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이예진의 Stage Story
누군가는 그를 종합예체능인이라 부른다, <구텐버그>의 송용진
이보다 더한 에너자이저는 본적이 없다!
송용진이라는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뮤지컬배우, 가수’라고 나온다. 하지만 그는 가수가 먼저였다. 록밴드 쿠바의 보컬 송용진, 그렇다고 로커로 출발해 뮤지컬 배우로 유명세를 얻으니 다시 홍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송용진이 지은 <구텐버그>의 장르명이다. 작가인 더그와 작곡가인 버드가 자신들의 역작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기 위해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들을 모아놓고 펼치는 1인 10역의 연기, 그 자체가 바로 황당무계 코믹 스토리란 얘기다. 2006 뉴욕뮤지컬페스티벌 최우수 뮤지컬 대본 부문과 독특한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한 것만 봐도 뭔가 수상쩍다. 한국 공연은 전 세계 다섯 번째, 그 무대를 책임지는 건 단 네 남자. 그 가운데 송용진이 있다.
“저는 버드라는 작곡가 역할인데요. 더그와 버드 모두 꿈이 있어요. 둘이 뮤지컬을 만든다는 건데 그게 바로 <구텐버그>라는 대극장 뮤지컬이죠. 사실 좀 덜 떨어진 친구들이에요. 그들이 만든 뮤지컬이 ‘대단히’ 좋지 않거든요. 하지만 둘에게는 그 어떤 작품보다 대단한 작품이죠. ‘지저스, 위키드가 구텐버그보다 못하다’ 이렇게 말해요. 그런데 재미없거든요. 모자람이 있는 친구들이지만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겠다는 꿈을 가지고 물불 안 가리죠.”
버드와 더그에겐 돈이 없다. 그래서 무대를 오를 배우도 구하지 못했다. 그게 바로 두 사람이 20개 넘는 역할을 하는 이유다.
“멀티맨보다 더 분주하죠. 합창까지 모자로 표현해요. 모자 10개를 바꿔 쓰면서 목소리나 안무를 바꿔가면서 연기하거든요. 저는 모자로 바꿔 쓰는 역할을 하면서 버드라는 캐릭터도 연기해야 하는 거고요. 그런데 문제는 버드라는 역할 자체가 작곡가라서 연기를 그리 잘하지 못해요. 버드가 하는 역할들은 그래서 소위 ‘니마이’ 연기를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어설픈 연기를 하기가 더 어렵더라고요. 연기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의 연기를 재미있게 표현해야 하니까요.”
대단치 않은 대극장용 뮤지컬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하겠다는 버드와 더그의 열 가지 어설픈 연기,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안 됐다.
인터미션까지 미장센으로 활용한 영리한 작품 <구텐버그>, 뮤지컬 무대에서 굳은 살 박혀온 송용진에게도 새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싶었죠. 원래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할 땐 까만 커텐 앞에 모자가 있는 테이블 하나, 종이박스 몇 개만 놓고 공연을 해요. 기본 설정이 그래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그 티켓 값에 그런 무대로 공연하면 욕먹죠. 저는 더 빈곤한 무대에서 해야 작품의 매력이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좀 안타깝긴 해요.”
그래서 다른 작품의 소품 등이 설치된 무대에 버드와 더그가 서는 것으로 한국 무대는 좀 ‘화려’해졌다. 송용진의 바람은 그 언젠가 원작에 가깝게 아무것도 없는 작은 소극장의 정말 ‘빈곤한’ 무대에서 버드와 더그의 초라한 ‘대극장 공연’을 펼치고 싶다는 것. 시즌별로 찾아오는 뮤지컬 대열에 선다면 아마 볼 수 있을 송용진의 ‘빈곤한’ <구텐버그>, 기대하시라.
라이센스 작품이지만 기본 대본과 음악 말곤 닮은 점이 별로 없단다. 전형적인 미국식 코미디로는 한국에서 승부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지만 연습 현장에서 속출한 아이디어들로 <구텐버그>는 거의 창작에 가까워졌다.
“연출과 배우가 연습하면서 거의 논쟁에 가까운 의견을 내놓거든요. 그럼 우선 한 번 연기를 해보자, 보고 나서 정하자 하다가 하면서 웃음이 터져요. 그래서 하루 종일 웃다가 가죠.”
기자 : 누가 제일 웃겨요?
송용진 : 상훈이가 제일 웃겨요.
기자 : 그럼 아이디어는 누가 제일 많이 내요?
송용진 : 상훈이가 제일 많이 내요.
물론 당사자가 자신의 씬에서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많이 내지만 뮤지컬계 코믹연기의 달인인 정상훈 덕에 연습현장은 웃음바다라고.
