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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좋은 딸이 되고 싶어요

‘엄마에게 나는 한 번도 좋은 딸인 적 없었다…’ 더는 후회하며 살지 않기 위해, 아버지에게 말을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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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급속도로 바뀌는 세상이라도 여전히 그리운 건 그립고, 중요한 건 중요하다. 상식과 원칙이 무너지는 이 시대에 아버지의 자리를 되짚어보고, 우리가 잃어버리거나 되찾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서로를 위해 살고 죽을 때까지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무얼까. 이 책으로 저마다 자신의 죽음, 육체적 한계를 성찰하고, 보다 가치로운 생에 대한 고뇌를 나눌 기회가 되면 좋겠다. 그리하여 사람이 얼마나 커지게 되는가도 느낄 기회가 되면 기쁘겠다. 이 속에서 더없이 강하고 더없이 깊은 사랑을 자신의 가슴속에서 캐낼 수 있기를 바란다.

아침 일찍 휴대폰이 울렸다. 아버지셨다.

“엄마 산소 벌초를 하러 왔어. 장미꽃 심은 걸 옮겨야겠다. 볕이 더 잘 드는 곳으로.”
“네, 주일에 옮길게요. 아버지 넘 수고가 많으세요.”

잠이 덜 깬 채로 통화를 마치면서도 아버지의 부지런함과 푸근한 성품이 그 목소리를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다.

우리 가족은 엄마가 돌아가신 후 이대로 그냥 보내드릴 수가 없었다. 엄마를 위한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의 혼이 화창한 날씨에는 꽃과 함께 축제 기분에 젖어보시게 산소 주위에 꽃과 나무를 심고 있다.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는 엄마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후회를 담아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을 썼다.

책이 세상에 나와 해외에까지 판권이 팔리는 보람을 느끼면서도 가슴 한구석에는 아버지들을 소외시키는 건 아닌지 내 자신에게 거듭 묻곤 했다. 마침 사람들로부터 아빠에 대한 책을 써 달라는 부탁도 많이 받았고, ‘세상의 아빠는 어떻게 살아가실까?’ 안부도 묻고 싶었다. 나는 모녀가장으로서 아빠 엄마 두 역할을 모두 하는 삶을 산다. 그러다 보니 살림보다 더 힘든 게 밥벌이라 생각된다. 그만큼 성실한 가장들의 고단함과 애환이 가슴깊이 와 닿고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다.

아버지는 열심히 온몸 바쳐 가정을 지키고 생계를 위해 평생 일해왔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빠를,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집에 두고 나오면 근심덩어리, 밖에 데리고 나오면 짐덩어리, 집에 혼자 두고 나오면 골칫덩어리, 같이 앉아 있으면 웬수덩어리, 심지어 젖은 낙엽이라고 말한다. 이토록 쓸쓸한 아빠의 또 다른 이름들이 있다니 그저 놀랍고 슬플 뿐이다.

이렇게 유행하는 말과 농담에는 그 시대의 가장 아프거나 서글픈 사회문제와 문화가 녹아 있다. 그것은 아빠가 아내와 자식에게서 너무 멀리 있으며, 아빠에게 속깊은 말을 하지 못하고 산다는 뜻이다.

엄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프고 아름다운 눈물을 남기셨고,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주셨다. 엄마의 괴로움과 고뇌가 나의 내면에까지 깊이 들어와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았을 때는 이미 엄마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었다. 아버지의 고뇌와 꿈을 내 안에까지 스며들어오게 아버지 입장에서 생각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이제 나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홀로 새 삶을 일구며 분투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딸로서 아버지를 돕고 싶다. 그리고 남은 가족이 어떻게 함께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지도 공부해서 알아야 함을 깨달았다. 뭐든 그냥 얻어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 책에 담긴 여러 아버지들의 사연들만 보아도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과는 참 다르다. 아빠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심리적인 접근도 필요했고, 나는 또한 딸만이 아닌 아들의 입장도 돼보아야 했다. 집집마다 다른 아버지들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심되었다. 심지어 포기하고 싶었다.

