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까지 가서 주야장천 산에 오르고, 뉴질랜드까지 가서 캠퍼밴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갖은 고생 다하며 굳이 요트로 우리 바다와 섬을 헤집고 다니는 것을 보고 친구들은 타박과 핀잔을 준다. 그 정도로 돈도 벌고 명예도 얻었으면 이제 특급호텔 룸서비스를 받는 편안한 여행을 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지지 않고 응수한다. “예끼, 이 사람들아! 별 수백만 개짜리 호텔을 놔두고 무엇 하러 고작 별 일곱 개짜리에서 잠을 자냐?”
내가 야영의 매력에 빠진 지도 어언 20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았다. 한번은 밤늦게 정신없이 텐트를 치고 잤는데 아침에 시끄러워서 일어나 보니 바로 옆으로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달리고 있었다. 비포장 대로변에 텐트를 친 것이다. 또 한번은 한밤중에 자꾸 누가 텐트를 건드리는 바람에 무서워 밤새 잠을 못 잤던 기억도 있다. 그 후로는 늘 아내를 동반했다.
지금까지 나는 집단가출을 모의하여 트레킹을 하고 캠퍼밴, 요트, 자전거를 타고 백두대간 종주부터 캐나다, 뉴질랜드, 네팔, 아프리카, 일본, 조지아, 보르네오 등 배낭과 약간의 장비에 의지해 산과 바다를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다. 나는 좋은 산을 보면 그 품에 안겨보고 싶고, 멋진 바다를 보면 몸을 던지고 싶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실제 가치의 10퍼센트도 제대로 흡수할 수 없다. 나무와 풀과 흙의 향기를 이불 삼아 덮고, 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연의 그 속살 중심부에 내 몸을 파묻는다.
만약 내가 친구들의 말처럼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유명관광지에서 사진 찍는 여행만 했더라면 내 모습은 외모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지금보다 훨씬 늙어 있을 것이다. 자연과 어울린 덕분에 나는 만년 청년일 수 있었다. 더불어 속세에서는 절대로 사귈 수 없는 젊은 친구들까지 덤으로 얻었으니 ‘꿩 먹고 알 먹고’라는 속담이 이를 두고 생긴 말일 터이다. 이 나이에 40대 친구도 감지덕지인데 30대 형과 20대 언니와 어울릴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덕분에 내 만화 역시 긴 젊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내게는 최상의 에너지원인 동시에 최고의 힐링인 셈이다.
대개의 경우 집단가출 모의는 가는 장소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 순식간에 이루어지곤 한다. 그렇게 하여 적게는 한 달, 많게는 2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동고동락하는데 한 번도 찡그리거나 다툰 적이 없다면 믿을 수 있을까? 우리 모두 서로를 좋아하고 신뢰한 것도 있지만 대자연은 우리에게 매순간 살아 펄떡이는 생동감과 황홀한 감동을 선사하며, 그 순간 옆에 있어준 동료와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캠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요즈음 세 편의 만화를 동시에 연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마음은 또 들썩인다. 혹 허름한 술집에서 나를 포함한 몇 명이 작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거든 ‘저 양반이 또 집단가출하려고 모의하나 보다’ 하고 못 본 척해주기를 바란다. 생각만으로도 벌써 행복해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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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오지 않는 것은 ‘가출’이 아니라 ‘탈출’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팍팍한 일상을 떠나 시도 때도 없이 ‘가출’을 시도한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갈 곳을 정하고 떼 지어 가출하면, 이른바 ‘집단가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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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나는 캠핑 02_허영만과 함께 하는 힐링 캠핑 허영만,김태훈 공저 | 가디언
이 책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 허영만, 그의 절친 김봉주, 세계적인 산악인 박영석, 여행 칼럼니스트 김태훈, 〈도전! 지구탐험대〉 허정PD가 캠퍼밴을 타고 뉴질랜드 대자연과 동고동락한 여정을 담은 힐링 캠핑 에세이다. 일정을 두고 빡빡한 계획 없이 발길이 머무는 곳으로, 마음이 내키는 대로 달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북섬의 동서단과 남섬의 최남단을 제외한 뉴질랜드 전체를 캠퍼밴을 타고 자유롭게 헤집고 다녔다. 한 달 동안 길 위에서 펼쳐진 이 프로 여행가들의 먹고 마시고 자고 놀고 일하는 자유로운 모습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 진정한 캠핑의 진수를 만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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