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한 사람의 일생을 담아낸 뮤지컬
오스트리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황후로 기억되는 엘리자벳. 뮤지컬 <엘리자벳>의 주인공 씨씨(엘리자벳)는 1837년 뮌헨에서 태어나 15살에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결혼해 황후로 살았던 실제 인물이다. 뮤지컬 <엘리자벳>은 천방지축 왈가닥 어린 소녀가 한 나라의 황후가 되어, 한 무정부주의자 청년에게 피습을 당해 사망하기까지 한 여자의 일생을 담았다.
특정 사건을 통해 한 인물을 파악하는 게 아니라, 한 인물이 성장하면서 겪는 다사다난한 일들을 관객은 함께 경험한다. 2시간 반이라는 짧지 않은 공연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압축된 생을 경험하는 일이라, 공연이 끝났을 때의 감동, 그 무게감은 여느 뮤지컬과 다른 데가 있다.
엘리자벳 황후는 참으로 극적인 삶을 살았다. 1898년, 요양 중이던 황후의 산책길에 한 청년이 뛰어들어 그녀를 피습했다. ‘마이얼링 사건’이라고 불린 이 비극을 조사하던 극작가 미하엘 쿤체는 황후가 남긴 일기장, 시와 편지를 탐독하면서, 황후가 알려진 것 외에 다른 모습이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쓴 극본이 이 뮤지컬 <엘리자벳>이다. 그녀는 죽음뿐 아니라, 삶에서도 극적인 순간이 많았는데, 무엇보다 ‘그녀가 마지못해 황후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극작가의 왕성한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나는 나만의 것’ 깨달은 자가 주는 감동
말괄량이 아가씨 쎄씨는 행복한 가정에서 말도 타고, 줄도 타며 자유롭게 살고 있었다. 15살 때, 우연히 황제 요제프에게 간택되면서 황실에 들어갔다. 귀족집 딸이라면 누구나 들어가고 싶었던 황실 문이었지만, 그 묵직한 황실의 문이 열리면서, 그녀의 비극도 시작되었다. 억압적이고 근엄한 분위기 속에서 국가를 위해 희생만을 강요하는 황실의 삶이, 자유로운 소녀 씨씨를 불행하게 했다.
뮤지컬 <엘리자벳>은 그녀의 삶이 품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 중에 ‘자유를 갈망했던 한 아름다운 여인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먼 나라 황후 이야기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9개 국가에서 계속 공연되고 있는 비결이다.
요제프의 어머니이자, 엘리자벳에게는 시어머니인 대공비 소피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참견하면서, 1800년대 오스트리아에도 엄연히 시월드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나인가요, 어머니인가요, 선택해요!’라고 요제프를 들볶는 엘리자벳이나, 그 사이에서 저울추처럼 흔들리다 결국 ‘여보, 미안해’ 사과하며 어머니 손을 붙잡는 아들 요제프, 득의만만한 소피, 세 사람의 삼각관계는 우리네 저녁 드라마에서도 익숙한 풍경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시댁 이야기가 막장으로 치닫지 않는 까닭은, 그녀가 얼마 지나지 않아 각성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법도란 당위로 수없이 상처받은 엘리자벳은 더는 누구에도 의존할 수 없고, 스스로 결정하고 살아나가야 하는 상황을 깨닫는다.
이 각성은 비단 시월드에 속해있는 자만의 것이 아니기에, 그때 엘리자벳이 부르는 ‘나는 나만의 것’이라는 노래는 묵직한 울림이 있다. 엘리자벳은 이 순간 소녀에서 어엿한 여자로 변신하고, 주어진 삶이 아니라, 원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다.