두어 달은 생각만 하고 다른 일을 하였다. 그러다 우리가 아빠를 이야기할 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문제의식 같은 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정작 필요한 것이, 그저 일상에서 아빠에게 말 한마디 더 걸어보는 작은 노력들은 아닐까.

본격적으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봄날, 정신과 의사인 남동생의 글도 책에 넣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함께 싣기로 했다. 그렇게 정신과 의사로서, 아들로서 바라보는 아빠의 세계를 독자보다 먼저 읽으면서 나는 또 한 번 아빠들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세상의 많은 아들과 아버지와의 까마득히 먼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급속도로 바뀌는 세상이라도 여전히 그리운 건 그립고, 중요한 건 중요하다. 상식과 원칙이 무너지는 이 시대에 아버지의 자리를 되짚어보고, 우리가 잃어버리거나 되찾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서로를 위해 살고 죽을 때까지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무얼까. 이 책으로 저마다 자신의 죽음, 육체적 한계를 성찰하고, 보다 가치로운 생에 대한 고뇌를 나눌 기회가 되면 좋겠다. 그리하여 사람이 얼마나 커지게 되는가도 느낄 기회가 되면 기쁘겠다. 이 속에서 더없이 강하고 더없이 깊은 사랑을 자신의 가슴속에서 캐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을 내기까지 큰 힘이 되어준 아버지, 나의 자매, 남동생 신동환, 그리고 딸 서윤에게 깊은 사랑을 전한다. 그리고 추천의 글을 주신 세 분과 흐름출판 편집부와 보고 싶은 지인들, 사진을 제공해주신 분들, 응원해주시는 팬카페 신사모 식구들, 페이스북 친구들께 감사 인사 올린다.

나는 한 번도 좋은 딸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더는 후회하며 살지 않겠다.

비가 내리고 태풍이 오고 눈이 내려 길과 길이 미끄러워도
아버지와 함께 그리고 가족과 함께 잘 이겨내겠다.
더 늦기 전에 나는 좋은 딸이 되고 싶다.

아빠에게 말을 건다는 건 사랑을 전한다는 뜻이다.

저마다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길 바라고 기다린다.
누구나 똑같다. 그렇게 사랑이 와주길 기다린다.
오늘만큼은 먼저 말을 걸어보자.
아빠에게도 먼저 말을 걸어보자.



아빠도 쉬는 시간이 필요해-아빠와 여행가기

일에 지칠 대로 지치면 몸이 무거워 진다. 이제 쉬라는 신호다. 이럴 때면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 열망이 바람을 잔뜩 불어넣은 풍선처럼 부풀어 터질 듯하다. 내게 여행은 휴식이고, 재충전의 시간이며 잊히지 않는 추억 만들기다.

이번에는 가족여행을 선택했다. 문득 어렸을 때 가족여행을 얼마나 갔었나, 가만가만 헤아려보니 몇 번 안 된다. 문득 초등학교 때 포도원을 찾았던 짧은 여행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런데 그곳에서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다. 아버지 뒷바라지와 생계를 짊어진 가게를 지켜야 해서 쉴 틈이 없으셨다.

그래서 매년 포도 수확 철이 오면 아버지는 들길을 따라 자식들을 데리고 포도원으로 향하셨다. 주인이 포도를 한 광주리 씻어 내오면 사형제는 경쟁을 하듯 포도를 입안에 쏟아 넣었다. 그러다 졸음이 쏟아지면 마룻바닥에 쓰러져 한 숨 자고 일어나 아버지 등에 업혀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그때 잤던 잠은 포도보다 더 달콤했다. 포도를 배불리 먹었던 그때의 추억이 잊지 못할 아름다운 생의 한 장면이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진정한 휴식으로의 여행은 여운과 향기를 길게 남긴다.

나는 주말이면 고향집으로 간다. 아버지 외롭지 않게 해 드리러 가는 내가 오히려 아버지 곁에서 고단한 몸을 푹 쉬곤 했다. 지난 겨울 저렴하게 나온 이탈리아 여행상품을 고르고 있었을 때 마침 아버지께서 관심을 보이셨다.

