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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vN] |
나영석 PD는 왜 <꽃보다 할배>를 기획했을까
평균 나이 76세. 이런 멤버가 또 다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을까. KBS <1박 2일>을 국민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놓은 나영석 PD는 좋아하는 선배 PD, 작가들이 tvN으로 이적하자, 나홀로 아이슬란드 여행을 떠났다가 이윽고 자신도 거처를 옮겼다. 나 PD가 기획한 KBS <인간의 조건>도 성공리에 안착했으니, tvN에서 스타 PD 나영석에게 거는 기대는 얼마나 컸을까. 아마 <꽃보다 할배> 기획안을 다른 PD가 제안했더라면 tvN은 다소 망설였을 수 있지만, <1박 2일> 나영석에게는 남다른 신뢰감이 있었을 것이다. 나영석 PD는 자신의 첫 책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에서 남자가 마흔이 되면 나 홀로 여행을 한 번 떠나보라고 말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분명 얻는 게 더 많을 거라며 독자들을 설득했다. 나 PD는 여행으로 소위 스타PD가 됐고, 여행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연기자들의 캐릭터를 뽑는 데 수준급이 됐다.
그렇다면 <꽃보다 할배>는 나 PD의 안전한 선택이었을까. 중견배우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을 모시고(?) 예능을 한다는 것 자체에 ‘안전’이라는 단어를 보태긴 어렵다. 나영석 PD는 작가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 ‘어르신과 함께한 여행’ 이라는 콘셉트를 떠올렸고, 돌직구 섭외에 들어갔다. 섭외는 의외로 쉬웠다. 가장 연장자인 이순재가 승낙하자, 다른 멤버들도 “형님이 한대? 그럼 나도”라며 <꽃보다 할배>에 합류했다. 칙칙한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나영석은 고민했을 테다. 일단, 배경은 프랑스 파리로 정했다. F4가 파리 정도는 가야 하는 게 아닌가! 배경 그림은 해결됐다. 할배 F4의 패션이 다소 칙칙하더라도 배경이 파리라면 달리 보일 것이다. 유럽 배낭여행의 백미, 파리에서 중견배우들은 운동화를 신고 후드티를 입고 걷고 또 걷는다. ‘인간 내비게이션’ 이서진만 의지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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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vN] |
두 번째, <꽃보다 할배> 출연자들을 리드할 만한 가이드가 필요했다. 현지 가이드를 붙인다면? 그건 리얼 버라이티가 아니다. 누가 좋을까? 우선 영어는 할 줄 알아야 하고 성격도 좋아야 한다. 또 어르신에 대한 어려움이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아야 했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은 모두 소위 ‘왕년의 스타’, 현재도 대한민국 드라마의 한 역사를 잇는 배우들이다. 그들의 코드를 쉽사리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영석 PD가 <꽃보다 할배>에 장착한 유일한 안전장치는 배우 이서진이다. 걸 그룹과 떠나는 여행이라며 이서진을 꼬셔 공항에 데려왔고, 이서진을 <꽃보다 할배>에 합류시켰다. 지도 한 장 없이 스마트폰 하나로 이서진은 내비게이션이자 통역사, 매니저, 짐꾼으로 고군분투한다. 주소만으로 파리의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찾고, 백일섭이 내동댕이친 장조림 가방을 들고, 한인식당에서 삼겹살을 먹고 싶다는 선생님들을 위해 맛집을 검색한다. 여행 틈틈이 이서진은 나영석 PD와 독대한다. 두 사람은 때론 난감한 표정을 짓고 울상을 하지만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또 가볍지 않다. 어차피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있고 감당할 수 있고, 얻는 바가 있을 것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령화시대라고 외쳐도, 어르신이 주인공인 드라마는 없다. 그런데 예능이 어르신을 대거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이서진에게 몰래 카메라를 할 수 있는 대범함도 나영석 PD니까 가능했을 것이다.(나영석은 이서진보다 5세 연하다) 나영석 PD는 예능을 가볍게 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연기자들을 진부한 틀 속에 가둬 놓지 않는다. PD가 개입해야 하는 적당한 선을 아는 연출자다. <1박 2일>의 최고 분당 시청률은 박찬호가 출연해 강호동과 입수했던 장면 51.3%였다. <꽃보다 할배> 1회는 케이블 프로그램(첫 회 방송) 사상 가장 높은 성적인 4.15%를 기록했고, 지난주에 방송된 2회는 4.8%로 상승세를 보였다. 로맨티스트 박근형이 본격적으로 ‘센 캐릭터’를 보여준다고 홍보한 3회는 오늘(7월 19일) 저녁 8시 40분에 방송된다. 공중파 예능으로 5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한 스타PD 나영석은 이제 케이블에서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두 자리수의 시청률을 만들지도 모르겠다. 이순재가 무작정 직진만 하고, 백일섭이 다리가 아프다며 중간에 털썩 주저앉더라도, 프랑스 생수병에 소주를 담는 할배들의 푸근한 미소는 이서진의 보조개 스마일 못지 않으니까. 나영석 PD의 진짜 레이스는 지금 시작됐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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