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무엇이 가장 무서울까? 서슴지 않고 나는 ‘일상日常’이라고 답한다. 하루하루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일상이라는 괴물’에 붙잡혀 있기 때문이다. 일상을 벗어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를 위시하여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자연적 혹은 인륜적인 의무를 행하느라 여념餘念이 없다. 해야 할 일이 있고 사랑을 하며 가족을 챙기는 등 자신에게 매번 주어지는 일들을 수행하고 처리하기에 바쁘다. 한 개인의 일상은 ‘나’를 중심으로 형성된 일종의 그물망으로서 나의 통상적인 활동공간이지만 또한 내가 갇혀 있는 폐쇄공간이기도 하다. 닫힌 공간으로서의 일상은 나로 하여금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늪’이기도 하다. 이러한 일상에 대해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일상이 불만스런 이들에게 가능한 출구는 두 가지다. 어떻게든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는 길 그리고 일상 안에서 자유를 찾는 길이다. 인문학은 지금까지 앞의 길을 안내해 왔다.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는 여유와 치유의 길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일상을 회피하는 소극적인 방법이다. 이제는 인문학이 일상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적극적인 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적 사고와 상상력을 통해 일상 밖이 아니라 일상 안에서 삶의 활력과 의미를 확인하고 산출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삶의 대부분이 할애되고 있는 일상이라는 장을 떠나 삶의 지혜와 의미를 말하는 것은 충분히 현실성을 띤 대안으로 보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적인 시각과 지혜가 우리의 일상 안에서 지니는 의미를 제대로 조명해야 하는 이유다.
인문학은 일상의 요소에 대한 통상적인 혹은 세속적인 시각을 의문시한다. 세계/사태/사람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데에서 인문학은 상식적인 시각의 한계와 오류를 지적한다. 인문학적 사고와 상상력과 통찰력은 일상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사태에 대해 ‘새롭게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혁신, 성공, 정의, 창의, 소통, 치유, 행복, 종교, 건강이라는 주제어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제 상황이다. 이들에 대해 어떤 시각과 태도를 지니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이 책의 필자들은 제시한다. 인문학은 여기서 무엇보다 ‘주어진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는 게 올바른가?’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사태에 접근한다.
성찰, 지혜, 자유 그리고 그에 따른 행위를 지향하는 인문학은 삶의 질을 제고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개인과 사회의 차원에서 인문학은 우리가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할 것인가에 못지않게, 어떤 문제로 고민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지에 대해 논의한다. 일상의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편파적이고 편협한 사고에 빠져 사태를 잘못 파악하고, 그에 따라 엉뚱한 문제 앞에서 고민하곤 한다. 일상의 시선은 즉물
卽物적이기 쉽다. 즉물적이란 생각이 사물 혹은 사태에 바로 붙어 있다는 뜻이다. 인문학은 일상의 시선을 사물/사태에서 분리시켜 사물/사태에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선을 모색한다. 이 시선은 즉각적이고 즉물적인 감정에 억매이지 않고 냉정하게 세계와 만나는 길을 다각도로 열어 보인다. 인문학은 사태의 가상
假像이 아니라 실상
實像을 파악하도록 권하여, 우리가 ‘가짜 문제’를 진짜 문제로 오인하는 데 따른 방황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일상의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참된 의식에 이르도록 인문학은 계도한다.
무엇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 속에서 일상은 진행된다. 인문학은 이 ‘어떻게’에 인문학은 관여하여 ‘고민의 질
質’을 변화시킨다. 어떤 고민이 고민할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인문학은 판별하여 우리의 일상적인 생각에 새로운 판단의 지평을 연다.
인문학이 개인과 사회의 문제에 출구를 제시한다고 할 때, 그것은 문제의 출처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과 그에 따른 조치를 뜻한다. 물론 인문학적 사고가 만병통치는 아니어서 일상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지만, 적어도 인문학은 문제의 소재와 성질을 밝혀 ‘엉뚱한 문제’ 속에서 헤매는 행태를 지적하고 예방하고자 한다.
일상의 통속적인 시각을 교정하고자 하는 인문학의 태도를 통하여 우리는 이제 ‘자기’ 속에 잠재해 있는 가능성에 눈뜨게 된다. <인문학카페 인생강의>는 결국 ‘지금까지 드러난 나’ 이외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나’를 깨닫게 하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인문학적 분석력과 판단력과 상상력은 지금까지 자신이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나’를 만나게 한다. 여기서 인문학은 단순히 삶의 윤활유나 치유책이라는 삶의 보조기능에 머물지 않고 ‘나의 일상’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여 일상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핵심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우리의 ‘닫힌 일상’에 인문학이 투입됨으로써 일상과 인문학이 서로 호흡하고 흐르는 ‘열린 일상’의 시대가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2013년 8월 유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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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 카페 인생 강의 강승완 외 공저 | 글담
문학, 철학, 역사와 같은 인문학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일까? 인문학을 접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삶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인문학을 생활 속으로’를 지향하는 사회적 기업 『인문학 카페』에서는 우리의 일상과 인문학을 접목시키기 위한 시도를 해왔다. 그동안 인문학이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는 여유와 치유의 길을 제시해왔다면, 이제 인문학이 일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일상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시도이다. 이 책은 우리 시대 직장인들의 주요 고민에 대해 철학, 문학, 인문지리학, 통합의학 등 각 분야의 인문학자들이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분석하고 풀어 쓴 독특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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