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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5가에서 성배를 찾을 수 있을까?
웃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뮤지컬, <스팸어랏>
2010년에 한전아트센터에서 초연되었고, 3년 만에 두산아트센터에서 관객을 맞고 있다. 초연 당시 ‘한국화가 잘 된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다.
면면이 심히 부실한 기사들의 모험담
뮤지컬 <스팸어랏>은 아더왕이 원탁의 기사들을 모아 성배를 찾는 모험담이다. 모험을 빙자한 코미디 극이다. 브로드웨이 최고의 코미디 뮤지컬이라는 광고에 걸맞게 이 작품은 막이 오르는 순간부터 커튼콜을 하는 순간까지 관객을 웃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미리 얘기하자면, <스팸어랏> 정말 웃긴다. 개인적으로 아더왕이나 원탁에 기사 이야기에 관심도 없고, 브로드웨이에서 통하는 개그가 종로5가에서도 통할까 싶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공연 내내 배꼽을 잡았다.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는 정확히 종로5가에 딱 맞는 개그와 열연으로, 한국의 관객들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엑스칼리버 검을 받아 왕이 된 아더왕은 그의 시종 팻시와 함께 원탁의 기사들을 모집하는 여정에 나선다. 가상의 말을 타고, 입으로 ‘이랴이랴’ 소리를 내며 온갖 위엄을 떨어대는 아더왕과 팻시는 영락없이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습이다.
온 동네 급구해서 원탁의 기사를 모으긴 모았는데, 그 면면이 아주 부실하다. 무식해서 용감한 랜슬럿 경, 겁 많은 로빈(후드) 경, 똥 치우는 일을 하던 갈라하드 경, 먹보 베데베르 경까지. 아무래도 기사단이 아니라 동네 개그맨 공채 합격자들을 소집한 모양새다. 모인 원탁의 기사들은 그들의 미션, 성배를 찾는 데 앞서, 제 역할에 맞게 몸 개그, 말 개그 가리지 않고 쉴 틈 없이 유머를 난사한다.
현실 풍자 곁들인 공감 백배 개그
“종로 5가에서 성배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말을 주고받는데, 이들의 개그는 거의 <무한도전>이나 <1박2일> 같은 예능 프로가 선사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개그다. 그러니까 <스팸어랏>이 공연되고 있는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을 적절히 녹여, 공감코드를 최대한 활용한다.
기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하는 아더왕에게 청년들은 취업난을 하소연하고, 왕도 선거로 갈아치워야 한다고 정치 풍자도 빼놓지 않는다. 전쟁 상황을 묘사할 때는, ‘불바다’ 운운하며 북한 뉴스를 패러디하고, ‘F16 싸게 줄게, 2만 년 동안 갚아.’ 등의 시사 코멘트를 적당히 가미한다. 물론 여기에 ‘(프랑스 어라면서)무수와, 너무 무수와’하는 얕은 말장난도 빼놓지 않는다. 그야말로 개그 종합 선물 세트다.
그뿐이랴. 뮤지컬을 하고 있으면서, 스스로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한 따끔한 일침도 빼놓지 않는다. “뮤지컬에서는 왜 꼭 이런 대목에서 느끼한 노래를 부르지?” “삐까번쩍 무대, 의상 필요 없어. 성공하려면, 연예인을 잡아요”라는 노래도 뻔뻔스럽게 부른다. <오페라의 유령> <지킬앤하이드> <위키드> <캣츠> <헤드윅> 등 뮤지컬 팬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뮤지컬을 익살맞게 패러디한 장면도 <스팸어랏>에서 빼놓을 수 없이 유쾌한 장면이다.
우린 재미있게 논다. 신나게 잘들 논다
이렇게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허튼소리, 뜨끔한 소리, 웃기는 소리를 한껏 내뱉고는, 한목소리로 노래한다. “우린 원탁의 기사들. 우린 재미있게 논다. 신나게 잘들 논다.” 급기야 성배를 찾는다며 객석을 뒤진다. 무대와 객석을 넘나들며 논다. 관객과 제대로 놀아보려고 작정한 뮤지컬이다.
뮤지컬 <스팸어랏>은 영국의 6인조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톤’이 만든 영화 ‘몬티 파이톤과 성배(1975)’를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다. 원작 영화 역시 똑똑하지 않지만, 용기 넘치는 아더왕이 엉뚱한 원탁의 기사들과 성배를 찾으며, 사회 풍자를 일삼고, 뮤지컬을 패러디하고 풍자하는 게 주 내용이다.
<스팸어랏>이라는 제목은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로 상징되는 지역 이름 캐멀럿(Camelot)과 스팸(spam)이 합쳐진 말이다. 그렇다면 왜 스팸인가. ‘몬티 파이톤’의 코미디쇼 에피소드 중에 ‘스팸 스킷’이라고 해서, 어느 싸구려 식당에서 뭘 시키든 스팸을 내놓는 우스꽝스러운 상황극을 선보였는데, 대단히 반응이 좋았다. 그 에피소드의 제목을 따서 spam이 제목에 들어가게 됐다. (그 깡통 햄, 스팸 맞다.) Spam a lot. 그러니까 스팸이 많다는 (그저) 유머러스한 제목이다.
원탁의 기사 랜슬럿 경으로 활약하는 배우 정성훈
2010년에 한전아트센터에서 초연되었고, 3년 만에 두산아트센터에서 관객을 맞고 있다. 초연 당시 ‘한국화가 잘 된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번 공연에는 아더왕 역할에 정준하가 합류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현재는 서영주가 아더왕 역할을 쭉 이끌고 있다. 뮤지컬 전문 배우답게, 발성 좋고, 전달력 좋고, 기량은 물론 목소리까지 좋은 서영주의 아더왕은 매우 흡족스럽다.
때때로 억지스러운 코미디로도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데에는 배우 정성훈의 역할이 대단히 크다. 원탁의 기사이자 적군이자 마법사이자 게이 역할도 불사하며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는데, 등장할 때마다 관객들을 쥐락펴락 능수능란한 연기를 뽐낸다. 나중에는 그가 등장하기만 해도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맨오브라만차>에서 산초 역할로 잘 알려진 이훈진, <지킬앤하이드>의 주역 윤영석, 고은성 등 주요 배우뿐 아니라 앙상블 배우들의 합이 좋았다.
개그 콘서트 등의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을 즐기는 관객이라면, 깨알 같은 개그에 관대한 관객이라면, 기꺼이 추천하고 싶은 뮤지컬이다. 비가 죽죽 내리거나, 찜통같이 찌는 요즘 같은 날씨에 더욱 제격이다. 9월 1일까지 영국의 기사들이 종로 5가에 모여 있다. 아직 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면, 가깝게 종로 5가 두산 아트센터 내에 지어진 ‘캐멀럿 성’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summer2277@naver.com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연답게 잘, 헤쳐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