“또 어딜 가려고?”

문득 성인이 된 후 아버지와 여행을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음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의원직에 계셨을 때 해외출장을 많이 다니셔서 모시고 다닐 생각을 전혀 못했다. 나는 아버지께 여쭈었다.

“아버지도 같이 가시겠어요?”

내 물음에 아버지가 머뭇거리시길래, 나는 얼른 결단을 내렸다. 생계 걱정에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신께서 또 샘물을 채워주실 것을 믿었기에 나는 바로 여행 예약을 서둘렀다. 여행을 떠날 때는 돈보다 결단과 용기가 중요하다. 그렇게 얻은 휴식은 더욱 특별하다. 그리고 또 다른 풍요함을 누릴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

드디어 여행 떠나는 날이었다. 밤 10시 출발인데, 아버지는 오후 4시부터 친구 분과 함께 공항에서 우리를 기다리셨다. 여행가방도 새로 사시고, 여행 전의 설렘을 친구 분과 즐기고 계셨다. 두 분의 환한 모습을 보니 나도 즐거웠다.

여행 가기 싫다고 거절하는 부모님은 보통 자식에게 민폐를 끼칠까 염려해서다. 부모의 속마음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다. 다른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구에게라도 여행은 휴식이고, 다시 열렬히 살고 싶다는 의지다. 그날이 그날인 무미건조한 생활에서 벗어나 뭔가 고여 있는 자신을 쏟아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반드시 쉬어야 한다. 그 휴식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자아를 꿈꾸고 성숙해질 수 있다. 더 높고 힘차게 날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휴식. 그 속에서 비로소 막 구워낸 식빵처럼 말랑말랑하고 감각적인 자신을 만나는데, 애 어른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인간의 소망과 감정은 누구나 비슷하다.

드디어 아버지와 나와 딸, 삼대의 이탈리아 여행이 시작되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 아버지와 함께 떠나는 첫 여행이라 그런지 느낌이 참 신선하고 푸근했다.

이탈리아 여행 일정 중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베네치아였다. 비 내리는 베네치아는 낭만적인 물의 도시의 운치를 더욱 배가시켰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가 된 도시 베로나가 자석처럼 우리를 끌어당겼다. 줄리엣의 집 대문에 매달린 소원을 담은 수많은 자물쇠들이 인상적이었다. 수많은 여행객처럼 우리도 그 앞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오래오래 기억될 토스카나의 중세도시 산 지미냐노에서 꿈결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곳의 작은 이발소 주인의 밝은 미소의 여운은 참 길다. 미소 짓는 사람은 쉽게 잊히질 않는다. 지금 생각해도 흐뭇하다. 모든 도시와 거리들이 마음을 잡아끌었지만 마냥 머물 수는 없었기에, 끌려도 말 한번 붙여보지 못하는 사내처럼, 진한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서곤 했다.

우리는 이탈리아 최고의 경치라는 친퀘테레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한국도 저렇게 집마다 예쁘게 색칠을 하면 좋겠다. 그러면 여행객들도 보면서 감탄할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여행 중에 아버지가 나와 딸아이에게 사준 보라빛 젤라또는 그동안의 고단한 몸을 스르르 녹여줄 만큼 달콤하고 맛있었다.

그리고 친퀘테레역 화장실 문 앞에서 아버지는 우리 뒤로 함께 여행 중인 한국인 고등학생과 부모들이 주욱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더니 “애들이 급하겠네. 먼저들 볼 일 보세요.” 양보를 하시며 맨 뒤로 가서 서신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젠틀함에 놀랐다. 아버지는 진짜 어른이시구나, 감탄하였다. 이것은 지금껏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후 미켈란젤로 언덕에서는 해 지는 피렌체와 카프리 섬의 절경을, 폼페이와 나폴리를 지나 로마로 돌아오는 내내 더없이 큰 생의 열망과 꿈이 푸르러지는 기분을 보드라운 우유병처럼 달게달게 음미했다. 이런 희열은 휴식을 취할 때만이 비로소 가지는 축복이다. 아버지와 내 딸은 어땠을까? 묻지 않아도 내 기분과 다르지 않음을 해맑은 그들의 표정을 통해 나는 알았다.

