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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 픽션 사극 <라스트 로얄 패밀리> 선우, 진우
"여섯 배우가 만드는 짱짱한 에너지, 실컷 웃고 가세요!"
단 6명의 배우가 극을 이끌어가는 소박한 뮤지컬입니다. 엄청난 무대연출도, 대단한 스타 배우도 없지만 담백하고 새롭다고 할까요?
박선우 : “코미디를 할 때는 기대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의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무대 위 배우들이 의기소침해질 수 있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준비했던 것들을 관객들이 알아주고 많이들 웃어주셔서 기분이 좋았죠.”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떠나간 텅 빈 객석.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열기 때문인지 두 배우의 얼굴은 상기돼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이 뮤지컬 <라스트 로얄 패밀리>의 이틀째 공연. 두 배우에게는 첫 무대였거든요.
박선우 : “배우라면 다 그럴 텐데, 첫공 올라가는 떨림이 있거든요. 설렘 반, 기대 반. 이 공연이 어떻게 비쳐질까, 조금 두렵기도 하고요. 이런 마음으로 무대에 오르는데,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관객들도 많이 좋아해 주시니까 아주 벅찬 느낌이 들죠. 이때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인진우 : “저는 너무 긴장돼서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다리가 덜덜 떨릴 정도였어요. 저녁 공연이 남아서 그런지 아직도 홀가분하지는 않고요. 드러나지는 않지만 저만 아는 실수들이 있잖아요. ‘저녁 공연 때는 더 잘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죠.”
코믹 픽션 사극을 표방한 뮤지컬 <라스트 로얄 패밀리>는 2012년 CJ크리에이티브 마인즈 선정작으로 지난해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 앙코르 최우수 선정작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보통의 사극은 국민적 공감대와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이 작품은 모든 부분에서 틀을 깨는 것이 과제이고 동시에 웃음 포인트입니다.
실제로 조선의 마지막 왕가가 등장하지만, 명성황후는 치맛바람 몰고 다니는 기 센 엄마로, 고종은 그 기에 눌러 사는 불쌍한 중년 아빠로, 순종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가출을 단행하는 청소년으로 그려지는 걸요. 그래서 무대 곳곳에서는 끊임없이 ‘픽션’임을 강조합니다.
박선우 : “뒤죽박죽 섞인 얼렁뚱땅 이야기라고 전제를 깔고 가잖아요. 어떤 얘기든 통용이 되는 거죠. 외국 작품도 좋지만 창작극은 이렇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좋은 것 같아요. 배우로서는 더 생동감이 있고 재밌어요.”
이 작품의 가장 큰 재미 역시 ‘연극적인 상상력’에서 쏟아집니다. 가출한 순종을 찾는 과정에서 내관들은 각종 SNS를 사용하는데, 구한말 SNS가 사용됐다는 상상력이 아니라 지금의 각종 SNS를 한자동음어로 변형한 언어유희의 기발함에 배꼽을 잡게 됩니다. 또 멀티맨 형식으로 꾸며지는 무대에서 배우들은 1인 다역을 소화하는데요. 그 유기적인 움직임이 또 다른 웃음보따리죠. 박선우 씨 역시 극중에서 해설자, 폴 내관 등으로, 인진우 씨는 순종, 내관 등으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박선우 : “배우들이 다들 참 잘하고 호흡도 잘 맞아서 정말 재밌게 연습했어요. 순발력도 좋고, 애드리브도 어찌나 잘 하는지 대본이 상당히 바뀌었죠. 저 같은 경우는 극을 끌어가야 하는 해설자니까, 이런 작품일수록 중심을 잘 잡아야겠더라고요. 그런데 저 아까 등장해야 할 장면에 못 나왔어요. 애드리브로 무마했는데, 너무 힘든 것 같아요. 무대에서 이렇게 땀나는 역할 안 했으면 좋겠어요(웃음).”
