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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담을 것인가

집에 담을 나만의 이야기를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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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말로 모릅니다. 우리의 감각은 있지도 않은 가상계를 헤매고 다니고, 있지도 않은 허상 위에서 착각을 타고 날아다니고, 있지도 않은 거짓을 먹고 삽니다. 세상은 이미지가 지배하고 있고, 어디선가 고장 난 레코드판이 끊임없이 되돌고 되도는 것처럼 이상한 구호들이 멈추지 않고 쏟아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는 마치 몽유병자처럼 손을 앞으로 내밀고 정신을 잃은 채 끌려가고 있지 않은가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을 쓴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늘 여행을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여행이란 것이 집안에서 손잡고 걸어 다니는 상상 속의 여행이었습니다. 우습긴 해도 그가 무척 문학적이며 감성적인 철학자로 평가되는 배경에는 아마 어린 시절의 상상 속 여행이 큰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상상을 하고 그것을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표현합니다. 그 이야기는 철학이 되기도 하고 소설이 되기도 하고 건축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동안 주로 집을 지었지만 책도 여섯 권 지었습니다. 집을 한 채 짓고 나면 책을 한 권 쓰고도 남을 만큼 이야기가 모입니다. 집을 짓는다는 것이 기초를 깔고 기둥을 세우고 벽을 붙이고 지붕을 덮는 물리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가족의 생활을 깔고 가족의 이야기로 기둥을 세우고 가족의 이야기로 지붕을 덮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땅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건축가는 이 이야기들을 듣고, 둘 사이에 끼어들어 통역을 해주기도 하고, 중재를 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는 사이 집이라는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설계를 시작할 때 늘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자고 이야기합니다. 몇 년 전 지은 지 80년이 된 일본식 집을 고치는 작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집에서 자라고 혼인을 하고 가정을 이룬 칠십대의 집주인에게 기억 속의 그 집은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나이를 먹었는가, 어떤 모습으로 남았으면 하는지를 오랜 시간에 걸쳐 들었습니다.

ⓒ 박영채

심지어 집도 직접 저에게 이야기를 건네왔습니다. 어디가 무겁고 어디가 허전하고 답답하고 등등. 저는 그 이야기를 받아 적고 제가 아는 건축의 언어로 열심히 옮겨나갔습니다.

결국 집을 현대적인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80년대에 당시 유행했던 방식으로 잘못 수리되었던 부분을 바로잡고 집의 원형을 찾는 방향으로 설계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집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끊어지지 않고 이어나가게 될 것입니다.

집은 이야기입니다. 나의 이야기를 담는 그릇입니다. 그러자면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합니다. 영혼과 육체, 혹은 감각과 육체가 늘 붙어있으면서, 정작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왜 안 되지? 하고 생각하면 좀 이해가 되지 않기는 합니다. 하긴 생물학적으로도 자신의 부분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은 가능하지만, 거울을 통해서가 아니라 진짜 자신의 전모를 특히 그중에서도 눈을 들여다보는 것은 정말로 불가능한 일이지요.

세상일이 그렇습니다. 그런 묘한 역설 속에 진실이 숨어 있고, 그런 묘한 경계 위에서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말로 모릅니다. 우리의 감각은 있지도 않은 가상계를 헤매고 다니고, 있지도 않은 허상 위에서 착각을 타고 날아다니고, 있지도 않은 거짓을 먹고 삽니다. 세상은 이미지가 지배하고 있고, 어디선가 고장 난 레코드판이 끊임없이 되돌고 되도는 것처럼 이상한 구호들이 멈추지 않고 쏟아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는 마치 몽유병자처럼 손을 앞으로 내밀고 정신을 잃은 채 끌려가고 있지 않은가요.