“네 엄마도 살아있을 때 함께 여행했으면 좋았을 텐데. 여행 한 번 못 시켜주고 미안해서…….”

여행 내내 아버지는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를 그리워하셨다.

“아뇨, 자식들 사는 게 넉넉하지 못해서……. 늘 죄송했죠.”

여행 떠나자고 했을 때 엄마는 이미 깊은 병을 앓고 계셨다. 엄마가 진작에 여행과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면 병도 낫고 더 오래 사셨을 것이다. 좀 더 일찍 엄마를, 엄마의 인생과 꿈과 휴식을 생각했더라면 하는 슬픔이 남아 있다. 엄마 생각은 늘 슬픔에서 멈춰지고 만다.

삼대가 함께한 여행은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다. 누구나 모두 자신의 노력에 따라 부모님과의 관계, 가족 간의 관계가 훨씬 따뜻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여행은 짧아도 그 향기는 평생을 가고, 휴식은 우리 생의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남긴다. 그런 향기를 부모님이 곁에 계실 때 함께 누리기를 바란다.


그냥 보고 싶어서 왔어요-아빠의 일터 찾아가기

내가 아는 A의 아버지는 택시기사였다. 하루 종일 택시를 몰아 손님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셨던 그의 아버지.

어느 봄날 A는 경복궁 근처를 지나다가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전의 모습을 떠올렸다. 햇살이 따사롭게 쏟아지고, 벚꽃이 하얀 솜같이 피어나 더없이 아름다운 날. A의 아버지는 그를 택시에 태우고 서울 곳곳을 다니셨다. 물론 그날 이후에도 가끔씩 아들인 A를 차에 태워 다니셨다. 항상 처음은 강렬해서 더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그때 그는 아버지가 어떻게 일하시는지 알게 되었다.

택시 차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일렁이는 머리칼과 붉은 햇살을 받아 빛나는 아버지의 얼굴이 그날따라 핸섬해 보였다. 일터에서의 아버지와 집에서의 아버지는 달랐다. 일터에서의 아버지는 늠름하고 정중하고, 더 멋있었다. 조금은 낯설면서도 새로웠다. 눈앞으로 그 시절의 풍경들이 지나갔고, 그때 아버지의 멋진 모습이 유난히 또렷이 떠올랐다.

이후 성장하여 대학을 마치고 취직한 후에 A는 아버지를 좀더 이해하게 되었다. 단조로운 일상이 계속 이어져서인지 아버지는 간혹 짜증을 내시곤 했다. 석유가 엎질러진 검은 액체 같은 그것이 권태라고 깨닫고 난 후에 그는 아버지의 짜증을 좀 더 이해하였다. 그것은 인생에서 종종 힘든 권태로움이었음을 알았기에.

특히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후 혼자서 자신을 키운 아버지의 외로움을 A는 뒤늦게 깨달았다. 술도 별다른 취미도 즐기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고 생각하니 순간 가슴이 서늘하도록 아팠다. 아버지를 살게 하고 버티게 한 동력은 오직 하나 있는 자식 A가 잘 자라는 것뿐이었다. A는 아버지를 더 많이 사랑하자고 다짐하였다.

어느 날 B는 무작정 아버지의 일터로 향했다. 점심시간에 맞춰 회사 로비에서 아버지를 찾았다. 마침 직장동료 분들과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아버지를 발견한 후 큰 소리로 불렀다. 그때 뒤를 돌아보시며 깜짝 놀라시던 아버지. 이내 환하게 웃으시며 동료 분들에게 B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내 아들일세.”
“아들이 잘생겼네. 자네 좋겠어. 나는 딸만 셋인데, 아들이 있으니 듬직하겠구먼.”

아버지 친구분의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친구 분들에게 식사하라고 하시고는 회사 밖 식당으로 B를 데려가셨다. 설렁탕 두 그릇을 주문하며 아버지는 그를 물으셨다.

