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환자가 되어 죽는다. 건강했던 사람도 병을 앓았던 사람도 죽는 그 순간에는 모두 환자가 된다. 대한민국 사람 99% 이상은 잉태되는 순간 산부인과 환자로 시작해, 태어나자마자 소아과 환자로 인생을 출발한다. 영안실 장례문화가 보편화한 요즘에는 죽는 순간에도 환자가 되어 이승을 마감한다.
누구나 병을 앓으면 철학자가 된다. 실연의 아픔이 정신의 성찰을 가져다주듯 질병의 고통은 육체에 대한 자성을 안겨준다. 인간이 자기 몸에 한 짓을 생각하면 천당 가기 어려운 법이다. 육체의 질병은 정신을 일깨우고, 정신은 다시 신체를 보듬어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의 숙명이다. 그런 면에서 의료와 병원은 신체와 정신이 만나는 수련원이다.
누구나 질병 앞에서는 초라해진다. 질병은 자기 몸의 주인인 내가 내 몸에 너무나 미약한 존재라는 무력감을 준다. 평소에 의사들이 거들먹거린다며 비난하다가도 환자가 되면 그간의 허세는 금세 사라진다. 병원은 능동적 인간을 수동적 인간으로 끌어내리는 신병 훈련소이다.
사람은 죽음이 가까이 있다고 느껴봐야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병원에 입원하는 중증 환자들은 그곳에서 먼발치에 있는 실체도 없는 죽음의 그림자를 본다. 무심코 지나가던, 으레 다녀가던 영안실도 병원에 입원하면 눈에 띄게 크게 보인다. 그리고는 의사가 신처럼 기적같이 자신의 중병을 해결해주길 바란다. 중증 환자는 누구나 신앙인이 된다.
병원을 중심으로 발전한 현대의학은 너무나 분화되고 전문화됐다. 내과는 외과를 모르고, 소아과는 산부인과를 모른다. 기계처럼 돌아가는 병원의 시스템에서 환자는 나이와 질병의 위치에 따라 나뉘는 의료 작업의 대상이 됐다. 주체적 인간이 환자 등록 번호를 부여받으면서 치료 객체로 전락한다.
경제성과 효율성이 강조된 현대 의료에서 의학은 지금껏 의료 행위 공급자의 것이었다. 과거 병원이 환자의 영혼과 신체의 상처를 인도주의 손길로 아물게 했던 곳이라면, 이제 의료는 환자라는 의료 소비자를 상대하는 의료 비즈니스로 바뀌었다. 증상에 따라 거부할 수 없는 검사가 쏟아지고, 진단에 따라 선택을 강요받는 치료법이 우르르 나온다. 역설적으로 병원과 의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독점적 위치를 확보한 기업과 기업인이다.
아프니까 환자다. 끊임없이 질병으로부터 고통받는 인간의 나약함, 그것을 인본주의 차원에서 위로받고 싶은 환자들. 하지만 최고의 진단과 치료를 향해 거침없이 발전해온 현대의학의 기능주의. 이 둘의 끊임없는 엇박자가 우리 삶의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환자는 서운하고, 의사는 억울하다.
우리는 환자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따뜻한 의사와 환자를 야단치는 능력 의사를 놓고 선택의 고민을 한다. 친절한 설명에 목말라 하면서도 한편으론 권위를 좇는다. 3분 진료에 분노하면서도 한적한 병원에는 발걸음을 두지 않는다. 고액의 진료비를 비난하면서도 최첨단 의료장비로 무장한 대형병원에서 방황한다. 종합검진 선물 세트는 비쌀수록 잘 팔리면서도, 병실료가 낮은 시장통 같은 5인실에 서로 들어가려고 하는 게 우리의 의료 현실이다.
그 충돌과 모순의 현장을, 필자는 의사 출신 기자로서 가능한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이 책은 한국 의료 안내서가 아니다. 시시콜콜 건강 정보 가이드북도 아니다. 병원과 의사들의 비리를 속속들이 파헤친 ‘해부학’ 서적은 더욱 아니다.
건강과 의료라는 것이 누구나 환자가 되는 우리의 삶에 어떻게 들어와 있는지 내시경으로 들여다보고,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현미경으로 살펴보고,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망원경으로 내다보려 했다. 의료는 삶과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사람은 사회를 만들고, 사회는 질병을 키운다. 의학과 사회학을 섞어 모두가 알았으면 하는 메디컬 소시올로지
medical sociology를 감히 이 책에 담으려 했다. ‘건강인’이건 ‘질병인’이건, 그 안에 개인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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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망현內望顯 김철중 저 | MID 엠아이디
의사기자 김철중이 살펴보는 대한민국 메디컬 소시올로지. 의사로 10년, 기자로 14년을 살아온 저자가 질병 생산 사회의 의료와 건강, 그리고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를 통렬하면서도 따뜻하게 풀어낸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환자는 서운하며 의사는 억울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충돌과 모순의 현장이 의사 출신 기자의 눈으로 예리하게 묘사된다. 저자는 누구나 환자가 되는 우리의 삶에 건강과 의료가 어떻게 들어와 있는지 내시경으로 들여다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현미경으로 살펴보고,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망원경으로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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