“이번에 <구텐버그>로 입봉한 조연출이 한 말이 있어요. 뮤지컬 <투모로우 모닝>의 스탭들이 그 친구 동기들인데 그 스탭들이 저한테 묻더라고요. <구텐버그>는 연습을 어떻게 하길래 그? 친구가 그렇게 즐겁게 조연출 생활을 하느냐고. 그 친구한테 ‘힘들지?’ 하고 전화했더니 ‘아니, 나는 연습실 가는 게 너무 행복해. 뭐가 힘들어? 나는 앉아서 매일 웃는 거밖에 하는 게 없어.’ 그러더라는 거죠.”
팍팍한 조연출 생활을 웃으며 시작할 수 있는 비결, <구텐버그>의 송용진, 정상훈, 정원영, 장현덕 네 남자의 힘이지 싶다. 그런데 송용진은 바로 그 웃음 때문에 지금 걱정이다.
“진짜 걱정돼요. 제가 가장 걱정되는 사람은 정상훈밖에 없어요. 그래서 매일 얘기해요. ‘너 진짜 무대 위에서 애드리브하면 때릴 거’라고. 애드리브를 누가 하면 받아쳐야 하고 그러다 산으로 가거든요. 그래서 약속까지 받았지만...모르죠. 무대 위에서는 관객들 반응이 없으면 뭐라도 막 서로 하려고 하거든요.”
1열에 계신 분들, 혹시 이 네 남자 중 누군가의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면 다음 애드리브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자.
머리를 곱게 다듬고 와서만은 아닌 듯 보였다. <마마돈크라이> 때보다 훨씬 살이 빠져 보이는 송용진. 작품 준비하는 데 그만큼의 체력소모가 컸던 걸까 싶었다.
“그 때보다 3, 4kg 더 빠졌어요. 일부러 뺀 건 아니었는데 이 공연을 하면 이제 저절로 더 빠질 것 같아요. 콤비로 둘이 쉴 새 없이 얘기하고 연기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제 것만 연기하면 되는 게 아니라 상대 역할의 대사까지 다 외워야 해요. 그래야 템포감이 안 떨어지고 합이 맞거든요.”
운동을 좋아한다는 송용진, <마마 돈 크라이>에서 유독 발걸음이 가벼웠던 이유가 있었다.
“저는 권투를 좋아하고요. 축구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격한 운동을 좋아해서요. 체육관 관장님이 프로 데뷔하자고도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오랫동안 즐기면서 하고 싶거든요. 나이도 많고요. 생활체육인대회에서 40대부 챔피언을 노려보겠다고 말했죠. 요즘은 뮤지컬 때문에 1주일에 2번 정도밖에 못 가요. 못 가면 밤에 로드웍이라도 해요.”
권투생활 3년차, 5전3승2패의 전적, 생활체육인대회에서 우승경력도 가지고 있다. 서핑이 좋아 제주도에 집과 차를 마련해둘까도 생각하는 이 남자, 이쯤 되면 체육인에 가까워보이는데...
“축구를 하러 가면 20대 동생들이 그래요. ‘이런 말해도 될지 모르지만 형 뛰는 거 보면 미친개 같아요.’”
용진 씨, 이 대목에서 기자가 박장대소했던 건 꼭 공감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송용진이라는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뮤지컬배우, 가수’라고 나온다. 하지만 그는 가수가 먼저였다. 록밴드 쿠바의 보컬 송용진, 그렇다고 로커로 출발해 뮤지컬 배우로 유명세를 얻으니 다시 홍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저는 두 가지 일을 같이 하고 있는 거죠. 뮤지컬로 돈을 더 잘 벌고 좀 더 유명한 것뿐이지 두 가지 중에 저울질을 해본 적은 없어요. 뮤지컬은 상업적인 예술이잖아요. 음악에서만큼은 타협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새벽 한시에도 홍대 라이브홀에서 하고 싶은 노래를 하는 것뿐이다. 그게 좋은 관객은 즐기면 그뿐이고.
“제 성향 자체가 메이저가 아니기 때문에 가장 메이저적인 활동이 뮤지컬이거든요. 제가 인디 레이블 내고 음악활동 고집 안 했으면 집 샀어요.”
지금은 그가 직접 제작, 연출, 작곡, 연기를 도맡아 했던 뮤지컬 <노래불러주는 남자>의 넘버들로 음반작업을 진행 중이다. 과거 열악한 지하 연습실에서 음악 하던 남자의 지상 목표는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 그리고 지금은 대형 무대에서 뛰어다니면서도 아직 목표가 많다, 그리고 뚜렷하다.
일로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쏘다닌 지 벌써 15년.
취미는 일탈, 특기는 일탈을 일로 승화하기.
어떻게하면 인디밴드들과 친해질까 궁리하던 중 만난 < 이예진의 Stage Story >
그래서 오늘도 수다 떨러 간다. 꽃무늬 원피스 입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