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일산 휘발유’다
“환불할 때 데려가고 싶은 언니가 나타났다!”
이 책은 통신사, 백화점에서 병원과 영화관까지 일상 속 불쾌하고 어이없는 기업 행태에 대한 통쾌한 항의 보고서다. 언제나 위기를 유발하는 항의 본능이 만든 다채로운 컴플레인 이야기를 통해‘ 컴플레인을 이럴 때도 할 수 있구나,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이런 방식이 좀 더 효율적이구나’ 하고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자잘한 항의가 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해보고, 혼자 하면 나약하기 짝이 없지만 옆 사람도 하고 뒷집 사람도 하며 조금씩 힘을 보태면 언젠가는 조금씩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이 한창 관객 수를 올리고 있을 당시, 주변에서 그 영화 꼭 보라는 권고가 이어졌다. 나와 비슷한 캐릭터가 나오니 꼭 보라는 것이 요지였는데, 이건 아마도 극 중 임수정의 캐릭터가 불만투성이이기 때문에 나온 말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영화 속 임수정처럼 사랑스럽지는 않으니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뭔가 부당한 부분에 대해서 참지 못하고 발끈하는 점 정도가 될까? 또한 나는 그녀처럼 외로워서 불평불만을 터뜨리는 게 아니다. 참을성이 영 발달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었다.
내 돈 내고 누리는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내 세금 내고 누려야 할 기본권에 침해를 당할 때, 내 기준에 함량 미달인 사태에 대해 참을성이 없는 사람인지라 즉각 항의하거나 반응한다. 그래서 손해를 보는 일도 있었고 덕을 보는 일도 있었다. 이른바 ‘지랄 총량의 법칙’대로 나에게 떨어질 좋은 일은 어떻게든 떨어지고 안 좋은 일도 결국은 벌어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저 생긴대로 살아왔다.
그렇게 사는 것이 피곤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많았다. 그렇게 일일이 발끈하고 부르르 떨고 사사건건 따져서 어떻게 사느냐고. 별 소득도 없는 일에 매달려 시간과 열정을 날려버리는 과정을 피곤해했다면, 40년이 넘게 이렇게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체력은 좋은 편이라 지치지는 않았고, 지구력도 있는 편이라 먼저 나가떨어지지 않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았으며, 정의 실현이라든가 타인을 위해서라든가 하는 거창한 생각도 없어서 의무감 같은 것에 시달리지도 않았고, 그저 타고난 이기심(이라고 쓰고 개인주의적 성향이라고 읽는다)과 참을성 부족, 그리고 아버지가 물려주신 커다란 목소리에 힘입어 그저 참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분노했고 항의했으되 남에게 폐는 끼치지 않았고, 옳다는 확신이 들면 돌진하며 살았다.
달걀로 바위 치기 같은 일도 많았고, 거센 항의에 꿈쩍도 하지 않는 시스템도 있었으며, 개선되는 데 조금은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 일도 있었고, 내 덕을 봤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끔은. 하지만 우리가 이미 초등학교 때 배우지 않았나. 인생의 의미는 결과에 있는 게 아니라 과정에 있는 거라고. 과정 속에서 참된 의미를 발견해야 인생이 행복하고 풍요롭다고. 항의하는 과정, 과정 속에 알게 된 새로운 정보, 그 가운데 만난 무수한 사람, 그런 것이 의미가 있었다.
그런 에피소드가 하나씩 둘씩 쌓여가고 있을 때, 주변에서 심부름센터 비슷하게 문제 해결해주는 회사를 하나 차려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있었다. 잡지 《여성중앙》에 연재도 시작했다. 백화점 가서 제대로 얘기 못 하는 친구를 대신해 환불받은 거며, 성형수술하고 나서 재수술하는 날이면 나를 끌고 가는 후배며, 남한테 싫은 얘기를 할라치면 본인 가슴이 먼저 벌렁거려 입도 못 떼는 엄마를 대신해 겪어온 풍파는 남들이 듣기에 참고로 삼을 만했나 보다.
내 별명을 보자면 욱지영, 쌈닭, 그리고 일산 휘발유. 척 듣기만 해도 대충 성격 나오는 그런 별명들이다. 하도 욱해서 정말 성을 욱씨로 개명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많이 들었고, 고전적인 쌈닭은 그나마 얌전한 축에 속하는 것이었다. 같이 일하던 카피라이터는 불만 댕기면 붙는다고 해서 나를 ‘일산 휘발유’로 낙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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