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잇이 실수로 만들어졌다고?
루마니아 출신의 철학자 에밀 시오랑의 에세이부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소설들이 탄생해온 과정사까지
가장 완벽하고 우아한 문체를 구사하는 프랑스 최고의 산문가, 에밀 시오랑의 신작이 나왔습니다. 역사 속 실수담을 엮은 빌 포셋의 『역사를 바꾼 100가지 실수』, 지구 너머 생명체를 탐사하는 과학자들의 도전기를 다룬 『퍼스트 콘택트』 등 이번 주 최근에 산 책들을 소개합니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에밀 시오랑 저/김정숙 역 | 챕터하우스
‘유쾌한 절망의 대가’ 시오랑의 죽음, 절망, 슬픔의 아포리즘
루마니아 출신의 철학자 에밀 시오랑의 글을 좋아하는 편인데요. <노랑이 눈을 아프게 쏘아대는 이유>, <절망의 끝에서>라는 책을 무척 인상적으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바로 <절망의 끝에서>를 다시 번역해 새롭게 나온 책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절망의 끝에서>를 번역했던 김정숙씨가 이 책을 재번역 했더라고요. 한 책을 두 번 번역하는 것이 번역자에게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어찌됐든 이 책은 부조리, 우울증, 슬픔, 고통, 체념, 불안 등 에밀 시오랑의 어둡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한 아포리즘을 짧은 수필 형식으로 모아둔 책입니다. 에밀 시오랑의 글은 깊으면서도 슬픈 맛이 있는데 그런 글들이 이상하게 매력적이죠? 십수 년 만에 다시 읽는 에밀 시오랑의 글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역사를 바꾼 100가지 실수
빌 포셋 저/권춘오 역 | 매일경제신문사
시대의 흐름을 뒤바꾼 어리석은 실수들!
<역사를 바꾼 100가지 실수>는 역사의 진실을 바꿔놓은, 역사 속에서의 실수담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 빌 포셋이 쓴 책 목록을 보니 실수에 관해 집중적으로 책을 쓴 사람이더라고요. 이 책은 중세유럽에 흑사병이 만연했을 때 사람들이 고양이가 이 병을 옮긴다고 생각해 대학살했던 굉장히 비극적인 실수에서부터, 좀 더 잘 붙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접착테이프를 개발하려다 실패했던 스펜서 실버라는 과학자의 실수 경험이 오히려 포스트잇의 탄생으로 이어진 에피소드까지 실수가 비극적인 상황으로 끝나게 되거나 아니면 전화위복이 되어서 더욱 흥미로워진 사례 100여 가지를 모아놓은 책입니다. 총 637페이지나 되는데요. 편집을 조금 줄이면 400페이지 정도로도 충분히 담아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런 부분이 다소 아쉽기는 합니다.
퍼스트 콘택트
마크 코프먼 저/민영철 역 | 한길사
먼 우주에서 이루어지는 생명탐사의 현장!
미국의 과학 분야 저널리스트로 유명한 마크 코프먼이 쓴 책입니다. 조디 포스터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쓴 소설 <콘택트>가 생각나는데요 <퍼스트 콘택트> 역시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지구 밖에 외계생명체가 있는지 탐사하는 과학자들의 연구와 관련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인데요. 우주생물학에 대한 과학자들의 연구와 해설만 담겨 있는 게 아니라 과학자들의 개인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직접 그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이 중간 중간 들어가는 형식의 책입니다. 저자가 저널리스트라서 그런지 과학책이지만 그렇게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책으로 보입니다. 탐사망원경 개발에 관한 이야기부터 1976년도에 화성을 탐사했던 우주선으로부터 생명체가 발견됐다는 신호를 받은 후 과연 생명은 무엇인가에 관해 불붙었던 과학사의 근본적인 논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다루고 있는 대중과학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GUN :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꾼 총기 53선
남도현 저 | 플래닛미디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주요 총기의 역사 총망라
이 책은 전쟁과 무기에 대해 집중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남도현 씨의 책입니다. 제가 사실 굉장히 약한 분야 중에 하나가 자동차나 무기 등에 관한 내용인데 그런 저에게도 이 책은 매우 흥미로워 보이더라고요. 각 총기를 둘러싼 역사적인 사례부터 시작해 총의 작동원리, 성능까지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 책입니다. 실제 총의 사진은 물론이고 도면, 그 총을 역사 속에서 사용했던 자료사진 등 시각적으로도 풍부한 책이더라고요. 한 챕터를 읽어봤는데 예를 들어 MG42라는 기관총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초반에 독일군의 무기로 나왔던 총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기관총의 성능이 워낙 좋아서 ‘히틀러의 전기톱’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당시 이 독일군의 기관총이 연합군에게 얼마나 위협적이었는지에 대해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던 영국소설의 세계
홍덕선 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동시대 영국소설로 영국문학의 현주소를 읽다!
이 책은 성균관대 영문과 홍덕선 교수가 쓴 책인데요.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중요한 영국소설들의 위치, 의미, 파장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책들이 꽤 많이 알려진 작품들이에요. 예를 들어 50년대는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60년대는 도리스 레싱의 <황금빛 노트북>, 70년대엔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 80년대에는 살만 루시디의 <자정의 아이들>, 90년대에는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 등 지금 말씀드린 책들 모두 제가 다 좋아하는 책인데요. 이런 책들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고 영문학사적인 배경을 해설해준 책이라서 저도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현대영국소설사’라는 과목을 다시 대학생 시절로 돌아가서 수강하는 느낌으로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관련태그: 에밀 시오랑, 빌 포셋, 퍼스트 콘택트, 마크 코프먼, 남도현, 영국소설
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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