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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시카고>, 돈만 있으면, 범죄자도 스타가 되는 곳

위험할 정도로 유혹적이고 매혹적인 1920년대 시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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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외모, 명예 등이 맹목적으로 추구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치의 주객전도는 사실 비일비재한 일이다. ‘살인, 욕망, 부패, 폭력, 착취, 간통, 배신’이라고 선전 문구를 붙인 뮤지컬 <시카고>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한 세계. 더없이 유혹적이고 매혹적인 어둠의 세계가 무대 위에서 재현된다.

위험할 정도로 유혹적이고 매혹적인 1920년대 시카고


르네 젤위거, 캐서린 제타존스가 출연한 동명의 뮤지컬 영화 <시카고>가 있다. 이 영화는 뮤지컬을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어,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뮤지컬 <시카고>가 어떤 내용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테다. 1920년대, 거리엔 환락이, 지하 세계에는 마피아가 장악하고 있던 시카고가 이 뮤지컬의 배경이다. 그 시대를 상징하는 시가, 권총, 살인, 갱, 보드빌, 재즈 등을 여기 <시카고>에서 만날 수 있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스타가 되기를 꿈꾸는 극 중 주인공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에게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당시에는 충분히 그럴 법한 일이었다는 거다. 물론 지금도 영 생소한 이야기는 아니다. 불행한 사연이 엔터테인먼트가 되고, 예쁜 범죄자에게 팬클럽이 생기는 일도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돈, 외모, 명예 등이 맹목적으로 추구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치의 주객전도는 사실 비일비재한 일이다. ‘살인, 욕망, 부패, 폭력, 착취, 간통, 배신’이라고 선전 문구를 붙인 뮤지컬 <시카고>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한 세계. 더없이 유혹적이고 매혹적인 어둠의 세계가 무대 위에서 재현된다.


쇼비즈니스가 펼쳐지는 교도소 무대


이러한 시대상이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반영된 데에는 원작자 모린 달라스 왓킨스가 희곡작가이자, ‘시카고 트리뷴’지의 기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모린 달라스 왓킨스틑 1926년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쿡 카운티의 공판에서 영감을 얻어 연극 <시카고>를 썼다. 원작은 'A brave Little woman'이다. 이 작품이 바탕이 되어 무성영화 <시카고>와 <록시 하트>가 제작되어 큰 성공을 거뒀다.

보드빌 배우였던 벨마는 남편과 여동생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살인을 저질렀다. 무대의 배경이 되는 쿡 카운티에 수감된 벨마는 화제의 여죄수다. 이 교도소에서는 간수이자 홍보 담당자 ‘마마’에게 잘 보이면, 언론에 관심도 받고, 석방되어 화려하게 무대에 복귀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는 마마뿐 아니라, 오직 돈에만 관심 있지만, 자신마저도 사랑을 최우선시하는 남자로 포장할 줄 아는 유능한 변호사 빌리 플린과의 모종의 거래가 필요하다.

벨마는 마마, 빌리 플린으로 이어지는 커넥션을 통해 쿡 카운티 교도소 안에서도 인기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코러스 걸 록시 하트가 들어오게 되면서, 빌리 플린과 언론의 관심이 그녀에게 쏟아지면서 이야기가 전환된다. 록시가 빌리 플린과 함께 언론과 대중을 완전히 속여 시카고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는 과정과 서서히 대중들에게 잊혀지는 벨마가 자기 자리를 되찾으려는 노력이 동시에 진행된다. 감옥은 쇼비즈니스가 펼쳐지는 또 하나의 무대인 셈이다.


돈이면 범죄자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될 수 있는, 황금만능주의에 신랄한 비판 못지않게, <시카고>에서 눈에 띄는 건,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오직 특종만을 쫓아 몰려다니는 언론에 대한 풍자가 날카롭다. 돈과 쾌락에 미쳐서 돌아가는 세상에서 감시는커녕 싸움과 흥을 북돋는데 열심인 언론의 행태를 그 누구보다 가까운 데서 경험한 작가였을 테다.