인진우 :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질풍노도의 순종이라고 돼 있었는데, 제가 하니까 사춘기적인 모습은 안 보이고, 너무 슬프고 감성적인 모습만 보인다고 하셔서... (박선우 : 슬픈 성대라고 할까요(웃음)?) 제 장점이자 단점이 감성적인 보이스라서 밝은 노래를 불러도 슬프게 들리더라고요(웃음). 어쨌든 지금은 인진우가 입혀진 순종이 된 것 같아요.”
인터뷰 내내 두 배우에게서는 조금 다른 기운이 느껴집니다. 여유와 긴장 정도의 차이라고 할까요? 하긴 지난 1993년 미스터 투 1집 앨범 <하얀 겨울>로 데뷔해 가수에서 배우로 줄곧 무대를 지켜온 박선우 씨와 달리, 인진우 씨는 2009년 뮤지컬 <그리스>로 데뷔한 뒤 군대에 다녀오고 지난해에야 다시 무대를 찾았습니다. <라스트 로얄 패밀리>에 참여하는 배우들 가운데서도 박선우 씨는 최고참 형, 인진우 씨는 막내군요.
인진우 : “처음 형님을 뵈었을 때는 사실 대선배님이라 다가가기가 힘들었는데, 연습 때 그걸 깨주시더라고요. 먼저 다가오셔서 ‘이 부분은 이렇게 해보자’ 얘기도 해주시고, 또 제가 도움을 요청하면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더 알려주시더라고요. 무대에서는 베테랑 배우답게 딱 잡고 가는 게 있으시고 형님만의 노하우도 있으니까, 형님이 연기할 때면 저는 계속 보고 있어요. 배울 게 무척 많습니다.”
박선우 : “진우는 굉장히 성실하고 노래도 참 잘 부르고 목소리도 좋아요. 꾸준히 노력한다면 저만큼은 못 되더라도(웃음),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인진우 씨 나이 때 박선우 씨는 한창 가수로 활동했습니다. 겨울이면 더 생각나는 그 노래, 미스터 투의 ‘하얀 겨울’. 게다가 요즘 가요계에 불어 닥친 복고열풍 때문에 ‘왕년의 박선우’ 생각이 많이 날 것 같은데요.
박선우 : “좋았던 기억이지만 이미 지나온 과거이고 가수 활동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이렇게 뮤지컬 배우로 노래하면서 가수로서의 갈증은 푸는 것 같아요. 어쨌든 과거보다는 현재, 또 미래의 박선우가 더 중요하니까요. 배우로서 무대에 설 수 있는 지금이 좋고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하지만 이제 무대에 발을 들인 인진우 씨는 가수에서 배우로, 그래서 뮤지컬은 물론 영화나 드라마 활동까지 하고 있는 박선우 씨가 롤 모델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진우 : “그렇죠, 저는 기회만 된다면 다 해보고 싶죠.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하지만 경험은 해보고 싶어요. 또 뮤지컬 작품 중에서는 우리 공연도 좋지만 한국에 아직 안 들어온 작품, 디즈니 뮤지컬을 정말 해보고 싶어요. <라이온 킹>이나 <타잔> 같은. (굉장히 야생적인 작품을 좋아하시네요?) 그러게요, 성격이랑 안 맞게 그런 작품이 좋더라고요(웃음).”
마지막으로 두 분에게 창작 뮤지컬 <라스트 로얄 패밀리> 자랑을 부탁했습니다.
박선우 : “여섯 명이라는 배우가 무대에서 똘똘 뭉쳐서 에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좋고요. 그 짱짱한 에너지가 관객들을 미소 짓게 하고, 좋은 기운을 얻게 하는 것 같아요. 또 대극장 부럽지 않은 세트도 멋지잖아요. 배우라면 ‘나도 이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고, 관객들에게도 그런 느낌이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인진우 : “처음 리딩할 때 ‘내가 과연 이 작품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연습을 거치고 이렇게 무대에 서니까 지금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함께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 같아요. 일상에 지친 모든 분들이 오셔서 작품에 푹 빠져 실컷 웃으면서 풀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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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