내가 선택한 삶에서 주어지는 것들
물론, 어떤 결심이 그 자체만으로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더 행복해진다는 보장도 없다. 다만, 더 나아지든 나빠지든 결과에 상관없이 이것이 내가 선택한 삶이라는 결단에서 오는 당당함이 있다.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감수하겠다는 담대함이 생긴다. 엘리자벳은 자유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지만, 정처 없이 떠돌았던 그 삶이 과연 행복했는지 잘 모르겠다. 무대 위에서 엿보는 그녀의 삶에는 이후에도 녹록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삶에서 당당함과 품위가 느껴지는 까닭은, 그것이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삶이기 때문이다. 멀고 먼, 오스트리아의 황후 이야기에 우리가 감동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보통 사람들보다 수많은 제약이 가해지는 황후라는 자리, 시키는 대로 말만 들으면 따뜻한 식탁과 안락한 잠자리가 제공되는 황후의 자리를 내던지고, 엘리자벳이 끊임없이 자유를 지향했기 때문에, 그녀가 꿈꾸는 대로 살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들려주면서, 작가는 이야기가 지루해지지 않게 독특한 캐릭터를 하나 설정하는 데 바로 ‘죽음’이라는 캐릭터다. 엘리자벳이 어린 시절,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죽음과 맞닥뜨리는데 죽음은 엘리자벳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를 놓아준다. 그리고 평생 그녀 곁에 맴돌며 유혹한다. 평안한 안식을 주겠다고. 함께 가자고. 죽음은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가 누리는 부와, 그녀의 살아있는 남편과, 그녀의 삶과 겨룬다.
얼핏 생각하면, 살아있음으로 누리는 것이 많아, 죽음이 무조건 열세에 놓일 것 같지만, 막상 한 사람의 일생을 압축해보면, 삶과 죽음의 겨룸은 매우 팽팽하다. 누구나 살다 보면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괴로움, 고통,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있는데 어떤 사람도, 어떤 부귀영화도 찾아올 수 없는 그 고독한 방에 죽음만이 그 방을 찾아와 노크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이 작품 속에서 ‘죽음’이라는 캐릭터는 실제적이고 적극적이고 상징적이다. ‘죽음’을 아름다움과 음산함을 간직한 치명적인 매력의 미남 배우로 설정한 것 역시 이러한 죽음의 속성을 담은 것일 테다. 지난해 ‘죽음’ 역으로, 한국뮤지컬 대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김준수가 올해도 ‘죽음’으로 찾아왔다. 이 밖에도 가수 박효신, 뮤지컬 배우 전동석이 ‘죽음’으로 열연한다.
볼거리, 들을 거리 풍성한 뮤지컬
지난 해 초연 당시, 뮤지컬 <엘리자벳>은, 많은 관객을 만나고, 제 6회 뮤지컬 어워드에서 역대 최다 수상을 기록하며,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쥐었다. 1992년부터 해외에서 이미 검증받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각각의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려낸 배우들의 힘, 화려하고 비극적이었던 한 여인의 일생을 효과적으로 연출해낸 스탭들의 공로 덕에 얻은 성공이었을 테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엘리자벳>을 관람했는데, 이 작품은 역시나 볼거리와 들을 거리가 풍성한 작품이다.
특히 캐릭터와 서사를 이끌어가는 음악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인물의 성격을 잘 반영한 인물별 테마곡이 극 중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관객에게 인물의 분위기나 성격을 각인시킨다. 극 중 분위기를 조였다 풀었다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것도 음악이 해낸다. 오스트리아 황실을 재현한 무대도 화려함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극 중 엘리자벳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300여 벌의 의상과 소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느 무대보다 화려함을 뽐내는 작품인데, 올해 공연에는 ‘죽음’의 판타지를 돋보이게 하는 레이저, 황실의 웅장함을 재현한 3D, 움직이는 배 등이 추가되었다. 무대와 이야기, 배우들의 출중한 기량만으로도 꽉 차는 무대라, 어떤 장면에서는 무대 장치나 소품이 과잉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올해 <엘리자벳>은 가수 박효신, 이지훈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워낙 개성 있는 배우들이라, ‘죽음’과 ‘루케니’를 자기만의 표정으로 연기해낸다. 다만 가사가 많은 노래 탓인지, 호흡이나 대사전달력이 아쉬운 대목도 있었다.
기량이 출중한 배우들의 무대 역시 그 화려함을 더하는데, 옥주현과 김소현이라는 두 배우가 가진 색깔이 다른 만큼, 엘리자벳의 모습도 다르게 그려진다. 옥주현의 엘리자벳이 단호하고 씩씩하자면, 김소현의 엘리자벳은 소녀스럽고 귀엽다. 직전까지 예수로 분했던(<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박은태는, 루케니라는 완전히 다른 옷을 입고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놀라운 가창력도 변함없다. <엘리자벳>은 9월 7일까지 오페라 전당 오페라하우스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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