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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치 시노부의 <로봇G>와 함께 본 일본영화의 4가지 경향

아날로그 감성 <로봇G>부터 삶의 달인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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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에는 유사한 ‘통속성’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 ‘현대 세상 풍속과 인정 비화를 제재로 하는 통속적인 극’을 뜻하는 ‘신파新派’와 가부키로 대표되는 ‘시대극’이 일본 영화의 근간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 아래 일본영화의 세밀한 표현법, 순화된 갈등구조 때문에 큰 굴곡 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대부분의 장면이 정갈하고 예쁘게 묘사된다.

얼핏 보면 굉장히 다양한 것 같지만 크게 요약해 보자면 긍정, 느림, 허무, 역설로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일본영화에는 유사한 ‘통속성’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 ‘현대 세상 풍속과 인정 비화를 제재로 하는 통속적인 극’을 뜻하는 ‘신파新派’와 가부키로 대표되는 ‘시대극’이 일본 영화의 근간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 아래 일본영화의 세밀한 표현법, 순화된 갈등구조 때문에 큰 굴곡 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대부분의 장면이 정갈하고 예쁘게 묘사된다. 몇 편 보지 않아도 이런 유사한 감수성 때문에 우리는 일본영화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데, 그 편안함의 근원은 정서적 익숙함에서 오는 것이다.


긍정의 비타민, <로봇G>의 야구치 시노부



돈 세는 것이 취미인 은행원, 돈 가방을 들고 도망가는 간호사, 수영도 제대로 할 줄 모르면서 싱크로나이즈에 도전해야 하는 남고생들, 식중독에 걸린 밴드부를 대신해 경연대회에 참가하게 되는 여고생들. 아르바이트로 로봇 흉내를 내야하는 할아버지.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 속 주인공들이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기상천외한 상황에 속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유쾌하게 그려내며 톡톡 튀는 만화적 상상력을 더하지만, 이 재기발랄한 코미디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억지스럽지 않다는 것에 있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전작들이 난관에 처한 청춘들이 고난을 딛고 당당하게 일어선다는 낙관적이면서도 선동적인 주제를 그려낸데 반해, <로봇G>는 유쾌한 코미디의 이면에 고령화 사회에 대한 사회적 이슈를 녹여내고 있다. 초기 치매 판정까지 받은 스즈키는 일을 하고 싶지만, 61세 나이 제한에 발목을 잡힌 70세 노인이다. 그는 깔끔한 삶을 살아내고 싶지만 더 이상 그는 생산적 사회의 일원이 아니다. 스스로 쓸모없는 잉여인간이란 생각을 하던 중, 로봇 외장을 갖추고 로봇처럼 행세하면 돈을 준다는 아르바이트에 지원하게 된다. 이처럼 <로봇G>는 70세 노인이 로봇 행세를 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순차적으로 나열한다. 그리고 햇빛이 비치지 않는 사각지대, 즉 그늘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따뜻하게 보듬어 온 감독의 시선은 고령화 사회와 외로운 노인이라는 심각한 주제를 희극으로 거듭나게 만든다. 로봇이라는 최첨단 소재 속에 결국 사람의 삶을 가장 빛나게 만드는 것은 최첨단 기술이 아닌 소박하고 진심어린 아날로그 감성이란 사실을 역설하는 야구치 시노부의 이야기는 늘 소박하고 따뜻해서 잔잔한 감동으로 이어진다.