<시카고>에서는 몇 번의 기자회견이 등장하는데, 기자들은 언제나 유능한 변호사 빌리 플린의 시나리오대로 끌려다니고, 더 자극적이고, 더 충격적인 기삿감이 있으면, 물고 있던 취재원도 여차 없이 내팽개치고 달려나간다. 기자뿐 아니라, 대중의 관심 역시 그러하다. 특히 매일매일 새롭게 자극적인 뉴스들로 검색어를 띄우고, 포털사이트를 채우는 요즘의 인터넷 뉴스 환경을 떠올려보면, 우리도 뜨끔하지 않을 수 없는 풍자다. 이렇게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풍자의 맛과 멋이 뮤지컬 <시카고>가 여전히 뜨겁게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일 것이다.


<시카고>에서만 볼 수 있는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무대


이 뮤지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관능적인 음악과 춤이다. 여기에는 브로드웨이에서 연출가이자 안무가로 뜨거운 삶을 살다 간 밥 파시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재즈 선율에 맞춰 선보이는 배우들의 농염한 동작들은 무대 위에서 긴장감을 폭발시키고, 심플하고 섹시한 망사 의상은 그러한 매력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19금 공연을 선보인다는 게 아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관능적인 동작들은 음악과 분위기와 잘 어울리게 구성되어 <시카고>의 품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브로드웨이 역사상 <오페라의 유령> <캣츠>에 이어 세 번째 롱런하고 있는 <시카고>는 초연 이래 38년 동안 한국을 비롯해 캐나다, 호주, 독일, 일본, 브라질 등 30여 개 나라에서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로 일곱 번째 공연이다. 초연부터 함께한 최정원, 인순이, 오래 호흡을 맞춰온 성기윤이 합류해 탄탄한 내공을 선보이고 있다. 코러스 팀의 역량도 만족스럽다.

여기에 미스 유니버스 출신 배우 이하늬, 뮤지컬 배우 오진영이 록시 하트로 새로운 얼굴을 선보인다. 세 번째 뮤지컬 무대에 도전하는 이하늬는 발성이나 기량이 벨마 역할의 두 배우와 상당히 비교되지만, 실력 있는 가수 벨마 켈리와 꿈 많고 철없는 코러스 걸 록시 하트의 구도 안에서는 꽤 어울리는 배역을 맡았다. 특히 노래 못지않게 춤 실력이 발산돼야 하는 무대라 이하늬의 쭉쭉 뻗은 팔다리가 강점으로 두드러진다.

<시카고>의 명장면 중 하나인, 기자회견 장면에서 빌리는 록시의 팔다리를 조종하며 복화술을 하는데, 작가와 연출가의 발군의 재치가 담긴 장면이다. 다만, 여러 사람이 등장해 음악에 맞춰 말을 섞기 때문에, 영화처럼 매끈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영화로 이미 매끈한 버전의 시카고를 본 터라 종종 합창이나 말이 섞이는 장면에서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뮤지컬 <시카고>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에 올라와 있다. 보통 공연에서는 무대 아래 가려져 있기 마련인 오케스트라는 재즈 빅밴드 구성으로 무대 중앙에서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음악감독이 박칼린이라는 것도 화제였다. 박칼린은 사회자처럼 극을 소개하기도 하고, 중간에 배우들과 연기를 주고받기도 한다.

재즈 클럽, 교도소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시카고>는 하나의 스토리가 기승전결로 쭉 이어지는 게 아니라, 클럽의 무대처럼 각 배우의 소개에 이어 공연이 하나씩 펼쳐진다. 여타 공연과 <시카고>가 갖는 차별점이기도 하지만, 극의 몰입을 부러 방해하는 이러한 방식이 관객들에게 산만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지금 무대에 오른 공연 중에 가장 섹시하고, 가장 날카로운 뮤지컬 <시카고>, 2013년대의 관객으로 1920년대의 풍경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일이!’라기보단 ‘충분히 저럴 수 있지.’ 하며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무대를 현실의 축소판이라고 놓고 지켜보면, 공감을 넘어서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내가 당연하게 속해서 사는 세상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또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는 재미랄까. 꼭 내용에 치중하지 않아도 괜찮은 재즈 클럽을 방문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도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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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연답게 잘, 헤쳐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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