘이제 정말 진짜를 노래하는구나.’
‘영혼을 노래하는 가수’, ‘비쥬얼 최강’ 김범수!
희노애락을 거치면서 발전되어 왔고 앞으로도 발전될, 지면으로 다 이야기 하지 못한 범수와의 스토리는 앞으로 발표될 음악에서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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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겸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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