느린 시간, 소통과 치유 -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들


<요시노 이발관>


<카모메 식당>

어떤 순간에도 조급하지 않은 고양이의 느리고 여유 있는 시간은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 속 인물들의 시간과 닮아 있다. 그의 데뷔작 <요시노 이발관>은 확고한 믿음 속에 자신들만의 느린 시간 속에 살아가는 마을의 이야기다. 작은 마을을 지배하는 뱅 헤어에 반대하는 소년들의 가출 성장담은 일본의 현재가 아닌, 가상의 마을에서 벌어진다. 이처럼 느리고 별다른 사건 없이 전개되는 것 같지만,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의 기본은 판타지이다. 핀란드 바닷가에서 주먹밥을 파는 세 일본 여성의 이야기 <카모메 식당>을 보라. 이국의 공간에 선 인물들의 과거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세 여성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수줍은 속살거림처럼 영화는 계속 관객들에게 속삭이지만, 그 속에는 어떠한 뉘앙스도, 단서도 담겨있지 않다. 그저 느리게 흘러가는 그들이 시간 속에 영화의 흐름을 맡긴다. 차기작 <안경>은 그런 그의 시간에 대한 느림이 강박처럼 녹아든 작품이었고, <토일렛>은 윤회의 시간 속에 우리를 녹여 넣는다. 그리고 2012년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에는 호들갑스럽지 않은 삶과 죽음을 극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일상의 고독, 그 허무의 리듬을 담아내다


<공기인형>


<바이브레이터>

일상의 감각 속에 흐르는 일본영화의 허무한 정서의 근원을 되짚어 올라가면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과 죄의식이 더해져 <라쇼몽>이 탄생했고, 오시마 나기사의 예술이 된 포르노 <감각의 제국>은 정치적 이슈에 더 이상 관심이 없는 일본인의 정신적 무정부주의의 대표작이 되었다. 일상의 흐름 속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 한 꼭지를 뚝 떼어내면 하나의 리듬을 타고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 어쩌면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한 일본영화 속 공식 같은 이야기다. 그 느리게 부유하는 이야기의 권태 덕분에 속이 텅 빈 섹스 인형이 주인과 사랑에 빠진다는 판타지가 권태로운 멜로영화로, 나와 똑 같이 닮은 또 다른 여자가 세상에 있다는 도플갱어 멜로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공기인형>의 외피는 각박한 도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품어내는 공기인형의 이야기이다. 공기인형 노조미는 계속해서 다가가고 대화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소통하거나 변화하지 않는다. 핑크 영화로 출발한 중견감독 히로키 류이치의 <바이브레이터>는 끈질기게 되살아나는 상처를 들여다보는 영화이다. 감독은 여백이 많은 정지의 순간들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리고 막연히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 사람을 방치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가 거대한 질서가 아니라 그 속에서 소소하게 울려 퍼지는 작은 울림이라는 메시지는 잔잔하게 오래 남는다. 마치 여행이 끝난 곳에서 길이 시작되는 것처럼, 사랑도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 나카타 히데오의 <링>은 수많은 짝퉁 사타코를 배출하면서 가부장적 사회 속 부조리함을, <검은 물 밑에서>는 이혼한 여성이 사회에서 겪게 되는 존재론적 불안함을 공포형화의 형식을 빌어 풀어낸다.


역설의 미학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기타노 다케시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서핑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서핑의 역동적인 장면이 아니라 우두커니 바다에 앉아있는 장면이 더 많은 영화이다. 침묵의 순간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말하는 기타노 다케시의 역설적 화법은 그의 영화 속에 잘 녹아들어 있다. 야쿠자 보스의 망중한을 담아낸 <소나티네>와 가장 잔인한 폭력과 가장 서정적인 명상을 동시에 녹여낸 <하나비>에 이르면 삶의 역설을 통해 관조하는 거장다운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삶의 역설을 통해 관조를 끌어내는 영화들도 일본영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역설의 미학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은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다. 마츠코의 가시밭길 같은 일생을 통해 삶을 긍정하는 역설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영화는 그녀의 잔인한 불행을 화려한 춤과 노래, 과장된 CG와 애니메이션 속에 녹아낸다. 이 잔혹한 여인 수난극의 판타지적인 표현은 이야기를 흩어놓지 않고 그녀의 인생에 희망과 자기기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은 마츠코를 희생자가 아니라, 살고 사랑하는 일에 집중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여성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테마는 고린도전서 13장으로 귀결된다.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디는, 사랑밖에 몰랐던 마츠코는 삶의 달인이라고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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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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