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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 영원히 곁에 두고 싶다면 ? 뮤지컬 <뮤직박스>

장난감 가져본 적 있어도, 친구 가져본 적 없는 소년의 성장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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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버려져 성장이 멈춘 장난감 디자이너 민석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타지만 장난감처럼 시키는 데로만 살아왔던 아이돌 가수 하나를 만나 서로의 단점을 치유하며 성장해나가려 한다.

인형들 트라우마 고쳐주는 장난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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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체험은 한 사람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아직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나이에 접하게 되는 사랑, 혹은 폭력의 경험이 좋은 것-싫은 것으로 극단적으로 분류되어 각인되기 때문이다. 엄마의 사랑, 아빠의 폭력은 평생의 삶에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아직 십 년도 채 살지 않은 소년에게 그것은 세상 전부의 것이다. 


엄마로 상징되는 것은 무조건 좋고, 아빠와 연관되는 건 무조건 두려운, 철저히 양분된 세계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이 있다. <뮤직박스>의 주인공 민석 역시 마찬가지다. 엄마를 연상시키는 뮤직박스, 장난감 인형에게는 한없는 다정함을 보이지만, 아빠를 연상시키는 성인 남자나 집 밖의 세계는 철저히 외면한다. 


민석은 외딴곳에 떨어져 자신이 만든 장난감들과 살고 있다. 민석은 고전 동화 캐릭터를 피규어로 만들면서, 그들이 가진 콤플렉스를 극복할 장치를 함께 만들었다. 12시면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를 위해 11시 59분 59초에 멈춘 고장 난 시계를, 피노키오에게는 코가 길어지기 전에 확인할 수 있는 거짓말 탐지기를, 뇌가 없어 새들에게 물어뜯기는 허수아비에게 CPU를 달아주는 식이다. 


장난감들 역시 민석의 곁에서 그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엄마를 때리고 집을 나간 아빠, 병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로 인해, 민석은 버림받는 일에 트라우마가 있다. 인형과 민석은 그렇게 따뜻한 공생관계를 이어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돌 스타 이하나의 매니저가 그녀의 피규어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한다. 처음엔 관심 없던 민석은 엄마의 목소리와 닮아 있는 이하나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의 장난감을 만든다.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해 선물처럼 나타난 그녀에게, 민석은 다가간다. 


장난감들과 잘 지내듯, 그녀와도 가까워지고 싶은데, 하나와 친해지는 일에는 서툴기만 하다. 장난감을 가져본 적은 있어도, 친구를 가져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소년은 장난감을 만들고 소유하는 법은 알아도, 친구를 사귀는 법은 모른다. 결국, 자기만의 방법으로 하나와 가까워지려고 하는데, 그 방법이 꽤 돌발적이다. 


민석의 친구학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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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란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존재다. 민석은 장난감에 있어서 더없이 좋은 친구다. 민석이 친구로서 갖고 있는 가장 좋은 미덕은, 상대가 원하는 것이 뭔지 알고 있다는 거다. 민석은 지니가 폐소공포증이 있어 좁은 램프를 싫어하는 걸 알고, 큰 집을 지어준다. 신데렐라가 밤새도록 무도회장에서 놀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고장 난 시계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장난감을 그저 플라스틱 물체로 보는 이하나는, 자신의 고정관념에 맞춰 상대를 판단한다. ‘지니는 당연히 램프 곁에 있어야지’ ‘어라? 신데렐라 시계가 고장 났네. 내가 고쳐줄게.’ 지니도, 신데렐라도 전혀 원치 않는 이하나의 선의에 울상이다. 내 뜻대로 상대를 판단하는 사람과,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먼저 물어봐 주는 사람 중에 누가 더 좋은 친구인지 우리는 알 수 있다.


민석의 친구 사전에는 특별한 요건이 하나 더 있는데, 한시도 민석의 곁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나를 버리지 않고, 내가 필요할 때, 항상 나만 바라볼 것. 그래서 ‘내 것’ ‘나만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 


장난감들은 기꺼이 그런 친구가 되어 준다. 하지만 우리 중 어떤 누구도 그런 친구가 되어 줄 순 없다. 민석이 친구 같은 장난감을 가질 순 있지만, 장난감 같은 친구는 가질 수 없다는 데에서 민석의 비극이 발생한다. 결국, 그가 친구에게 베푸는 선한 행위는 모두 ‘나를 떠나지 마’라는 간곡한 신호다. 


아픔 따위 없는 세상, 거기엔 삶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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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석이 바라는 건, “아픔 따위 없는 세상. 아픔도 고통도 없는 세상”이다. 민석에겐 그게 행복이고 꿈이다. 하지만 아픔도 고통도 없는 세상에는 삶도 없다. 장난감 세상에 축제는 있어도, 성장하는 삶이 없듯이 말이다. 집에 누군가 방문하기만 해도, 장난감 집으로 숨어버리는 민석을 보고, 문득 민석 역시 아픔도 고통도 외면한 채 살다가 장난감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싶었다. 한번도 집 밖에 나가, 엄마의 그늘 밖에 나가 성장할 기회를 얻지 못했으니까. 


민석이 평생 “엄마”를 되뇌는 엄마의 장난감으로 커버린 듯 느꼈다면 비약일까? 그래서 민석에게 하나와의 만남은 더없이 중요하다. 처음으로 제대로 만나고, 제대로 이별할 기회를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민석이 하나와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나갈 기회를 얻을 수 있는지는 무대에서 직접 확인해 볼 일이다. 


<뮤직박스>가 선사하는 또 하나의 재미는 민석이 구현한 장난감 세계다. 일단 장난감 디자이너라는 민석의 직업에 걸맞게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꽉 찬 무대가 큰 몫을 한다. 장난감들의 군무를 한껏 돋우는 OST도 만족스럽다. 대중가요처럼 귀에 꽂히는 선율과 다양한 리듬으로, 극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환하고 듣는 재미도 톡톡히 선사한다. 


예민한 민석의 기분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김수용의 연기도 굉장하다. 그의 새하얀 얼굴과 귀엽게 말린 파마머리는, 장난감 세계에서 단 한 번도 나간 적 없는 어린 화초 같은 민석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다. 천사 같고 아름다운, 전형적인 연예인 캐릭터 이하나를 매력 있게 표현한 김수연의 연기도 좋다.


순수동화, 잔혹동화 경계 넘나드는 <뮤직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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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박스>는 2013 대구 뮤지컬 페스티벌 월드 프리미어 초청작이다. <카페인>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쓰고 연출한 성재준의 신작이라 진작부터 많은 팬의 관심을 끈 작품이다. 성재준 연출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동화 캐릭터를 통해 친근하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면서도, 쉽게 소유하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장난감의 속성을 내세워 순수한 동화와 잔혹 동화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점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엉뚱한 캐릭터인 민석의 예측 불가한 행동이 종종 극의 반전을 일어나는데, 그의 행동에 공감하지 못하면, 그 반전이 극단적인 전개로 느껴질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곁에 두고, 떠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는 고통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뮤직박스>를 보고 나오는 길에 민석의 고민을 대신해보았다. 우리 역시 민석이 만큼은 아니지만, 누구나 그런 두려움을 마음에 안고 살고, 사랑하고 있으니까. 


어쩌면 질문이 틀렸다. 사랑하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을진저, 사랑 받으려고 하는 온갖 상념에는 두려움을 피할 길이 없다. 장난감이라는 소재 만으로 꿈과 판타지, 사랑과 관계 문제까지 질문을 던지는 매력적인 연극 <뮤직박스>, 9월 1일까지 대학로 문화공간 필링 1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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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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