“웬일로 회사까지 찾아왔니?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그냥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왔어요.”

별 싱거운 녀석 다 보겠다고 하실 때의 아버지 얼굴에 스쳐간 환한 미소를 B는 분명히 보았다.

‘그냥 보고 싶어서 왔어요’란 말보다 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아무 욕심 없는 순수한 말. 우리가 점차 잊어가고 있는 향기로운 말.

현대인들은 이유가 있어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바쁘다. 가족 간이라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라 그냥 보고 싶었다는 말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감동은 의외로 작고 일상적인 것에서 피어난다. 무심코 아버지 일터를 찾아가 그냥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해보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일 회사를 다닌다면 점심시간에 맞춰 아버지 일터로 가보는 것도 좋다. 파릇파릇한 4월의 들판을 보는 것 같은 새로운 신선함에 즐거울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일터 앞에서 전화를 거는 것이다.

“아버지, 저 아버지 회사 근처인데요. 점심 같이 먹고 싶어서 왔어요.”




나 이렇게 힘들어-아빠의 속마음에 귀 기울이기

주변을 둘러보고 손잡아주는 연민과 친절함이 아쉬운 시대다. 얼마 전에 자살한 김종학 피디는 드라마계의 아버지였다. 그도 마음 터놓을 사람이 없는 이 시대의 아버지였다. 한 개인의 죽음으로만 치부하기에 그의 자살은 몹시 무겁고 안타깝다. 그가 죽기를 결심하면서까지 하고 싶었던 말들에 귀 기울였다면 죽음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결과를 떠나 그가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횡령이 아니라는 결백 주장은 무엇인지 왜 차분히 경청하지 못했을까. 그는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자, 라는 심정은 아니었을까. 횡령혐의라는 용어 자체가 견디기 힘들었을 테고, 소송은 자존심 강한 사람을 더 죽음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사람보다 돈을 먼저 생각하는 세상 풍토가 달라지지 않는 한 죽음으로 향하는 나약한 절망들이 더 많아질 것 같아 염려된다. 이 세상은 돈이 없어 절망하는 게 아니라, 모래알처럼 부서지는 인간관계, 조금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이기심, 연민과 배려 없음, 고독감 등에 절망하고 죽어간다.

나와 당신의 아버지는 어떤지 안부를 묻고 싶다.
내 아버지는 그래도 말을 하시는 분이라 큰 걱정은 없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버지들이 참 많다.

아버지와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직장에서는 생존 경쟁에, 가정에서는 존재 상실감에 시달리는 가장들은 ‘가장’이라는 이름 뒤로 그들만의 애환과 고뇌를 숨기고 있다. 그 가려진 마음을 위로할 자리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좋은 일만큼이나 힘든 일이 생길 때에도 가까운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 한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 꼭 상대가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나 이렇게 힘들어. 그냥 들어만 줘’, ‘어깨를 좀 빌려줘’, ‘내 손을 잡아줘’ 그저 그런 단순한 심정이다. 들어주고, 얼마나 힘드냐고 조용히 손잡아주고, 바라봐주기만 해도 상대방이 느끼는 삶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진다.

아빠가 속마음 털어놓으실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아빠와 친구가 되어야 한다. 그 이상 가는 아빠의 힐링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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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게 말을 걸다 신현림 저 | MY
나는 엄마에게 한 번도 좋은 딸인 적 없었다”는 신현림의 고백으로 시작한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이 3만 독자와 소통한 데 이어, “하지만 나는 살아계신 나의 아빠에게만은 좋은 딸이고 싶다”는 고백과 함께 《아빠에게 말을 걸다》가 독자를 찾아간다. ‘아버지’의 자리와 존재감을 찾으려는 사회 트렌드가 있다지만, 우리의 접근은 여전히 너무 무겁고 추상적이지 않았을까?! 이 책은 특별히 ‘아버지’가 아닌 ‘아빠’라는 호칭으로 그간 서툴렀던 관계를 밝게 회복하려는 일상적인 시도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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