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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의 암흑기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

8개 구단 ‘흑역사’ 이야기 (하) 어느 팀이나 ‘암흑기’는 있는 법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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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커브 여섯 번째는 지난 번에 이어 8개 구단의 흑역사 이야기 ‘하’편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흑역사는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 올 수 있습니다.

두산 베어스-사상 초유의 항명 파동 (1994년)

앞서 LG 트윈스 편에서 2004년 LG와 두산이 새 감독을 각각 이순철, 김경문을 선임하면서 팀의 운명이 달라졌다고 말씀 드렸는데 10년 전인 94년 역시 두 팀의 운명이 극적으로 갈렸던 해였습니다. 창단 첫해인 90년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전신 MBC 청룡 시절을 포함해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던 LG는 3년 뒤 94년 이광환 감독의 자율야구를 꽃피우며 두 번째 우승을 거머쥐게 됩니다. 유지현, 서용빈, 김재현 등 신인 3인방에 한대화, 김용수 등 베테랑들이 조화를 이루며 정규시즌 1위, 한국시리즈 4:0으로 퍼펙트 우승을 차지한 것입니다.

이렇게 94년 시즌은 LG 트윈스 팬들에게는 기분 좋은 추억의 시즌이었지만 두산(OB) 베어스 팬들에게는 기억하기도 싫은 시즌이었습니다. 사상 초유의 항명 파동으로 팀이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OB 베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프로야구 선수 출신 1호 감독인 된 윤동균 감독과 당시 고참 선수들간의 갈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9월 4일 쌍방울 전의 무기력한 패배 이후 선수들을 소집한 윤동균 감독이 구타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박철순, 김상호, 장호연, 이광우 등 고참 선수들이 반기를 들게 됩니다. 이후 이들은 팀을 이탈하게 되고 윤동균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됩니다. 당시 최고참 박철순은 “윤동균 감독이 옷을 벗으면 나도 벗겠다”라고 배수진을 쳤고 중재에 나선 구단과 줄다리기 끝에 ‘윤동균 감독 퇴진 및 박철순 등 고참선수 5명 은퇴’에 합의하게 되지만 팬들의 반발로 사태는 ‘윤동균 자진사퇴 및 강영수 방출, 나머지 선수들 복귀’로 정리되게 됩니다.

이 사건은 9시 톱뉴스로 나올 만큼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고 KBO가 잔여경기 몰수패를 검토했을만큼 야구계에 미친 파장도 어마어마했습니다. 무엇보다 ‘프랜차이즈 출신 감독과 고참 선수들간의 충돌’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선수들과 팬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말았습니다. 이 상처를 치유하고 이듬해 우승의 감격을 안긴 감독이 바로 ‘국민감독’ 김인식입니다.


롯데 자이언츠-69명의 관중, 남아 도는 아이스크림 (2002년)

LG 트윈스만큼 아니 오히려 더 한 암흑기를 보낸 팀이 바로 롯데 자이언츠입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롯데 자이언츠가 기록한 순위는 ‘8-8-8-8-6-7-7’ 이었습니다. 특히 온 나라가 월드컵 열풍에 휩싸였던 2002년 시즌은 그야말로 악몽이었습니다. 35승 97패 1무. 2할6푼5리의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든 것입니다. 3번만 더 졌다면 KBO 최초로 시즌 100패를 기록할 뻔 했습니다.

전무후무한 4할 타자이자 90년 LG의 첫 우승을 이끈 백인천 감독은 안타깝게도 롯데에서는 암흑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2002년 6월 21일부터 이듬해 중도 경질될 때까지 41승 119패의 참담한 성적을 남기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호타준족 스타일의 김주찬을 거포로 만들려나 실패한 것이나 이대호에게 무리한 훈련을 강요해 부상을 야기시키는 등 많은 무리수로 팀을 더 어렵게 만들고 말았죠. 경기 중 덕아웃에서 조는 장면에 포착된 적도 있습니다.

급기야 2002 시즌 마지막 경기, 사직에서 열린 롯데-한화 전은 69명의 관중만이 입장해 역대 최소 관중 기록을 달성하게 됩니다. 홈팬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받고 만 것이지요. 프런트에서 관중들을 위해 준비한 아이스크림은 남아 돌기 일쑤였습니다. 2008년 ‘로이스터 매직’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전까지 롯데의 암흑기는 정말 우울했습니다.


기아 타이거즈-종이호랑이가 된 ‘유남호-서정환’ 시대 (2005~2007)

기아 타이거즈의 전신 해태 타이거즈는 KBO 최초의 왕조이자 아직까지도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명문 구단이었습니다. 2001년 모기업인 해태의 재정난으로 기아자동차가 구단을 인수하면서 해태 타이거즈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기아 타이거즈로 새로 태어나게 됩니다. 이후 괜찮은 성적을 유지하던 기아는 2005년 팀 역사상 최다패인 76패와 최저승률인 3할9푼2리의 승률을 기록하면서 암흑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예전 왕조의 위용에는 어울리지 않은 정규시즌 최하위를 기록하게 되지요. 2004년 중반부터 팀을 이끌던 유남호 감독은 경질되고 맙니다.