이렇게 생활해라, 이렇게 아이를 키워라, 이런 집에서 이렇게 집을 꾸며라, 이런 주문에 의해 자꾸 앞으로만 나아갑니다. 정작 우리 집에 우리 모습이나 우리 생활은 없습니다. 아마도 역사적인 큰 사건들 속에서 나보다는 우리를, 나보다는 민족을, 나보다는 국가를, 하는 식의 ‘멸사봉공’을 강요받으며, 나 자신을 돌아본다든가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환경을 겪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는 질문을 하거나 어떤 교시에 대꾸를 하는 행위가 지극히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욕구는 익명에 숨어서 마구 공격적으로 토를 다는 이른바 ‘댓글’ 속에서 해소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대꾸를 하면서, 질문을 하면서, 의혹을 품으면서, 특히 자신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것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이고,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만들거나 찾는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듣는 연습을 해야만 합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선뜻 꺼내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 저는 보통 그들이 예전에 살았거나 살고 싶었던 집 이야기를 물어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집의 모습은 대부분 어릴 때 가졌던 기억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KBS <남자의 자격>이라는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자, 건축을 말하다’라는 기획을 통해 출연자들이 살고 싶은 집을 설계하고 모형을 만들어보도록 도와주는 멘토 건축가 역할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건축에 대해 거의 처음 접하는 출연자들에게 갑자기 설계를 가르친다는 것은 참 뜬금없고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어렸을 때 살던 집, 좋아하는 집에 대해 물어보자 이야기가 쉽게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출연자는 어릴 때 살던 시골집처럼, 볕이 잘 드는 마루가 있고 거기 앉으면 발아래 강이 흐르고 그 너머 산이 보이는 그런 집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더군요. 누구나 그런 마음속의 집 한 채가 있을 것입니다.


저도 어릴 때 제가 살던 동네에 흠모하는 집이 있었습니다. 다닥다닥 단층집들이 복잡하게 들어서 있는 도시의 주택가에, 훤칠한 담으로 둘러쳐져 있는 풍성한 숲이 있고 담보다 더 훤칠한 높이의 주황색 스페니쉬 기와를 얹고 있는 아주 이국적인 집이었습니다. 저는 마치 눈이 파랗고 피부가 하얘서 인형 같은 느낌을 주는 서양 소녀를 보는 것처럼, 학교를 오가며 그 집을 올려다보고 담을 쓸어보면서 그 안에서의 삶을 꿈꾸어 보았습니다. 이층에 테라스를 거느리고 있는 우아한 방에서는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일 테고, 여름에도 어디선가 신선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고, 겨울에도 훈훈한 바람이 불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집은 참 근본 없는 스페인 풍의 집이었는데, 저는 가끔 그 집을 그리워합니다.

들어가 보지도 못했던 그 집이 저에게 불러일으켰던 환상과 아련한 분위기에 대한 저의 마음은, 많은 사람들이 건축가들이 지은 네모반듯하고 번지르르한 현대건축보다, 뻐꾸기창이 달린 다락방이 있는 고전적인 벽돌집 혹은 그리스 산토리니 섬의 언덕에 펼쳐진 하얀 집들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담을 나만의 이야기를 떠올려봅시다. 나를 돌아보고, 나의 기억을 되살리고, 나의 현재를 점검하고, 나만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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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집 노은주,임형남 공저 | 예담
집을 짓기 전에, 이사를 가기 전에, 인테리어를 바꾸기 전에, 집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길 권하는 책이다. 노은주ㆍ임형남 부부 건축가는, 〈KBS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에 멘토 건축가로 출연하고, 〈SBS스페셜 ‘학교의 눈물’〉에서 ‘소나기학교’의 기획을 맡는 등, 대중과 소통하는 건축가로도 유명하다. 저자들은 집이 가족의 관계를 존중하고 있는지, 아이들의 정서에 도움이 되는지, 단열과 환기에 대한 오해는 없는지 등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과연 사람을 살리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노은주,임형남 저자의 집 이야기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나는 어떤 집에 살아야 행복할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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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노은주,임형남

노은주
1969년 원주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건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고, 월간 플러스, 공간사에서 건축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수목건축에서는 건축기획을, 서울포럼에서 웹진기획을 했다. 리빙TV의 「살고 싶은 집」, 교보웹진 「Pencil」 등을 통해 비평 활동을 했으며,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는데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이곤 한다.
홍익대, 중앙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SALUBIA Time capsule’, ‘외침과 속삭임’(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환원된 집’(이루 갤러리) 등의 전시회를 열었다. 2011년 ‘금산주택’으로 공간디자인대상을 수상했고,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2012년 에 멘토 건축가로 출연했으며, 그 외 <명사들의 책읽기>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집주인과 건축가의 행복한 만남》 《서울풍경화첩》 《이야기로 집을 짓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등이 있고, <세계일보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임형남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주)간삼건축, (주)삼우설계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다루다가 (주)SF도시건축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는데,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이곤 한다.
홍익대, 중앙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SALUBIA Time capsule’, ‘외침과 속삭임’(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환원된 집’(이루 갤러리) 등의 전시회를 열었다. 2011년 ‘금산주택’으로 공간디자인대상을 수상했고,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2012년 에 멘토 건축가로 출연했으며, 그 외 <명사들의 책읽기>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집주인과 건축가의 행복한 만남》 《서울풍경화첩》 《이야기로 집을 짓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등이 있고, <세계일보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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