유남호 감독의 뒤를 이어 지휘봉을 잡게 된 서정환 감독 역시 암흑기를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2006 시즌은 용병투수 세스 그레이싱어의 맹활약으로 가까스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만 한화 이글스에 패하게 되고 야심차게 출발한 2007년 시즌은 51승 74패를 기록하며 2005년에 이어 또다시 최하위의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시즌 전 전지훈련 캠프에서 심재학, 장문석 등이 부상을 당했고 에이스 김진우가 예상 외의 난조를 보이면서 팀은 ‘종이 호랑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서정환 감독에 이어 2008년부터 사령탑을 맡게 된 조범현 감독은 1년 간의 정비 끝에 2009년 드디어 대권을 거머쥐게 됩니다. 롯데가 로이스터 매직으로 암흑기를 끝냈듯, 기아는 조범현 시대에 암흑기를 끝내게 됩니다.


쌍방울 레이더스(SK 와이번스)-97패와 함께 사라져 간 꿈

전주를 연고로 1990년 창단해 91년부터 1군 리그에 참가한 쌍방울 레이더스는 ‘슬픈 감동’의 팀이었습니다. 1군 데뷔 해 52승 71패 4할2푼5리의 승률로 창단팀 치고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던 쌍방울은 92년부터 95년까지 역량의 부족을 절감하며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96년 명장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면서 팀 최초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등 돌풍을 일으키지만 IMF로 재정난이 악화된 구단이 98년부터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선수 팔기’를 시작하면서 팀은 몰락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됩니다.

98년 팀의 기둥이었던 조규제와 박경완이 현대 유니콘스로 가게 되고 99년에는 김기태와 김현욱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게 됩니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구단 사정상 외국인 선수를 쓸 수도 없었습니다. 김성근 감독이 아무리 뛰어난 명장이더라도 주축 선수들이 모두 떠나간 팀을 재건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99년 시즌 28승 97패의 성적표를 마지막으로 쌍방울 레이더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이후 야구단에 관심이 있던 SK그룹은 쌍방울 인수가 아닌 ‘해체 후 재창단’의 형식으로 SK 와이번스를 창단하게 됩니다.


한화 이글스-날개 없는 독수리 (2013년)

한화 이글스 팬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한화의 암흑기는 ‘지금’입니다. 2006년 한국시리즈 진출 이후 계속 내리막을 걷고 최하위도 기록하기도 했지만 그 정점이 바로 올시즌인 것이지요. 해태 왕조를 이끈 김응용 감독을 야심차게 영입했지만 이 글을 쓰는 8월 13일 현재 26승 1무 60패 3할을 간신히 넘기는 승률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개막 이후 13연패의 악몽을 겪기도 했지요.

물론 올 시즌 성적이 좋지 않으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바였습니다. 슈퍼 에이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로 떠났고 박찬호는 은퇴, 양훈은 군입대를 해 선발투수 3명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불펜 요원 송신영도 팀을 떠났고 박정진도 후반기에야 팀에 합류 했습니다. 15억 연봉의 김태균은 타점 빈곤에 계속 시달리고 있지요.

하지만 이런 어려움들은 모든 팀마다 다 있는 것입니다. 부상 선수 없는 팀 없고, 슬럼프에 빠진 주전 선수들도 각 팀마다 한 두 명은 있습니다. 한화의 근본적인 문제는 선수 육성에 있습니다. 2군 전용 구장은 올해에야 만들어졌고 신인 드래프트도 다른 팀의 절반 정도에 그치는 등 투자에 인색했습니다. 빙그레 이글스 시절만 해도 장종훈, 한용덕 등 ‘슈퍼 연습생’들이 저절로 와서 팀을 이끌었고 송진우, 정민철 등 연고지 신인 선수들이 알아서 커주고 했지만 그런 행운이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김응용 감독 역시 연륜에 맞는 지도력을 발휘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한화는 리빌딩이 아니라 ‘리빌딩의 리빌딩’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내년 시즌은 당장 성적이 나오지 않아도 주눅들지 않고 도전하는 한화 이글스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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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용훈

서울 출생으로 MBC 청룡 어린이회원 출신이지만 지금은 자칭 ‘C급 동네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시즌 중에는 퇴근하면 바로 TV 앞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비시즌에는 야구 책을 뒤적이며 허전함을 달랜다. 지인들과 집 근처에서 생맥주 마시며 야구 이야기를 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 저서로 『프로야구 감독열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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